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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게임과 법] EZ2DJ 분쟁으로 살펴보는 특허쟁송절차

땡땡땡 2016-01-11 13:06:48

안녕하세요 게임과 법 칼럼의 OOO입니다.

 

TIG 독자 여러분, 지난주는 모 게임업체의 신규 모바일게임에서 발생한 논란으로 인해 새해부터 게임업계가 참 시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본 연재 초반에 저는 ‘예술로서의 게임’에 대해 논하며 표현의 자유와 게임에 대해 다루었던 적이 있는데요, 이번 사태는 게임이 갖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퍼블리셔와 개발사 사이의 관계에서도 실제 사안을 떠나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게임의 내용이나 표현으로 인해 사업 자체에 차질이 생겨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그 귀책사유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피해를 입은 쪽이 가해자에게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아가 향후에도 이런 사건이 자꾸 발생하게 된다면 게임업계의 퍼블리싱 계약에서도 퍼블리셔와 개발사 중 주도적인 기획을 하는 당사자에게 특정 정치적 견해나 입장, 종교, 인종, 성별을 비하하는 내용을 게임에 넣지 않도록 하는 의무조항이 포함될지도 모르겠다는 예상도 되네요.

 

어떤 입장에서든, 게임이 비하와 조롱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그 행위 자체는 물론, 게임업계 전체에 있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뿐 아니라 게임을 사랑하는 개인의 입장으로서도 아쉬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관련기사: 이터널 클래시 벌키트리 “담당자 해고, 대표 사임, 한 달 수익 기부하겠다”]

  

지난 연재에서는 특허괴물에 의한 소송의 한 예로 월즈(Worlds, Inc)와 액티비전 블리자드(Activision Blizzard, Inc)의 사례를 말씀 드렸습니다. 해당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특허괴물들은 소프트웨어 특허와 관련해서는 주로 기초기술이나 다름없는 발명에 근거한 특허권을 이용해 소송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소송 사례와 같이 특허괴물들은 ‘클라이언트–서버’ 구조로 이루어지는 기술 구조에서 일반적이라 할 수 있는 데이터 처리나 통신 방법에 대해 특허를 확보하여 소송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게임 소프트웨어 그 자체나 게임 내에서 리소스 자료를 다운로드하는 방법이나 구조에 대해 특허를 확보해서 소송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죠.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요? 우리나라에도 특허괴물이나 그런 역할을 하는 기업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월즈가 액티비전 블리자드에 특허 소송을 걸었던 아바타 채팅 관련 기술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 게임시장에서 아직 특허괴물이라고 할 만한 사업모델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일부 개인 발명가 혹은 적은 수의 기반기술 특허를 보유하게 된 회사가 실제로 게임을 서비스하는 회사를 상대로, 특허 침해 중단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하거나 침해소송을 한 사례는 업계에서 몇몇 사례가 알려져 있긴 합니다. 다만, 기업활동 자체가 특허를 이용한 소송 등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개인기업이나 회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는 못하였습니다.

 

특허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두고, 특허소송을 통해 로열티를 받기로 하는 합의를 보거나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NPE의 사업모델이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는 우리나라가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시장과 정부 기관의 특성상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사업모델에 대해 국가가 방임하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개입해 기준과 규제 방안을 제안하는 일이 어느 정도 일반화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특허괴물이 설립돼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면, 아마 얼마 안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적재산권의 부당한 행사에 대한 심사지침’을 두고 있는데, 해당 지침에는 특허괴물의 특허권 행사와 관련이 있는 내용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둘째로는 특허소송에 들어가는 법률비용이 상대적으로 미국에 비해서 적게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특허소송 비용(법무법인이나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수행하는 비용)을 생각해보면 개인이 선뜻 소송을 감당할 만한 액수는 아닙니다.

 

그래도 미국에 비해서는 훨씬 낮은 가격에 소송을 할 수 있으므로 특허괴물의 소송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적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로열티를 주느니 한 번 죽기살기로 싸워보자’는 결심을 하기가 그나마 수월한 편이죠.

 

셋째로는 미국 법원에 비해 우리나라 법원이 민사소송에서 선고하는 손해배상액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입니다.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는 정부 규제가 있고, 소송을 해도 상대방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열심히 싸울 확률이 더 높은데다, 승소해서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액도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특허괴물의 입장에선 한국 시장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겠죠. 미국에 있는 특허괴물의 입장에서도 굳이 한국 내에서 소송을 하기 보다는 한국에서 성장한 회사가 성공해서 미국시장으로 진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사회적인 정서가 소송하는 것을 단순히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 절차에 착수한 것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다툼으로 보는 경향이 큽니다. 또 이런 다툼으로 물의가 빚어지는 것 자체에 대해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를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고요. 설령 우리나라 내에서 그렇게 운영되는 회사가 존재하더라도 자사의 사업모델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알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게임업계에서도 우리나라 내에 발생한 특허 관련 분쟁들은 언론에 알려진 사례들을 보면 경쟁사업자가 타 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쟁을 일으키거나 개인 혹은 소규모 기업이 소수(1~2개)의 특허를 이용해 보다 큰 기업으로부터 로열티를 받기 위해 소송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 연재에서는 앞의 사례에 해당하는 사안을 하나 설명해 드리면서, 특허쟁송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게임 관련 특허분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코나미가 어뮤즈월드를 상대로 했던 특허분쟁이었습니다. 1999년과 2000년 무렵 리듬액션 장르의 게임이 오락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는데, 해당 장르 게임의 원조는 코나미의 <비트스테이지>(일본명: 비트매니아)였지만 우리나라 회사인 어뮤즈월드의 <이지투디제이>(EZ2DJ)가 좀 더 인기가 많았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동네 오락실에 드나들던 이유도 <비트매니아>나 <이지투디제이> 같은 리듬액션 게임 때문이었습니다. 기존에는 보지 못했던 턴테이블에 피아노 건반 일부를 떼어온 듯한 버튼을 이용한 조작방식, 그에 더해 현란한 사운드와 조명을 가진 게임 장치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직접 게임을 즐겨보는 것은 물론 동네에 1~2명씩은 존재하는 리듬액션 게임 고수의 현란한 플레이를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한 두어 시간은 훌쩍 지나가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당시 콘솔의 보급과 PC방의 등장으로 사실상 사양단계에 접어들었던 동네 오락실의 수명을 조금이나마 더 연장시켜 주었던 것이 바로 리듬액션 게임과 댄스게임이었고요. 오락실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죠.

 

제 기억 속의 <이지투디제이>는 우리나라 회사의 작품이라는 것에 대해 게이머로서 대단하게 생각했을 정도로 퀄리티가 높았고, 사운드와 기기의 모양에 있어서도 <비트매니아>에 비해서는 조금 더 만듦새가 좋았습니다. 해당 게임은 1999년 대한민국 게임대상 수상작이기도 하고요(저는 아직도 이 게임의 OST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나미는 <비트매니아>와 관련된 특허인 ‘음악연출게임기, 음악연출게임용 연출조작 지시시스템 및 게임용 프로그램이 기록된 컴퓨터 판독 가능한 기억매체’를 1998년에 이미 출원했습니다. 2001년 우리나라 특허청에 등록이 완료되자 <이지투디제이>를 개발하여 서비스했던 ‘주식회사 게임세상’과 ‘어뮤즈월드 주식회사’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특허침해에 기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합니다. 

 

  

흔히 ‘특허쟁송’이라고 하면 두 가지의 형태로 진행이 됩니다. 똑똑한 TIG 독자 여러분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하실 터인데요. 원고가 피고에게 ‘특허를 침해했으니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한다면, 방어를 하는 쪽(피고)은 크게 두 가지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저는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습니다’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실시하는 기술이 그 특허와 같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 특허는 무효라 효력이 없습니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답변에서 특허가 무효인지 아닌지는 특허의 요건과 관련이 있게 됩니다(보통 신규성이나 진보성 여부가 문제가 됩니다). 여기에 대해 특허법은 이미 유효하게 등록된 특허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 절차를 별도로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특허쟁송(‘쟁송’이라 쓰는 이유는 이 절차가 모두 ‘소송’은 아니기 때문인데 일단 큰 줄기만 말씀 드리겠습니다)은 ‘특허침해소송’과 ‘특허무효쟁송’으로 절차가 양분돼 진행됩니다. 이 중 ‘특허침해소송’은 일반 민사소송과 같은 법원에서 진행돼왔지만(2016년에는 변경이 있습니다), ‘특허무효쟁송’은 그 시작은 법원이 아닌 ‘특허심판원’에서 하도록 돼있습니다. 즉 ‘특허무효쟁송’의 시작은 ‘소송’이 아니라 ‘심판’이고, 나중에 심판결정이 나오면 그 결정을 취소하는 소송을 특허법원에 할 수 있게 돼있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본 연재가 너무 전문적이 되고, 또 특허쟁송의 절차에 대한 제도는 분쟁 당시였던 2000년대 초반과 현재가 다르고, 2016년 올해에도 또 변경(항소심 특허법원 전속관할)됐으므로, 일단 특허분쟁에 크게 두 줄기의 서로 다른 분쟁절차가 있다는 것만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여기에 더해 사안에 따라 함께 진행되곤 하는 가처분이나 형사소송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정리하면, 위 사건은 코나미가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자(‘특허침해소송’ 시작), 어뮤즈월드는 코나미의 특허가 무효라는 심판을 특허심판원에 청구했습니다(‘특허무효쟁송’ 시작). 그리고 침해소송을 진행한 재판부는 특허의 효력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을 미루어 둔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소송이 제기된 것이 2001년이었음에도 제1심 판결이 나온 것은 2007년이었거든요. 그 사이 서울 서초동에 있던 제1심 법원의 이름도 서울지방법원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바뀌었죠.

 

특허심판원은 2002년 9월 코나미의 특허가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특허법원에서는 특허심판원의 판단이 맞다는 결과가 유지되었지만(특허법원 2004. 2. 27. 선고 2002허6701 판결) 대법원에서는 파기(대법원 2006. 8. 24. 선고 2004후905 판결)됐고. 특허법원은 2007년 2월 8일 다시 해당 특허가 무효가 아니라는 취지로 특허심판원의 2002년 9월 무효심판결정을 취소하게 됩니다(특허법원 2007. 2. 8. 선고 2006허8170 판결, ‘특허무효쟁송’ 종료).

 

이렇게 해서 특허가 무효가 아니라는 점에 근거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07년 7월 6일에 어뮤즈월드와 게임세상이 코나미의 특허를 침해했으니 생산된 게임기를 폐기하고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피고측이 항소하지 않아 제1심으로 이 판결은 확정됩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7. 6. 선고 2001가합32187 특허권침해금지 판결, ‘특허침해소송’ 종료). 

<EZ2DJ>와 <비트매니아> 관련 판결문 일부 

 

소송의 절차에서 양측이 주장한 자세한 사항까지 언론이나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피고측이 특허를 침해한 것인지 여부 보다는 특허의 효력 여부가 더 침해 판단에 중요하게 작용한 것을 볼 때 법원은 <이지투디제이>의 구성이 코나미가 가지고 있던 <비트매니아>와 관련된 특허의 청구항 구성을 그대로 실시하고 있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실제 판결문에서도 이 부분은 <이지투디제이>의 3번째 버전(3rd Trax)에서 다소 다르게 구현된 부분이 원고 특허의 권리범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만 문제가 됐습니다. 법원은 간단한 설명과 함께 그 부분도 원고 특허의 권리범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습니다. 그 외 나머지 제품(3rd Trax보다 이전 제품들)은 모두 특허발명의 구성요소를 구비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다툼이 없었습니다.

 

위 사건은 침해소송을 기준으로 하면 법원에서 제1심만 해도 6년을 끌며 진행된 사건인데, 특허쟁송의 전형적인 형태로 진행이 됐습니다. 즉, 원고가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개시하면 피고측에서 해당 특허의 효력 자체를 문제를 삼고, 그 효력에 대한 사건이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 대법원의 판단을 통해 결론이 난 후 침해사건이 그 결과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형태로 진행이 되었던 것이죠. 

 

  

이상과 같이 우리나라에서의 특허소송은 ‘특허 자체의 효력을 문제 삼는 분쟁’과 ‘특허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분쟁’의 두 절차로 나뉘어져 진행됩니다. 

 

‘특허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분쟁’에서도 ‘특허의 효력’에 대해 판단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보기에 특허가 무효라는 것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에는 법원에서 ‘특허 자체의 효력을 문제 삼는 분쟁’의 결과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실은 이 판단을 침해사건을 맡은 법원이 직접 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대한 사항도 특허관련 사건에서 종종 논의되는 주제입니다).

 

이 사건은 <이지투디제이>와 <비트매니아>가 오락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던 시대가 이미 지나간 뒤에 최종적인 결론이 내려지기는 했지만, 특허의 존재가 게임 시장 내에서 경쟁작을 견제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물론 오래 전부터 지적재산권의 관리와 권리행사에 적극적이었던 코나미사의 기업정책이 낳은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만약 코나미가 특허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저작권침해나 부정경쟁행위 등을 이유로 소송을 했어야 했을 터인데, 그렇게 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지금까지 제 연재를 잘 보셨다면 TIG 독자 여러분께서는 아마 충분히 결과를 예측해 볼 수 있으실 것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TIG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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