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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미술관](23) 최고 경력 29년! 2D 셀 애니 장인 집단, 게임애니 전문 '스튜디오 뿌리'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현(다미롱) 2019-06-24 09:53:34
디스이즈게임이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오른쪽부터 스튜디오뿌리 최인승 총감독, 김상진 총감독, 장선영 공동대표, 박형근 감독, 김동식 작화감독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사이퍼즈>, <리그 오브 레전드> 등 내로라하는 게임들의 홍보 애니메이션을 작업한 이들이 있습니다. 2015년 생긴 '스튜디오 뿌리'의 사람들입니다.  

 

스튜디오는 생긴지 5년도 안됐지만, 그 안에는 수 년, 수십 년 간 2D 셀 애니메이션(이하 2D 애니메이션)을 갈고 닦은 장인들이 즐비한 곳이죠. 감독들의 평균 업력만 15년 이상일 정도입니다. 이들이 과거 참여한 작품도 '레스톨 특수구조대', '저스티스 리그 TVA 시리즈', '몬스터', '데스노트' 등 쟁쟁한 작품이 여럿이고요. 

 

이들이 모인 시간은 길지 않지만 벌써 수십 편의 게임 관련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리그오브레전드>의 '기동총격여신 미스 포츈' PV나 <던전앤파이터> '마계 영상 기록물' 애니메이션 등에서 보여준 강렬한 속도감은 스튜디오 뿌리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뿌리가 이런 작풍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풍으로 만들어달란 의뢰를 워낙 많이 받다 보니 ^^;)  

 

<리그오브레전드>의 '기동총격여신 미스 포츈' 애니메이션

 

 

# “이것만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없어요” 2D 애니에 빠진 이유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예나 지금이나 근무 환경이 좋다고 말하기 힘든 곳입니다.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지망생들 사이에선 '일은 많고 월급은 시원찮은 곳', '굶어 죽기 딱 좋은 곳'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이건 1991년 이 세계에 입문한 김상진 총감독도,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박형근 감독도 업계에 입문할 때 (20여 년의 시간 차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더군다나 스튜디오 뿌리가 만드는 2D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주류라고 할 수 있는 3D 애니메이션 등에 비해 시장은 좁고 투자는 적고, 노동량은 많습니다. 여기에 더해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각 파트(콘티·레이아웃·원화·동화·작화·배경 등등) 별로 전문가들이 톱니바퀴처럼 호흡을 맞춰야 해 완성도 높이긴 더 까다롭고요.

 

<던전앤파이터> 여성 프리스트 애니메이션 콘티 중 하나

그럼에도 이들이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 2D 애니메이션이 주는 '매력' 때문입니다. 최인승 총감독은 한국에선 대학교에 애니메이션 학과도 없던 90년대 후반, 고등학생 때 생으로 업계에 뛰어 들어 실무를 하며 애니메이션을 배운 사람입니다. 일이 너무 힘들어 곧 회사를 그만 두었지만, 애니메이션을 잊지 못해 약 2년 만에 업계에 복귀했죠.  

내가 그린 그림을 직접 살아 움직이게 하는 매력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뿌리의 사람들은 이외에도 어렸을 때 꾸중 들으며 애니메이션 봤던 열정이 어른이 돼서도 이어져서, 재미있게 봤던 작품보다 더 멋진 것을 만들고 싶어서 등등 저마다 다른 이유, 같은 애정으로 이 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이퍼즈> 5주년 기념 애니메이션 콘티 중 일부. 이런 작업이 수십, 수백 번 거친 뒤에야 아래 같은 영상이 나온다.

<사이퍼즈> 5주년 기념 애니메이션

이들이 시장도 좁고 일은 힘든 2D 애니메이션에 집중하는 이유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D만이 가지고 있는 표현력에 반해서. 

"2D의 강점은 직접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캐릭터의 움직임이나 화면 연출을 더 자유롭고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죠. 물론 3D도 기술이 많이 발달하긴 했는데, 전 2D만 계속 봐 그런지 몰라도 아직 아쉽더라고요. 이것 때문에 계속 2D를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3D 애니메이션은 하지 못하는, 2D의 장점이 극대화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고…." - 최인승 총감독 -

"사람이 손으로 직접 그리다 보니, 아주 미세한 표현 하나하나도 작풍이 된다는 것이 장점이죠. 이런 개성과 표현력이 아직 2D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 김동식 작화감독 -

"물론 3D도 금방 따라오겠죠. 그래서 요즘 화두는 '3D가 2D의 장점을 따라왔듯이, 우리는 어떻게 2D에 3D의 장점을 녹일 수 있을까'에요. 제자리 있다가 뒤쳐져 잊혀지기엔 2D 애니메이션은 너무 매력적이니까요." - 김상진 총감독 - 

 

<메이플스토리> 패스파인더 PV 1편

 

 

# “팬의 시각으로 재해석 해야 해요” 게임 애니의 매력과 특징 


게임 애니메이션(게임 원작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말 그대로 게임을 위한 애니메이션)은 국내에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분야입니다. 스튜디오 뿌리 사람들도 대부분 게임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TV 애니메이션이나 극장 애니메이션을 꿈꾸며 업계에 뛰어들었고요. 그렇다면 이들이 게임 애니메이션을 하게 된 계기, 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스튜디오 뿌리 사람들이 가장 많이 꼽은 이유는 '향상심'이었습니다. 이들이 과거 가장 많이 일한 분야는 TV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분야는 특성 상 매주 정해진 시간(방영 시간)에 맞춰 생산물을 만들어야만 하죠. 이렇게 매번 시간에 쫓기며 일을 하다 보니 100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50~60에 불과한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고 합니다. 

반면 게임 애니메이션은 시간보다는 작품 자체의 퀄리티를 더 중시하는 편입니다. 게임 애니메이션 특성 상 홍보 영상이나 클라이맥스 씬에 주로 쓰이기 때문에, 영상 자체의 임펙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때문에 스튜디오 뿌리도 게임 애니메이션을 만들 땐 다른 애니메이션보다 연출이나 표현 딴에서 다 다양하고 공격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고 하네요.  

창작자 입장에선 굉장히 매력적인 분야죠. 스튜디오 뿌리의 특징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역동적인 캐릭터 움직임과 카메라 앵글도 이 때문에 탄생했죠.

 

스튜디오 뿌리가 만든 넷이즈 <비인학원>의 PV (한국에는 얼티밋스쿨이란 이름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게임 애니메이션이 쉽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게임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보통 유저가 사용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입니다. 이들의 외형이나 움직임(ex: 스킬 모션)은 어디까지나 플레이 화면에 특화돼 만들어졌죠. 애니메이션처럼 카메라 앵글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환경이 아니라요. 

때문에 스튜디오 뿌리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캐릭터의 성격을 파악해 외형과 움직임을 애니메이션에 걸맞게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메이플스토리> 관련 영상을 만들 땐 게임 특유의 SD 캐릭터를 역동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선까지 비율을 수정했습니다. <던전앤파이터> 관련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해당 캐릭터의 성격을 바탕으로 유추해 구현했고요.  

이런 작업 특성 때문에 스튜디오 뿌리 사람들은 게임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해당 게임과 캐릭터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 영상을 볼 사람들은 이 게임, 이 캐릭터를 좋아하는 유저잖아요. 그래서 재해석할 땐 '내가 팬이라면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낄까' 끊임 없이 되묻는 것이 중요해요. 애니메이션 특성 상 참고할 게 없는 걸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팬의 눈으로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멋있는 영상도 인정받지 못하거든요" - 김동식 작화감독 -

 

<던전앤파이터> '마계 영상 기록물' 애니메이션 중 한 컷

이런 특성 때문에 스튜디오 뿌리 사람들은 작품을 만들 때 다른 애니메이션보단 '영화'에서 더 영감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물론 스튜디오 뿌리가 장기로 하는 역동적인 연출은 영화보단 애니메이션에서 더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에는 '미장센'이라는 수백 년간 누적된 유산이 있습니다. 화면 안에 보이는 인물과 사물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빛과 색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카메라 앵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메시지가 확연히 달라지는 연출 기법이요.  

게임 애니메이션은 다른 분야에 비해 영상 길이가 짧고, 임펙트를 주기 위해 액션 위주로 짜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시간, 장면 한 컷에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연출 기법에 게임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던전앤파이터> 검귀 & 인첸트리스 애니메이션 중 일부. 인첸트리스의 삐뚤어진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던전앤파이터> 총검사 애니메이션

 

 

# “한국 애니 업계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단초가 됐으면 좋겠어요” 


스튜디오 뿌리의 꿈은 언젠가 게임 IP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입니다. TV 애니메이션이나 극장 애니메이션 등을 보고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이 많다 보니 '장편'에 대한 갈증이 늘 가시지 않기 때문이죠. 관련해 게임사로부터 제안도 많이 받았지만, 아직은 스튜디오 역량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고사하고 있다고 하네요.  

단순히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만족하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죠. 이렇게 자신들도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다음에는 오리지널 작품도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멋진 오리지널 작품까지 만든 뒤에는요? 이들이 꾸고 있는 가장 큰 꿈은 자신들이 좋은 성과를 내,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가 조금이나 더 나아지는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꾸고 있는 가장 큰 꿈은 애니메이션 업계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감독들이 인터뷰 중 수시로 말한 것은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어려움, 그리고 이걸 바꾸지 못해 어려움을 대물림하고 있는 자신들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업계 경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더욱 이런 얘기를 더 많이 했죠. 

"보통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달한 국가로 미국과 일본을 꼽는데, 20년 넘게 이 일을 한 사람이 보기엔 우리 나라 창작자들의 실력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아요. 다만 시장과 환경 때문에 이게 잘 안 드러날 뿐이죠. 그래서 저희가 좋은 결과를 내 변화의 단초를 만들고 싶어요. 저희가 작게나마 길을 낼 수 있다면, 후배 제작자들은 조금이나마 더 좋은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요?" - 김상진 총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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