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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오버워치 '아나' 이선주 성우, 자진 하차 의사 밝혀

"과거 언행에 머리숙여 사과, 아나 역할 내려놓을 것"

이승운(리스키) 2016-07-21 23:32:31

 

<오버워치>의 신규 영웅 '아나'의 성우 이선주씨가 자진 하차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3일, 블리자드는 <오버워치>의 신규 캐릭터 '아나'를 발표하며 이선주 성우를 아나의 목소리로 기용했다. 유저들은 신규 캐릭터 등장을 환영한 반면, 발표에서 이틀 뒤 공식 홈페이지의 토론장을 통해 "성우를 교체해 달라"는 의견을 냈다.

 

유저들의 이런 요구는 이선주 성우가 과거 성희롱 논란이 있었던 임하진 성우를 대변했던 것에서 기인했다. 지난 2012년 <덴더라이언>이라는 게임에서 임하진 성우가 미성년자 유저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논란이 일었고, 성우협회로부터 6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일이 있었다. 당시 이선주 성우는 임하진 성우를 대변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몰아붙였다고 알려져 논란이 됐다.

 

때문에 <오버워치>에서 아나의 목소리로 이선주 성우가 채택됐을 때부터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끊임 없이 성우 교체를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돼 왔다. 그리고 21일, 이선주 성우는 한국성우협회 게시판을 통해 "불편을 끼쳐드린 유저분들과,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친 블리자드 코리아에 사과를 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설명에 따르면 아나 캐릭터 공개 후 성우 교체 여론이 형성되고, 이에 18일(월) 이선주 성우 본인이 블리자드 코리아에 자진 하차 의사를 내비쳤다고 한다. 하지만 20일(수) 아나 캐릭터는 변경 없이 출시됐고, 현재는 이선주 성우의 자진 하차 의사와 별개로 블리자드 코리아 내부에서 성우 교체 여부를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아래는 이선주 성우가 공개한 입장의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성우 이선주입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오버워치'의 신규 캐릭터 '아나'로 인해, 약 3년전에 있었던 저의 언행이 다시금 거론되면서 많은 분들께 불편을 끼쳐 드리고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라도 그 일에 대해 스스로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고, 사과드릴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사안이 재조명된 계기가 '오버워치'를 통해서였으니만큼, 우선 불편을 끼쳐드린 유저분들과,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친 블리자드 코리아에 사과를 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 안 그래도 이미 마음의 상처를 받은 상태인데, 저로 인해 또 다른 상처를 받았을 피해자 분들, 그리고 저 이선주라는 성우에 대해 실망하신 분들께 제 언행에 대하여 진심으로 머리숙여 사과드립니다. 뒤늦기 짝이 없는 사과여서 더욱 면목이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제 언행에 대한 구체적인 사과와 해명에 앞서, 현재 진행중이고 주목받는 사안이 '오버워치'의 '아나'캐릭터 캐스팅에 관한 문제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상황인지부터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밝혀드리겠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인 7월 14일에 캐릭터 테스트를 위한 사전 공개 이후, 게임을 하시는 분들 상당수가 블리자드 코리아에 성우 교체 요청 민원을 넣었고 여론이 많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주변 지인을 통해 먼저 접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인 7월 18일에 블리자드 코리아에 자진 하차 의사를 먼저 밝혔습니다.

 

그런데, 7월 20일 수요일에 '아나' 캐릭터가 테스트를 마치고 정식 출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블리자드 코리아 내부에서는 저의 자진 하차 의사와는 별도로 성우 교체 여부를 검토중이라는 답변을 들은 것 까지가 현재 상황입니다.

 

 

이제 뒤늦게나마 녹취록과 관련된 사과와 해명을 드릴까 합니다. 궁색한 변명으로만 받아들이실 수도 있지만, 송구스럽게도 저로서는 정말 진심을 다한다고 밖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 해명을 도리어 어이없어 하시진 않을까, 불난 집에 기름 붓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만, 모쪼록 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만이라도 다소 가라앉혀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이야기를 진행하려면 자연스럽게 그 날 피해자분들을 대표해서 나와주신 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텐데, 본명 공개는 당연히 안 될 일이므로, 녹취록이 공개된 곳이기도 하고 가장 활발하게 많은 분들께서 상황을 지켜봐 주신 곳인 디씨인사이드 성우 커뮤니티에서 쓰셨던 닉네임인 '현'으로 호칭하도록 하겠습니다.

 

 

크게 보자면 세 가지 맥락에서 제가 질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 팬들을 상대로, 심지어 그 중에는 미성년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향해 명백히 성희롱으로 볼 수 있는 언행을 한 성우를 제 식구 감싸기 한 것,

 

2. 대화를 하기 위해 나온 현 양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인데, 그녀를 오히려 가해자(또는 원인 제공자)마냥 몰아세운 것,

 

3. 이에 대해 그간 사과는커녕 해명조차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동안의 저는 되려 억울해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디씨인사이드에 올라온, 녹취 음성을 글로 옮겨놓은 게시글에 대해 알게 됐을 때는 '대화 당사자인 우리들 중 누군가가 정리한 것도 아니고, 내용이 잘 안 들려서 적지 못 했다는 이유로 일부 빠져서 완벽하게 옮겨 놓은 것도 아니고, 똑같은 말도 말로 할 때와 글로 표현할 때 뉘앙스의 차이가 생길 수도 있게 마련인데 현장에 나갔던 제가 보기엔 게시글은 말의 뉘앙스도 상당히 왜곡되어 보이는데 이것 때문에 제가 비난을 받고 있다. 이건 네티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상당하다' 라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억울함 또한 저 자신의 관점으로만 바라본 감정이었습니다. 그 날 대화에서 제가 현 양은 물론이고 함께 참석한 동료 성우들의 말도 중간중간 끊으며 제 말만 했던 것, 이야기를 하다보니 감정이 격앙되어 공격적인 말투로 말했던 것, 그리고 현 양을 비롯한 피해자 분들도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표현한 몇몇 워딩들은 분명한 사실로 남아 있습니다.

 

'오버워치'로 인해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나서, 제가 녹취한 음성파일을 다시 들어보기도 하고, 약 3년 정도 지나고 나니 스스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었던 듯하고, 특히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당시 피해자 분들 및 네티즌 분들과 세대적 공감을 할 만한 젊은 지인들의 생각도 주의 깊게 들으며 당시 저의 사고방식에 뭐가 문제였는지를 파악해 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심적 공감과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이 원인은 이거였고, 저 원인은 저거이지 않았느냐' 하는 식으로 추궁을 하듯 발언을 하고 '원인 제공은 당신들에게도 있다' 하는 식으로 말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임 군이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할 지라도 자신의 언행을 분명 시인한 시점에서 사안의 핵심은 이미 양 측의 말이 일치한 셈이 되는 건데, 그럼에도 내 식구 감싸기 식으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왜 그 당시에는 사과를 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저의 안일함과 그로 인해 시기를 지나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임 군에 대해 한국성우협회 홈페이지에 올린 협회의 공식 징계 결정문에 보면 징계와 관련한 이야기 뒤에 '불충분한 사전 정보 파악과 그로 인한 미숙한 대응으로 인해 피해자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하다'라는 취지의 사과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본문을 증명하고 싶은데, 게시글이 어디로 갔는지 저도 확인이 안 됩니다.)

 

비록 이것이 협회 차원의 공식 발표였다 하더라도, 그 날 그 시각에 대화에 나섰고 그러한 태도와 일련의 문제되는 워딩을 말한건 바로 저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미약하게나마 사과를 표했어야 했고, 하다못해 '공식'이라는 명분 하에 사과 없이 어물쩍 넘어가는 모양새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제 때 수습에 나섰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안일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사안에 대해 성우 팬 여러분 사이에는 저에 대한 이미지와 정론이 굳어가는데, 그 와중에 느닷없이 튀어나와서 사과를 표명하자니 제대로 받아들여 지지도 않을 것 같고.... 그렇게 됐었습니다.

 

 

임 군을 제 식구 감싸기 했던 것은 상당 부분 맞습니다. 녹음실에서 평소 마주치는 임 군은 선배들에게도 싹싹하고 제 할 일도 열심히 하는 후배여서 이미지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일이 터지고 이러한 정황을 알게 됐을 때는 저도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저는 동료 선배 성우이니 당연히 임 군의 주장과 해명을 먼저 들어둔 상태였고, 임 군으로부터 해명을 들었을 때는 그게 할 소리냐며 선배로서 크게 혼을 냈었지만 그러면서도 윤리 위원회에서 소명할 때는 기를 전혀 못 펴고 다니면서 사람마저 바뀐 것 같은 모습을 막상 눈앞에서 보니 측은지심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현 양과의 약속장소인 경주로 출발할 때부터 임 군에 대해 선처해 줄 것을 부탁할 생각도 가지고 대화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제가 부탁하고자 했던 '선처'는 결코 임 군을 용서해 달라, 없던 일로 해달라 라는 취지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다만, 아직 법적 공방까지 일이 커지지 않았고, 저는 물론이거니와 협회 및 현 양께서도 그렇게까지 사태가 확장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에, 아직 서로의 선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 양과의 만남을 마치고 협회로 돌아와서 임 군은 징계를 받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록 텍스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지만, 법원까지 일이 올라가 버리면 그 땐 협회에서도 실제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법원의 판결이 피해자 분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랬다간 피해자 분들 입장에서 상황이 엄청 꼬여버리게 되고, 이 부분을 저는 당시에도 진심으로 우려했던 부분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 이 문제를 말씀드리는 과정에서도 '피해자를 가해자 취급했다'라는 인상을 드린 듯 합니다.

 

 

'여러분이 원인 제공한 측면도 있다'라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서 조금 더 해명을 드리자면, 두 가지 맥락에서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사건의 경위적 흐름상 당연히 피해자 여러분도 원인 제공의 빌미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과, 그보다 더 큰 이유로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된 책망이 섞였습니다.

 

특히 현 양이 성인이 된 이후, 서울에 올라왔다가 집에 못 돌아가고 임 군에게 도움을 청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현 양의 판단이 이해도 안 됐고 안타까움도 더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같은 여성인데 어떻게 저런 식으로 말하는가', '딸이 있다면 대략 현 양 나이쯤 됐을 텐데, 저런 말이 나오나' 등의 비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그러한 맥락 때문에 그런 책망이 나왔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흉흉한데, 아무리 차도 끊기고 돈도 없기로서니, 어쩌자고 인간적 유대관계도 그리 깊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과거에 이미 안 좋은 인상을 받은 남자를 찾아가느냐, 내가 현 양이었으면 아무리 갈 데가 없어도 거기만은 안 갔을 것이다' 라는 생각과 심정이었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심정이 앞서다 보니, 현 양이 임 군을 찾아간 경위가 뭐가 됐든, 임 군은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게 당연지사인데, 그 생각은 떠올리지 못 한 채 현 양만을 책망했습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행동 방식에 대한 제 가치관도 작용했습니다. 제 또래는 집안으로부터든 사회로부터든 '흉흉한 세상에선 여자가 먼저 조심을 해야 한다'라는 인식과 가르침을 받아들인채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령 행동 가치관에 있어 제가 그런 면을 가졌다 하더라도, 조금만 더 이해하려 하고 배려하고자 했다면 잘못된 상황의 핵심이 무엇인지 생각을 못 할 부분도 아니었을텐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 부분은 제 심정에 관한 부분이라, 저로서는 읽고 계신 여러분께서 믿어 주시길 바랄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시기와 계기로 보아, 저의 사과와 해명이 계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빨리 생각을 정리하고 밝혀드리지 못 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타이밍을 놓치면 앞으로 여러분께 제 생각과 사과를 밝힐 수 있는 때는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대로 영영 안 하는 것보다는 이제라도 사과를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저에게 실망하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머리숙여 사과드립니다.

 

두서없는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 07. 21

성우 이 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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