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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프로가 만드는 인디게임 - 썸퍼

득사마의 인디게임 개발 이야기 2화

득사마111 2015-03-06 12:31:22

인디게임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필자는 아직도 소규모, 비 상업성, 참신, 아마추어, 학생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최근 게임을 개발하는 저작도구의 발달과 새로운 마켓의 등장으로 인디 개발의 의미는 점차 다른 의미로 변경되고 있다.

 

최근 게임 업계에서의 큰 이슈 중 하나는 프로 게임 개발자의(이전 직장에 비해) 소규모 스튜디오 전향일 것이다.

 

인디게임 개발의 산실로 불리는 ‘킥스타터’에는 브라이언 파고, 피터 몰리뉴, 리처드 개리엇, 이나후에 케이지와 같은1세대 유명 게임 개발자들이 참여해 기존 방식과 다른 면에서의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창조적인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MS처럼 거대한 업체에서 일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 퇴사를 결심한 피터 몰리뉴의 인터뷰로 볼 수 있듯, 스스로를 인디라 하지 않지만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우리가 인디게임으로부터 기대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요즘 필자가 인디게임 개발자를 정의할 때 자주 드는 비유는 의사와 병원이다.

 

의사라는 전문직이 되는 과정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의대에 입학한 후 의사가 되기까지 인턴과 레지던트라는 수련의 과정을 거치고 대형 병원에서 근무할 지, 독립적으로 개원할지 결정한다.

 

의사가 되기 위한 초기 수련 과정은 게임 개발 지망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게임 회사에 입사해 말단의 위치에서 서비스 출시 경험을 쌓는 행동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게임 회사에서 경력이 충분히 쌓이면 점점 규모가 큰 프로젝트로 배치되어 더 큰 책임감을 부여 받고 스타 개발자가 되어 가는데, 이는 대형 병원에서 높은 권위의 유명 전문의가 되어가는 것과 유사하다고 억지로 비유해볼 수 있다. 이렇게 병원과 게임 회사를 비유해보면, 지금까지 대한민국 게임 산업에서는 큰 병원을 차리는 일만 있었고 동네에서 개업하는 개념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필자는 인디게임 개발이란 동내에서 작은 규모의 병원을 차리는 일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대형 병원만이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있지만, 작은 동네병원도 우리의 삶에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대형 병원에서 모든 사람의 단순 감기까지는 커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기고에서는 인디 개발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들의 개업에 더 가깝다는 가정으로, 특별한 사람과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기타 히어로>로 유명한 하모닉스에 입사해 다수의 히트작 개발에 참여하면서 기량을 쌓은 후, 자신이 추구하는 게임 개발을 위해 미련 없이 나와, 한국에서 게임 개발을 하고 있는 푸른 눈의 인디 개발자 마크 플러리(Marc Flurry)를 만나 게임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마크가 제작중인 게임 <썸퍼>(Thumper)의 최신 트레일러 영상 새 창에서 보기]


마크가 제작한 게임 <썸퍼>는 세계적인 권위의 인디게임 행사 IGF에서 당당히 Finalist에 선정되었고, 필자가 인터뷰를 요청할 때에는 이번 GDC에서 열리는 IGF 수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출국을 준비하고 있었다.출국하기 전, 홍대 카페에서 그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게임 개발에 대해 들어보았다. 

 

 

득: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마크: (외국인 발음) 한국얘숴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마크 플러리라고 해요~ 한국어가 아직 숴툴지만 어학당을 다니면서 배우고 있어요~

 

마크 플러리.

 

 

득: <썸퍼>의 IGF 수상을 축하한다. <썸퍼>는 아주 특이한 개발 과정을 가지고 있는데, 예전부터 무척 궁금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달라.

 

마크: <썸퍼>는 비주얼이 화려한 리듬 게임이다. 리듬 게임을 좋아해 나만의 리듬게임을 만들기 위해 회사로부터 독립해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두 명이 개발하고 있으며, 나는 한국에, 다른 한 명은 미국에 있다. 다른 동료는 미국에서 밴드활동을 하면서 비주얼과 음악을 담당하고, 나는 한국에 있는 집에서 프로그래밍을 담당한다.

 

 

<썸퍼>의 플레이 화면.

 

 

마크의 동료 브라이언 깁슨(Brian Gibson). 미국에서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라는 밴드 활동과 게임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득: 어쩌다가 이런 기이한 개발 환경이 만들어지게 된 건가? 

 

마크: 회사로부터 독립해 혼자 게임 개발을 하던 중, 여자친구가 한국에 직장을 얻게 되어 함께 한국에 왔다.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을 여자 친구 직장에서 해결해주기 때문에 편하게 게임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참고로 마크 여자친구는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고, 둘은 작년에 홍콩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학교에서 홍대 근처의 사택을 제공해주고 있다.)

 

자신의 집에서 글로벌 게임잼을 열고 집에 모인 참가자를 위해 수제 피자를 만드는 마크.

 

 

득: 나도 홀로 독립해 게임을 개발하지만, 참으로 부러운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될 것이라 예측했었나?

 

마크: 아니다. 회사를 나오기로 결심한 후, 몇 년간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회사를 나온 후, 3~4년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이라 봤는데, 운 좋게 여자 친구가 교수로 임용이 되 더 길게 게임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득: 그래도 이전 직장에서 번 돈으로 몇 년간 홀로서기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이전 직장이 어딘지 궁금하다.

 

마크: 보스톤에 위치한 하모닉스에서 근무했다. 학생이었던 2004년 GDC 게임 튜닝 워크샵에 참가하였는데, 그 행사에서 소개를 받아 하모닉스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 다음 해 하모닉스에서 출시한 기타히어로가 ‘대박’이 났다.

 

마크가 참여한 하모닉스의 타이틀.

 

 

득: (부럽.. ) 이제 다음 질문. 꽤 비전 있는 회사에 초기 멤버로 합류했는데, 왜 회사를 나왔는가?

 

마크: 언제나 인디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게임 개발에 대한 경험과 기술이 부족해 입사를 선택했다. 2008년에 조나단 블로우의 <브레이드>(Braid)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으며, 이제는 인디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 독립했다.

 

마크를 인디게임 개발자의 길로 인도한 명작 <브레이드>(Braid)

 

 

득: 회사를 나온 후에는 어떻게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가?

 

마크: 게임을 개발을 시작한 후, 6년이 되어가고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만들고 싶은 리듬 게임을 구상했고, 이를 뒷받침해줄 게임 엔진을 손수 준비해왔었다. 이 엔진은 지금도 계속 만들고 있다.

 

마크가 8년 동안 자체 개발하고 있는 엔진. 

 

 

득: 오랫동안 한국과 미국에 떨어져서 팀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비결이 무엇인가?

 

마크: 지금의 동료는 하모닉스에서 3년간 함께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서로 믿음이 있다. 스카이프 화상 통화와 이메일을 사용해 지속적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한국에 온지 이제 3년째인데, 아직까지 프로젝트 진행에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옆 앉아서 같이 일하는 것하고는 작업 능률은 다르기 때문에 파트너와 손쉽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현재 개발하는 엔진에 특별한 기능을 넣었다. 게임 오브젝트에 URL을 심어 보내는 기능이다. 그리고 간단한 것은 프로그래밍을 모르는 파트너가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비주얼 툴도 추가하였다.

 

게임 요소에 웹 URL을 넣는 기능. 게임 내 특정 물체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 쉽게 고안하였다.

 

 

마크 엔진에서 사용하는 비주얼 툴 인터페이스.

 

득: 현재 대형 게임 스튜디오와 2인조 인디게임 개발이라는 극과 극의 게임 개발 방식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 둘 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마크: 회사에 소속되면 게임을 끝내야 한다는 큰 압박이 온다. 하모닉스에 있으면서 6년 간 6개의 콘솔 타이틀을 만들었다. 이런 압박은 게임 개발 경험을 쌓는 데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지금은 두 명이 6년 동안 1개의 타이틀을 개발하고 있다. 다음 번에 게임을 개발한다면 지금보다 더 빠듯한 방법을 선택할 것 같다. 사무실도 갖추고 말이다. (웃음)

 

득: 한국에 3년 동안 살면서 본 한국 게임 개발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마크: 사실 잘 모르겠다. 3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다. 운이 좋은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지내며 만나본 사람들은 다들 재미있었고 그들의 잠재력은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고립되어 있었다. 그래서 게임을 개발하는 동안 많이 불안했다.

 

마크 플러리.

 

 

득: 어떤 부분이 불안했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마크: 내가 만들고 있는 게임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중요한데, 한국에 있는 동안 그런 것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작년에 사비를 들여 일본으로 건너가 비트 서밋(Bit Summit) 행사에 참가했다. 다른 나라 사람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고, 리셉션에서 함께 참가한 개발자들이 좋은 평가를 해주어서 매우 고무되었다. 인디게임 개발에 있어서 커뮤니티로부터 게임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비트 서밋(BitSummit) 행사에 참가한 마크의 부스 사진. 화려하진 않아도 이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득: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도 그런 행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년의 오픈 플레이데이 행사는 어땠나?

 

마크: 보통 회사 차원에서 마케팅 목적으로 진행하는 E3, G-Star 같은 행사는 시끄럽고 정신 사나워서(loud & noisy) 개발자를 위한 행사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픈 플레이데이는 개발자를 위한 행사여서 좋았고 개인적으로 다른 게임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오픈 플레이데이 행사 풍경 영상 새 창에서 보기]


 

득: 요즘 모바일 시장이 갑자기 커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마크: 모바일 시장이 커졌지만, 우리 게임은 비주얼과 사운드를 강조하기 위해 큰 화면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바일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PC와 콘솔플랫폼만 생각하고 있다.

 

 

득: 그렇다면 VR은 생각 없는가?

 

마크: 예전에 체험해 봤는데 떨림이 좀 심했다. 사실 아직은 새로운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나에게 익숙한 콘솔과 PC에서 출시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득: IGF 수상으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질 것 같은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마크: IGF에 선정되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어떻게 보면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게임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 아직 우리는 게임을 완성하지 않았고, 당분간 올해 연말까지는 스테이지를 추가해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만 집중하고 싶다.

 


 

마크는 현재 GDC에서의 IGF 행사외에도 해외 다수 인디게임 행사에 초청을 받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이미 이 바닥에서 유명 인사가 된 것이다. 하지만 2년 전 필자가 주최한 게임 잼 행사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에게 이러한 배경이 있는지 몰랐었고, 작년 오픈 플레이데이 행사에서도 외국인이라는 것 외에는 특이사항이 없었다.

 

그가 추구하는 엔진 개발과 게임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데에는 회사에서 충분히 경력을 쌓은 후에도 6년의 긴 기간이 걸렸다. 하지만 자신의 분야를 명확히 하고,연고 없는 낯선 이국 땅에서 결과를 만들어낸 그는 진정한 프로다.

 

마크의 게임은 아직 출시 전이지만, IGF 행사를 통해 게임 성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검증을 받았다.

 

올해 말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그의 게임이 성공해 많은 게이머들을 즐겁게 하고 또 인디게임 개발자들에게 영감과 힘을 불어넣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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