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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게임과 권력] ③ 뉴라이트와 게임규제 (1/2)

뉴라이트, 게임 규제에 공격적으로 뛰어들다

임상훈(시몬) 2013-12-18 01:44:57

‘뉴라이트’를 혹시 아시나요? 그들과 게임은 어떤 사이일까요? 작은 궁금증에서 시작했는데, 꼬리가 꼬리를 물게 되더군요. 결국, 돈과 권력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Shut down!’(문 닫어!)에서 ‘Show me the money!’(돈 내놔!)로 옮겨진 게임규제 이슈의 전환. 그 변화의 물꼬에는 ‘뉴라이트’가 있었습니다.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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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권력] ① 게임규제 법안의 역사 (과거형)

[게임과 권력] ② 게임규제 법안의 역사 (19대)

[게임과 권력] ③ 뉴라이트와 게임규제 (1/2)

[게임과 권력] ④ 뉴라이트와 게임규제 (2/2)

[게임과 권력] ⑤ 개신교 근본주의와 게임규제 (1/2)

[게임과 권력] ⑥ 개신교 근본주의와 게임규제 (2/2)

 

 

2011년 3월의 기억


2011년 3월 16일 오후 국회 소회의실, 이정선 의원(한나라당)과 민생경제정책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인터넷중독 예방·치료 기금마련을 위한 기업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토론회.

 


 

이 행사는 두 가지 면에서 아직도 뚜렷이 기억됩니다.

 

1. 게임중독기금의 기업 부담


게임중독을 '수익자부담원칙'에 의해 기업 부담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패널로 참가한 김춘식 경민대 교수는 "방송의 경우 방송발전기금을 조성하고 있는데, 금액은 매출액의 6% 이내에서 결정된다. 원인을 제공한 기업이 매출의 일정액을 기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습니다. 2010년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약 6조6,000억 원이었으니까, 방송의 경우를 적용할 때 약 4,000억 원의 기금을 걷자는 얘기였죠.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도 "게임업계는 그 이익의 10% 이상을 중독 문제를 해결하고 아동 청소년들을 중독으로부터 예방하기 위해 출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2조 원 가까이 됐던 게임산업 영업이익을 감안할 때 그가 기대하는 기금 규모는 2,000억 원 수준이었죠.


2,000억과 4,000억. 게임업계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날이었습니다.


2. 짐승뇌


이날 권장희 소장이 이야기한 ‘짐승뇌’가 게이머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권 소장은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들은 전두엽의 발달이 늦어져 모든 일에 반사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짐승과 비슷한 상태로 변한다. 지금 (한국의) 교실에는 게임 때문에 얼굴은 사람인데 뇌 상태가 짐승 같은 아이들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게임을 하면 전두엽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은 2002년 일본에서 발간돼 화제가 됐던 <게임뇌의 공포>(모리 아키오, NHK 출판)와 흡사합니다. 체육학과 교수인 저자는 사람이 게임을 즐길 때의 뇌파가 치매 상태와 비슷하게 변해 전두엽 전부피질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현상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이 주장은 일본이나 전 세계적으로 ‘말도 안 되는 가설’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일본 신경과학학회 회장 출신인 츠모토 타카지 교수 교수는 ‘신경학에 대한 신뢰를 해친다’고 비판했고, 미국의 연구기관 Mind Research Network는 <테트리스>를 하면 오히려 전두엽 부위의 효율화가 진행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죠. 이에 관한 이야기는 이 시리즈 다음 꼭지에서 조금 더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패스.


당시나 그 후, 게임매체를 포함한 주요 언론의 관심과 보도는 이 두 가지 이슈에 집중했습니다.


토론회 당시나 그 후, 게임매체를 포함한 주요 언론의 관심과 보도는 이 두 가지 이슈에 집중했습니다.

 

 

토론회 뒤의 큰 그림자 : 뉴라이트


최근 게임업계에 대한 각종 규제 법안이 넘쳐, 이 행사를 되짚어봤습니다. 그때는 잘 안 보였던 게 보였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인물들의 대단한 면모였죠.

 



1. 이상득 의원(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정권 내내 '상왕'(上王)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정치인입니다. '만사형통'(모든 일은 형을 통하면 된다)이라는 별명을 보면 어느 정도 힘이 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박희태 국회의장(한나라당): 금배지를 6번이나 단 관록의 정치인입니다. 2008년 정몽준 의원을 누르고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됐고, 2010년 제18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이 됐습니다. 대통령, 대법원장과 함께 삼부요인이었죠.

 

3. 김무성 원내대표(한나라당): 당시 4선의 중진 국회의원이었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선거대책위원회의 부위원장이었고, 그 해 11월 최고위원의 자리에 올랐죠.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다시 한나라당으로 돌아와 원내대표까지 됐습니다.


4. 안경률 행정안전위원장(한나라당): 당시 3선의 중진 국회의원이었습니다. 한나라당 친이명박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의 대표였죠. 토론회 당시 원내총무 경선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역대 게임과 관련된 토론회나 공청회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 정도의 인물들이 참석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당대 최고 실세들의 등장. 도대체 왜 이랬을까요?


행사를 주최한 측을 살펴봤습니다. 이정선 의원. 큰 지명도나 영향력은 없던 초선의 비례대표 의원이었습니다. 패스.

 

민생경제정책연구소. 개인적으로 생소했습니다. 민생 경제를 염려하는 곳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이 왜 이런 행사를 했을까, 어떤 영향력이 있어 거물들을 불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더 들여다봤습니다. ‘뉴라이트’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습니다. 민생경제정책연구소는 2008년 10월 ‘사단법인 뉴라이트’가 이름을 바꾼 곳이더군요.

 

이 연구소의 이사장인 김진홍 목사도 이날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의문이 풀렸습니다.


김 목사는 2007년 대선에 영향을 미친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당시 17만 명의 회원을 가진 뉴라이트 전국연합의 상임의장으로, 이명박 정권의 핵심 개국공신 중 한 명이었죠. 언론에선 ‘멘토’ 또는 ‘절친’이라는 수식어로 이 대통령과의 두터운 교감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종교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 들어가 몇 차례 가족예배를 집전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고요.


이런 인물이 뜨고, 이사장을 하고 있는 곳에서 주최한 행사이니, 당대 거물급 정치인들이 모여들 수밖에요.


※ 뉴라이트란?

 

일반적으로 뉴라이트 전국연합, 시대정신, 한반도선진화재단 출신 인사들을 뉴라이트로 분류합니다. 이 단체 출신이 아니어도 이승만·박정희 재평가, 국가 정체성, 북한 인권운동 등을 강조하는 세력을 포괄적으로 뉴라이트로 묶기도 하죠.

 

2004년 총선 패배 이후 행정부와 입법부를 빼앗긴 보수세력은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뭉쳤고,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정권 만들기’에 전력질주했습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박근혜 후보와의 당내 경선,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출마 국면에서 이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죠. 이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07년 12월 22일 뉴라이트전국연합 송년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뉴라이트의 많은 인사들이 정치권에 진입했습니다. 신지호, 조전혁, 박영아, 김성회, 장제원 등은 18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죠.


뉴라이트 학자들이 주축이 된 교과서 포럼은 2008년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박정희 긍정적 재평가론이 담긴 <대안교과서>를 펴낸 데 이어, 2011년에는 <대안교과서>의 내용을 토대로 교육과학기술부에 ‘역사교육과정 수정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죠.

 

 

뉴라이트의 게임중독에 대한 집착


그런데, 이게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민생경제정책연구소와  이정선 의원이 공동주최한 토론회가 전해에도 있었더군요. 2010년 1월 국회 헌정기념관 2층 대강당에서 ‘인터넷중독 예방과 치료관련 입법마련’이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날도 거물급 정치인들이 참석했죠. 정몽준 최고위원,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 등.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른 인터넷중독 예방 재원 마련’이란 논리는 이 때부터 이미 등장했습니다. 패널로 참석한 김춘식 민생경제정책연구소 방송통신정책전문위원은 “청소년층의 인터넷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본격적인 투자가 필요하며 재원은 수익자부담 원칙에 의해 인터넷 사업자가 부담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춘식 위원. 어디서 들어봤나 했더니, 2011년 3월 토론회에서 4,000억 원의 기금조성을 주장했던 경민대 교수였습니다. ‘사업자 부담의 재원 마련’이라는 뉴라이트의 주장은 2010년부터 일관된 기조가 서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의 실현을 위해 민생경제연구소는 2010년 1월 상반기부터 활활 불타오릅니다.

 

1월 25일 논평


엔씨소프트 등 인터넷게임 사업자들에게 동일인의 자사게임 이용시간을 주당 15시간 이하로 제한하도록 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정부는 사행성이 있는 어떤 인터넷게임업체를 이용하더라도 종합하여 주당 15시간 이하로 인터넷게임 이용을 제한할 수 있는 컴퓨터서버를 도입하여 과도한 게임시간으로 발생할 수 있는 폐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게임산업도 사행산업으로 규제해야 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인터넷게임도 사행산업으로 분류해 통합감독하여야 한다.

2월 22일 성명


친어머니 살해하게 한 인터넷게임업체는 공식 사과하라. 경찰은 비극적 인터넷게임의 명칭을 밝히고, 정부는 인터넷중독성 조사하라.

3월 2일 논평


게임중독, 대통령 직속기관에서 관리해야 할 심각한 문제다. 어린이, 청소년보호 특별법 제정하고, 모든 중독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게임중독에 대해 공급자들에 대한 부담을 지워야함은 물론이고, 게임중독을 야기하지 못하도록 모든 법규를 동원해야 한다.

3월 7일 성명


문화부, 하루 10시간 게임해도 좋은지 입장을 밝혀라.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사들과의 간담회에서 분명히 밝혀야 한다.

4월 1일 논평


문화체육관광부의 게임아이템 거래금지 검토, 환영한다. 폭력성, 사행성 게임은 육성해야 할 산업이 아니다.

1월에 꼭 집어 비판을 받았던 엔씨소프트는 1년이 지나 다시 지탄을 받습니다.


2011년 1월 19일 논평


게임중독 문제해결은 게임업체가 주도해야 한다. 사회적책임은 뒷전이며 프로야구 진출에만 매진하는 업체는 사회적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

 

뉴라이트의 사정


민생경제정책연구소는 2010년 1월부터 줄기차게 인터넷게임 업체와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그리고, 중독 예방 재원 마련을 위한 게임회사의 책임을 강조했죠.

 

당시의 게임규제와 관련된 초미의 관심사는 ‘셧다운 제도’였습니다. 대부분의 규제 찬성론자들은 '청소년보호법' 개정을 통한 셧다운제 쟁취에 전력질주하고 있었던 형국이었죠. 그런데, 민생경제연구소는 왜 갑자기, 그리고 벌써 ‘쇼미더머니’를 외치고 있었던 걸까요?

 

이 시절 뉴라이트의 사정을 들여다봤습니다.

 

2008년 2월, 뉴라이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집권 후 뉴라이트 측은 확실한 논공행상을 기대했을 겁니다. 대통령 당선자가 뉴라이트 전국연합 송년회까지 와서 감사 인사를 했을 정도니, 기대가 컸겠죠.

 

하지만, 떡고물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정권의 최대관심사는 4대강이었고, 건설사나 지주와 달리 뉴라이트 측에서 이권에 직접 개입할 여지가 크지 않았을 테니까요.

 

집권 1년 뒤, 이런 기사(일부 인용)가 나왔습니다.

뉴라이트 "왜 후원않나" 기업명단 공개 (한겨레신문, 2009년 2월 24일) [기사 원문 보기]

보수 성향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의 핵심 간부가 자기 단체에 후원금을 내지 않은 기업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공개 비판해 논란을 빚고 있다.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은 24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기념 토론회’에서 “에스케이(SK), 포스코, 롯데 등은 (지난 정권 때) 좌파 단체 쪽에 수십억원에서 백억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고, 한국전력·석유공사·토지공사·가스공사 등 공기업들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지원했다”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기업들은 지난해 보수우파 시민단체가 주최한 공동 후원행사에 단 1원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100여개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12월1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동 후원행사를 열고, 행사에 앞서 기업체 100여곳에 후원금 입금 계좌를 적어 넣은 초청장을 보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지금 시대에 어떤 기업이 이것(초청장)을 ‘압력’으로 받아들이겠느냐”고 해명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뉴라이트는 인터넷과 게임을 '수익창출'의 타깃으로 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0년 상반기 우르르 쏟아졌던 논평과 성명들은 분위기 조성을 위한 밑밥입니다. 2010년과 2011년 연초에 진행한, 정치권의 실세들이 출동한 토론회는 '수익모델의 입법화'를 위한 무력시위였을 거고요.

 

이는 단순히 추측만은 아닙니다. 뉴라이트는 게임 말고도 다른 분야에서도 이미 그런 수익모델을 확인했으니까요. 위에서 언급했듯, '사단법인 뉴라이트'는 2008년 10월 '민생경제연구소'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개명(改名)에는 나름의 그럴 만한 사정이 읽혀집니다.

 


뉴라이트의 수익모델과 이후의 경과에 대해서는 다음 꼭지에서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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