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파이터(1991)]대구 1991년 여름

작년 11월에 열린 한국게임컨퍼런스(KGC)에서는 게임을 소재로 한 미술 전시회인 ‘픽셀 온 캔버스(Pixel on Canvas)’가 열렸습니다. ‘미술로 보는 게임의 역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이 전시회는 젊은 회화작가들이 모여 게임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 30종을 선보였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게임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매체간의 접목에 의의를 두고 이번 전시 작품들을 연재물로 제작해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작품 설명은 ‘픽셀 온 캔버스’의 행사 기획을 맡은 게임평론가 이상우 씨(중앙대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과정)가 맡았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편집국

 



“KEN, RYU, SAGAT, BLANKA”, Acrylic on Canvas, 53 ×45.5cm, 4ea,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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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전자오락실을 생각하면 현란한 ‘이미지’보다는 쿱쿱한 ‘냄새’와 ‘온도’가 먼저 떠오른다. 요즘이야 피씨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쾌적한 환경을 자랑하지만 예전 오락실의 냉방장치라곤 삐걱삐걱 돌아가는 선풍기가 전부였다. 아이들이 게임에 열중하면서 뿜어내는 열기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비록 디지털로 표현되더라도 게임은 본질적으로 정신적, 신체적인 활동이다. 게이머로 가득한 전자오락실은 피트니스 센터 못지않은 열기를 뿜어낸다. 흔히 게임을 기계와 인간이 쓸쓸하게 마주하는 활동으로 생각하지만 전자오락실은 땀 냄새와 체온으로 가득 찬 사회적 공간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2>는 당시 오락실의 열기를 몇 배 이상 끌어올린 게임이다. 참으로 무더웠던 대구 1991년 여름. 

대전격투게임의 등장 이후, 기계와 사람과의 대결은 사람과 사람과의 대결로 바뀌었다. 중요한 건 ‘짧은 대결’이라는 점이다. 3판 2선승제의 승부. 이전의 게임들은 적어도 2~30분 동안 기-승-전-결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대전격투게임은 단 몇 분만에 도전과 보상의 피드백이 완료된다.

예전에는 공짜 게임의 기회(보너스)를 스코어를 통해 획득했고, 그 수도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격투게임에서는 실력만 받쳐준다면 무제한의 공짜 게임 기회를 상대방의 주머니에서 뽑아낼 수 있었다. 승자와 패자의 구분은 보다 빨라졌고, 빠르게 투입되는 금액만큼 긴장감도 높아졌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심장박동수는 증가하며 체온은 상승한다. 어떤 선풍기가 그 열기를 식힐 수 있었을까. 열기 속에서 오락실 주인들은 더 많은 수입을 거두었다. 작은 오락실 공간은 어느새 격투게임으로만 채워졌다. 뭔가 오락실이 이상하게 변했다고 느낀 것은 그 열기가 어느 정도 식어버린 뒤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 갈 수 없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2>는 오락실의 온도와 경험을 한꺼번에 바꿔놓은 게임이었다. 그것이 좋은 변화인지 나쁜 변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류와 켄의 파동권은 게임의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이 작품은 <스트리트 파이터 2> 게임에 등장하는 격투가 4명의 초상을 그린 것이다. 모든 인물들은 게임 속 캐릭터 선택화면에 등장하는 일러스트와 동일하다. 다만 굵은 선으로 보다 만화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작품에 사용된 기법은 작가의 기존 창작방법과 유사하다. 특히 흑백으로 표현한 류와 켄은 앞서 소개했던 <Link>와 같은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 작품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개별 작품의 표현보다는 각 그림간의 ‘대결구도’다.

각 그림들은 2개씩 쌍을 이뤄 서로 마주보고 있다. 개별적으로는 하나의 ‘초상’에 불과하지만 이 그림에는 ‘경쟁’의 방향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두 개의 서로 다른 방향성이 만나면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전까지 2인용 게임은 대부분 서로 협력하여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구조였다. 하지만 대전격투게임은 서로를 쓰러뜨려야 하는 적으로 만들었다. 대전격투게임은 서로 같은 화면을 바라보던 경험을 서로 마주보는 경험으로 바꿔놓았다. 비록 같은 화면을 보고 있지만 실제로 보고 있는 대상은 바로 옆에 앉은(혹은 건너편 기계에 앉은) 게이머다.

이전까지 게임 화면 속 캐릭터는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었다. 익숙해지면 예측이 가능했고, 정해진 패턴대로 대응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캐릭터들은 누가 플레이하느냐에 따라 다른 개성을 드러낸다.

게임에는 수비적이고 소극적인 류와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류가 공존한다. 게임 속 캐릭터들은 동일한 그래픽 안에서 게이머에 따라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내가 오락실에서 느꼈던 열기는 그 다양한 의미들의 서로 충돌하며 만들어낸 열에너지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