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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영향력을 위해 재미를 고민하다… '언폴디드: 동백이야기'

제주 4.3사건을 다룬 최초의 PC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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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언(톤톤) 2021-03-25 12:39:31

한국 근현대사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 중 제주 4.3을 향한 관심은 특히 적은 편이다. 2018년 제주4·3평화재단이 발표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4.3 사건을 알고 있다는 사람은 전체의 68.1%, ‘관심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50.2%다. 사건을 아예 모르거나, 대강은 알아도 자세한 내막은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은 셈이다. ‘관심 있다’는 응답은 16.2%에 그쳤다.

 

4.3 사건은 언급조차 금기이고 불온이었던 기간이 길다. 관련해서 목소리를 높였던 운동가, 예술가들은 때로 투옥되거나 핍박받았다. 2003년 참여정부에 이르러서야 최초로 국가에 의한 인정과 사과가 이뤄졌다.

 

그러나 오랜 침묵의 관성 때문인지, 이후로도 당시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볼 기회는 여전히 적었다. 사실, 귀 기울이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다시 조명하자’는 목소리를 공격하는 자들도 있었다. 제주 4.3 소재로 한국 최초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지슬>의 오멸 감독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었다.

 

그런 점에서, 24일 출시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 <언폴디드: 동백이야기>는 한 번쯤 들여다볼 이유가 충분하다. 안드로이드 버전으로 전편을 내놨던 2인 개발사 코스닷츠가 2019년부터 크라우드펀딩 및 유관단체의 협력으로 제작했다. 제주 4.3을 다룬 최초의 PC 게임을 디스이즈게임이 플레이해보았다.

 


 


 

# 한눈에 들어오는 많은 노력

 

기존 언론 인터뷰에서 개발자 김회민 코스닷츠 대표는 “정치적 쟁점이 아닌 철저히 피해자들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제주 4.3과 같은 무거운 역사를 게임으로 다루는 이유에 대해서 ‘다른 매체와 달리 주인공으로서 직접 체험이 가능하다’라는 점을 꼽았다. 두 말을 종합하면 ‘참사 속 어떤 개인’을 조명해 전체 사건을 환기하겠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간접체험’을 중점 삼은 기획에서 현장감은 중요하다. <동백이야기>에는 여기에 많은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다. 현장답사를 통해 손 그림으로 완성했다는 제주 산간의 모습은 리얼함을 넘어 아름답고, 그 분량도 방대하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도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을 이야기와 스테이지에 녹여낸 솜씨 또한 탁월하다.

 

 

옵션에서 언어 설정을 바꾸면 제주도 방언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도 있다. 제주도 방언 숙달자가 아니라면 사실상 게임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충실하다. 제주도 출신 유저들을 위한 배려로 생각되는 지점이다.

 

‘역사물’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역사 왜곡의 우려는, 당연하게도(?) 크지 않다. 제작진은 유관단체인 제주4.3범국민위원회 조언을 받아 게임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덕분에 인게임에 어떠한 사건이 묘사될 때, ‘정말 이런 식의 일이 있었나’를 고민하는 대신 이야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사실로 믿고 싶지 않은 잔혹함이 게임 안에는 종종 연출된다.

 

 

# 게임으로서의 기본기

 

1만 6,500원에 판매되는 <동백이야기>는, 거칠게 말해 ‘돈값 하는’ 게임이다. ‘시리어스 게임’을 향한 흔한 우려와는 달리 상업 게임으로서의 기본기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게임플레이는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장르 고유의 문법을 정확하게 답습한다. 곳곳을 누비며 사물을 관찰하고, 아이템과 정보를 모으고, 대화를 나눈다. 새로운 단서를 수집하면 특정 인물이나 오브젝트, 장소 등과 새로운 상호작용 및 대화 선택지가 열린다. 이렇게 문제 구간을 돌파해 스테이지를 넘기는 전형을 따랐다.

 

개발사가 직접 언급한 대로, 난이도는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게임 안의 힌트는 적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려면 때때로 현실의 상식도 동원된다. 이를테면 증류주를 만드는 기본 원리나, 물 이외의 수단으로 불을 끄는 방법 등을 알아야 통과할 수 있는 구간 등이 나온다. 물론 이 또한 장르 내 유명 작품들의 선례를 따른 장치다.

 

 

이처럼 높은 난도와 별개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QA 적 ‘마감처리’도 좋은 인상을 준다. 문제의 해법에 매우 근접했지만 조금 ‘엇나간’ 상호작용을 했다면, 약간의 힌트가 제공된다. 반대로 전혀 무의미한 접근을 하고 있다면 이를 얼마간 짐작하게 해주는 단서도 나온다.

 

다만 일부 상호작용이나 특정 장소 방문 시 매번 반복되는 애니메이션, 대사는 불편하다. 게임 특성상 동일한 장소 방문이나 행동이 자주 반복되기 때문에 시간 낭비가 커지는 문제는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 <동백이야기>가 사실을 다루는 방법

 

참상을 전하는 방법에 있어 <동백이야기>는 ‘보여주되, 말하지 않는’(show, don’t tell) 세련된 기술법을 따른다. 어린 주인공이 노랑, 빨강, 검정 깃발을 만들어 마을 경계를 서야 하는 첫 퀘스트는 장황한 부연설명 없이도 당시 미군정, 무장대, 제주 경찰 세 가지 세력을 모두 두려워했던 제주도민의 비극적 처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사라진 아들을 걱정하는 노인, ‘몸을 잘 숨기라’는 조언을 작별 인사 대신 건네는 상이군인, 건장한 젊은 남성이 하나도 남지 않은 마을의 모습. 이런 상황은 군이 내린 일방적 ‘통행 금지’와 소개령 속에 제주 중산간 마을들이 처했던 불합리를 잘 대변한다.

 

이렇게 게임은 플레이어를 ‘그때 그곳’으로 몰아넣는데 몰두한다. 그런데, 간혹 ‘게임다움’이 되려 이러한 몰입을 저해하고 만다. <동백이야기>에서 플레이어의 감정 이입이 방해받는 순간은 대부분 ‘게임적 허용’과 관련돼있다.

 

 

제주도 전통문화와 4.3 사건의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사전 시스템’은 여느 게임의 ‘로그 수집’ 시스템과 똑같다. 그러나 지극히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이 게임에서 설명문 포맷의 텍스트는 갑자기 플레이어를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로 분리하고, 현실로 급부상하게 만든다.

 

이런 ‘분리’는 꽤 자주 일어난다. 제주도 고유문화와 관련된 오브젝트를 ‘관찰’했을 때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은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연상시킨다. 심지어 주인공은 종종 ‘제4의 벽’을 뚫고 스크린 너머의 플레이어를 직시하며 말을 건다. 모두 장르적 틀 안에서는 자연스럽지만, 사실 기반 게임에 기대하는 ‘톤’과는 다소 마찰을 일으킨다.

 

 

# '게임으로서의 재미' 위한 선택과 집중

 

<동백이야기>는 이처럼 때로 게임 문법과 현실성 사이에서 방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다만 이는 사실을 왜곡,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게임으로서의 본질과 기능에 집중, 파급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바라볼 여지가 있다.

 

어린 ‘동주’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 역시 비극적 상황을 다루면서 게임적 탄력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플레이어가 참극을 배경으로 둔 채 ‘모험’을 할 수 있는 당위를 마련해준다.

 

그러나 <동백이야기>가 핵심 사건을 외면한 채 주변부에 머문다는 오해는 금물이다. 참극 안에서 피해자가 마주해야 했을 처절함은 굉장히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다만 그 전달 방향에 있어 게임적 유연함이 발휘될 뿐이다.

 

김회민 코스닷츠 대표는 “좋은 메시지도 게임이 재미없다면 전달될 수 없다”라는 견해를 밝혔던 바 있다. 게임으로서의 ‘폼’이 시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개발자다운 인식을 보여주는 말이다. 다만, 장르의 마니악함과 높은 난도에서 오는 대중성의 한계는 있다. 서바이벌과 호러 등 인기 장르를 활용한 <디스 워 오브 마인>, <반교> 사례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처절한 상황 속 주인공의 평온한 표정은 몰입을 해친다.

 

 

더 나아가 ‘의도’로 볼 수 없는, 연출상의 허점도 없지 않다. 반복되는 맞춤법 오류가 보이고, 우리말 대사는 어째서인지 번역문처럼 어색할 때가 많다. 유머가 표정·음성 없이 텍스트만으로 전달되는 탓에 간혹 분위기에 맞지 않고 튀어 보이는 문제도 있다.

 

캐릭터의 기본 움직임은 고 프레임인데 반해, 자세 바꾸기 등 몇몇 애니메이션은 뚝뚝 끊어져 둘 간의 괴리가 크고, 완성도를 떨어져 보이게 만든다. 이는 2인 개발 시스템을 고려할 때 감수할 만한 사소한 단점이기는 하다. 그러나 정서상 매우 중요한 장면에서조차 주인공이 엑스트라와 달리 ‘기본 표정’을 유지하는 등의 퀄리티 문제는, 개선의 필요성이 보인다.

 

 

# 마치며

 

사르트르를 인용하고 늘 시를 읊는 동주는(분명 윤동주의 오마주다)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아직 정견이랄 것이 형성되지 않은 어린이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동주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왜’ 학살을 저질렀는지보다 ‘어떻게’ 가족과 함께 생존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것이 많은 학살 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처지였을 것이다.

 

한국에는 민간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아픈 역사가 유독 많고, 재조명의 노력도 비교적 잦다. 이때, ‘엄중함’만큼 중요하지만, 간혹 간과되는 가치는 따듯함이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향하는 <동백이야기>의 시선은 덜 날카롭지만, 제법 따듯하고 그래서 처연하다.

 

게임은 ‘제주 4.3 사건을 알고는 있지만, 관심이 없는’ 약 50%의 사람에게 특히 알맞다. 플레이하다 보면 황망할 정도로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비극은, 그것이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플레이하고 났을 때, 오직 ‘게임적’, ‘연출적’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은 차라리 반갑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지고, 잘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하는 것만으로 게임은 소명을 다한다. 오늘 저녁 기자는 <지슬>을 본다, 주말에는 <순이삼촌>을 읽을 계획이다.

개발사 주식회사 코스닷츠(COSDOTS)

출시일 2021년 3월 24일

플랫폼 PC, Mac OS (Steam)

해상도 1920 x 1080, 60fps

정가 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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