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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덕후론_01] '오타쿠'는 상대를 존중하기 위한 호칭이었다

스카알렛 오하라(scarletOhara) 2022-06-06 10:54:06

[초대의 글] 비덕이 쉽게 이야기해주는 덕후 이야기

 

서브컬처 산업은 서구에서는 일찍 산업화하고 자리를 잡았지만, 아시아에서는 시작이 굉장히 늦었어요.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서브컬처 산업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최근 10여 년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죠.

 

커져는 가고 있는데 이 서브컬처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문화’ 자체, 그리고 그 문화를 주도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찾기 어려워요. 그래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서브컬처와 이 문화를 주도하는 덕후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 해요.

 

인류의 역사 발전에는 사실, 덕후들의 어마어마한 기여가 있었어요. 그들에 대한 존경 역시 이 글을 시작하게 된 이유죠.

 

이 글은 대단히 주관적인 글이 될 거예요. 틀린 정보들은 바로잡히고, 덕후와 서브컬처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체계적으로 연구되길 기대해 보겠어요. /스카알렛 오하라


무언가를 이야기 나눌 때에는 그 개념이 정확히 어떻게 정의되는지 먼저 정하고 논하는 것이 좋아요.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생각하는 정의가 다르면 서로 오해하게 되죠. 그 오해는 소통에 장애가 되고, 혹시 비즈니스가 얽혀 있다면 비즈니스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게임 업계에서 흔히 정의에 대한 합의 없이 시작했다가 문제가 되는 대표적인 용어로는 ‘기획’, ‘운영’ 등이 있어요. 해외 업체와는 ‘디자인’, ‘최적화’ 등도 종종 오해를 사는 용어예요.

여기에서도, ‘덕후’에 대해 논하기로 했으니 덕후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 할 거예요. 


덕후는 ‘오타쿠’(おたく)에서 온 말이죠. 

오타쿠, 오덕, 덕후, X덕 등이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모든 단어가 그렇듯, 덕후란 단어도 세월에 따라 ‘탄생’했고 ‘변형’과 ‘인플레이션’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고, 여러가지 다른 의미와 이미지를 담아 통용되고 있어요.
 
본래 오타쿠는 일본어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그대’나 ‘당신’, 영어로 치자면 ‘dear’, 중국어로 치자면 ‘您’(nin) 정도의 뉘앙스를 가진, 적당히 상대를 존중해주는 단어였던 것 같아요. ‘오’는 일본에서 상대를 높여부르기 위해 앞에 붙이는 접두어고, ‘타쿠’는 우리말로 ‘~댁’ 이거든요. 한자로 ‘宅’이죠. 우리나라에서 처가댁, 삼촌댁, 당진댁, 부산댁, 댁네 평안하시고..., 댁이 뭔데 나보고 오라가라야?... 하는 바로 그 ‘댁’이에요.
 
언제부터 시작된 지는 알 수 없지만, 오타쿠는 특정 시기부터 매우 유용한 단어였을 거예요. 친한 사이에서야 서로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됐겠죠. 아니면 “야!” 하고 부를 수도 있었을 거고요. 비즈니스 관계에서도 성과 함께 직급을 부르거나 혹은 様(양) 등을 붙여 부르면 문제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친한 사이도 아니고 비즈니스 관계도 아닐 때는 서로 어떻게 불러야 했을까요? 언젠가부터, 어떤 일본인들은 이런 경우 오타쿠(御宅)라는 호칭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나이를 중시하는 극동 나라들에서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모를 때 상대를 부르기 적당한 호칭일 수 있거든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하이텔 시절 동호회에서 서로 나이에 관계없이 그냥 “ID+님” 으로 부르거나 아이디를 모르거나 읽기 힘들면 그냥 "님"으로 부르며 상호 존대했던 걸 생각하면 비슷한 거라 볼 수 있겠네요.

딱히 인간관계가 없는 상대방이고 비즈니스 관계도 없지만,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있는 유대감 있는 상대를 부르기에는 적당히 존대하는 느낌도 있어 적당해 보여요.
 
일본에서도 서로 처음 만났지만, 서로 존중해야 할 사람을 만날 때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 호칭이 이러한 성향의 사람을 대표하게 되는 ‘보통명사’가 된 데에는 계기가 있었겠죠.
 

이 용어가 보편화한 기원은 1978년으로 올라가게 돼요.

<인베이더>가 타이토에서 만들어졌고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이 방영된 바로 그 해예요.



지금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발키리 디자이너로 유명한 카와모리 쇼지. 1978년 대학생이었던 그는 스튜디오 누에에 입사해요. 카와모리는 전세계 SF계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아폴로 11호 달착륙 이벤트의 영향을 받은 SF팬이었어요. 스튜디오 누에에 입사한 것도, 그 회사가 일본의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의 메카닉 설정 및 디자인을 맡았던 스튜디오였기 때문이죠.
 
카와모리 쇼지는 이듬해 친구 호소노 후지히코를 자기 회사에 소개해 데려오게 되죠. 그리고 다시 이듬해, 호소노가 친구 미키모토 하루히코를 자신의 어시스턴트로 삼기 위해 신인 디자이너들을 훈련시키던 아트랜드라는 회사에 추천해 입사시켰어요. 이때 이들은 아직 모두 대학생이었죠.

다른 회사의 디자인 콘셉트를 협력하는 SF 전문 디자인 회사였던 스튜디오 누에가 처음으로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파트너로 <우주전함 야마토>를 감독했던 이시구로 노보루 감독과 함께 하기로 했죠. 이시구로 노보루 감독이 바로 미키모토 하루히코가 들어가 있던 아트랜드의 대표였어요. 당시 미키모토 하루히코는 이시구로가 감독을 맡았던 <철완 아톰>의 그림을 그리며 성장하고 있었어요.

두 회사가 함께 하기로 하면서, 이시구로 노보루 감독은 스튜디오 누에 측 참여 인력들의 실력을 점검한 후 미키모토 하루히코를 캐릭터 감독에 임명했어요. 당시 미키모토의 나이 22살. 오랜 기간 SF애니메이션에서 실력으로 인정받던 스튜디오 누에의 베테랑들은 당황했고, 애송이 밑에서 일할 수는 없다며 프로젝트에서 이탈했어요. 이시구로 감독은 개의치 않고 당시 20대 신인을 대거 프로젝트에 참여시켰어요. 카와모리 쇼지는 <마크로스>의 핵심이 될 발키리를 디자인하게 되었죠.

이들 외에도 나중에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해지는 안노 히데아키, ‘이타노 서커스’라는 작화기술로 유명해지는 이타노 이치로, <마법기사 레이어스>와 <격투맨 바키>로 유명한 히라노 토시키, <건담 주머니 속의 전쟁>의 야마가 히로유키 등 젊은 인재들이 참여하게 되었어요.

'오타쿠'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사람들의 인연

이시구로 노부로 감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0대의 경험이 적은 인재들이었음에도, 감독은 젊은 스태프에게 이전과 다른 파격적인 권한을 넘겨줬어요. 자신은 전체 돌아가는 상황을 리딩할 뿐이었죠. (그래서인지 <마크로스>가 초기 방영될 때는 완성도는 물론 제작과 방영 절차마저도 혼돈 그 자체였다고 해요.)

20대 초반의 샤이한 청년들끼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을 상상해 보셨나요? 업무를 추진하는 룰이나 서로 간의 호칭, 상하관계 등의 기본적인 룰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그런 팀 말이죠. 


그들은 어떻게 소통하게 될까요?

다른 사람의 위에서 상사 노릇을 해보지 못했던 젊은 스태프는 자신들의 호칭 문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어요. SF동아리 출신이었던 미키모토 하루히코나 카와모리 쇼지가 주축이 되어 정리를 했죠.

서로 존중하면서도 가볍게 부를 수 있는 ‘오타쿠’는 이 프로젝트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호칭이었을 거예요. 이들은 서로를 오타쿠라 부르게 되었죠. 마치 1990년대 한국의 PC통신 문화에서, 게임 동호회나 SF, 애니 관련 동호회 등에서 서로를 “님아”, “님께서”라고 존중하며 불렀듯이 말이죠.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수평 문화를 지향하는 회사에서는 ‘님’을 많이 쓴다고 하는군요?!)

<마크로스>는 초기에 워낙 망가진 채 출발해서인지 인기가 신통치 않았고 이후 젊은 스태프의 팀워크가 안정되면서 점차 큰 인기를 끌고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됐죠. 하지만 SF팬들에게는 달랐어요. 그들은 <마크로스>의 시작부터 열광했어요. 슈퍼로봇의 시대를 끝내고 리얼로봇의 시대를 연 <기동전사 건담>이 역대급 흥행을 한 바로 직후였어요. <건담>은 영화판 개봉과 재방송 릴레이로 <마크로스> 방영 직전까지 리얼로봇의 열기가 식지 않았었어요.

게다가 1981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F-14 의 활약은 밀리터리 마니아에게 최신 전투기인 F-14의 인기를 불러 일으켰어요. F-14는 지금도 전세계의 역대 전투기 중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죠.

F-14(위)와 발키리

<마크로스>의 발키리는 바로 이 F-14의 디자인을 가져온 것이었어요. <마크로스>는 밀리터리 마니아들에게도 매력적이었어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가 종영된 2달 후인 1983년 8월, 제22회 일본 SF대회가 열렸어요. 이 행사는 ‘다이콘4’로도 알려져 있어요. 오프닝 애니메이션 제작진에는 <마크로스> 스태프 다수가 포함돼 있었고, 대회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였죠. 구름처럼 몰려든 SF팬들 앞에서 마크로스 제작 스태프는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오타쿠라 칭하고 있었어요.

SF  팬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모인 서로 낯선 사람들은 이 호칭이 마음에 들었을 거예요. 이후, 팬들은 서로서로 오타쿠라 부르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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