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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울티마(1980)] 역할 놀이, 그 불편함에 대하여

미술로 보는 게임 역사 '픽셀 온 캔버스' (07)

디스이즈게임(디스이즈게임) 2012-01-02 12:05:07

지난 11월에 열린 한국게임컨퍼런스(KGC)에서는 게임을 소재로 한 미술 전시회인 '픽셀 온 캔버스'(Pixel on Canvas)가 열렸습니다. '미술로 보는 게임의 역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이 전시회는 젊은 회화작가들이 모여 게임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 30종을 선보였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게임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매체간의 접목에 의의를 두고 이번 전시 작품들을 연재물로 제작해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에는 '픽셀 온 캔버스'의 행사 기획을 맡은 게임평론가 이상우 씨(중앙대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과정)가 작품 설명을 맡았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가족들도 이러한 예술 작품 관람을 통해 심신의 안정에서 되찾고 짐승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영혼의 인간으로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작품은 <울티마>입니다. 롤플레잉게임(RPG)으로 넘어왔네요. 이번 작품은 역할놀이의 불편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요. 그 내용을 들어보시죠. /디스이즈게임 편집자 주


 

  “실상 속의 허”, mixed media on canvas,80.3x60.6cm, 2011 [원문보기]

 

‘나는 누구인가?’ 타인은 결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오직 나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도 이 질문에 확실한 정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구조적으로 얽혀 있다. 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실상 내가 아니다. 오히려 나를 둘러싼 환경과 관계가 나를 규정한다. 즉, 주체는 어떤 환경 속에 던져져 있느냐에 따라 그 역할이 결정된다. 결국 잘 산다는 것, 혹은 주변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그만큼 그 자리에서 해당 역할을 잘 연기한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롤플레잉 게임과 동일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게임이 조금 더 비현실적인 환경과 캐릭터를 제공할 뿐, 사실 역할 놀이 자체는 현실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울티마>의 캐릭터 특성은 체력, 민첩성, 공격력 등 몇 가지 수치로 결정된다. 수치만 봐도 내가 어떤 역할을 하는 캐릭터인지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역할은 연기하는 본인도 어떤 역할인지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의 역할 놀이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멋진 역할을 수행하느냐가 아니다. 나에게 맞는 역할인지, 내가 바라는 모습과 일치하는 역할인지가 보다 중요하다.

 

 

<실상 속의 허>는 역할 놀이라는 롤플레잉 게임의 근본적인 속성에 대한 질문이다. 그림 속 남자(?)의 표정은 어떤 기분인지 잡아내기가 애매하다. 웃는 듯 보이지만 잔뜩 찡그린 것 같고, 뭔가 고통을 참아내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을 비웃는 시선도 느껴진다.

 

잔뜩 부은 두 눈은 심하게 구타당한 사람 같기도 하고, 늦잠을 자다 방금 일어난 사람 같기도 하다. 흑인 남자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입술은 여성에 가깝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면 더욱 혼란스럽다. 그는 보석으로 치장한 원피스를 입고 있으며, 손가락은 남자 같지만 팔목은 여자 같다.

 

어디 그 뿐이랴. 인체의 비례나 움직임도 어딘지 어색하다. 목은 과도하게 뒤틀려 있고, 손목이나 손가락은 부자연스럽게 굳어 있다. 화면 속 사내는 불편한 자세를 일부러 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야말로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닐까? 현실에서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행동들을 억제하고 최대한 부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찡그리고 싶을 때 억지로 웃어야만 하는 일을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현실의 역할놀이는 게임처럼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분명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역할과 진짜 자신과의 거리다. 무대에 오르면 누구나 경직되기 마련이다. 분명한 건 자신의 어색함을 인식하는 배우만이 비로소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울티마 (Ultima)

 

- 발매시기: 1980년
- 플랫폼: PC
- 제작: 오리진

 

롤플레잉 게임(RPG) 장르는 <던전앤드래곤>(D&D)이라는 보드게임에서 출발한다. <D&D>의 경험을 컴퓨터 게임으로 재현하려는 과정에서 RPG 장르가 탄생했는데, <울티마>는 <위저드리>와 함께 초기 RPG를 대표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브리타니아라는 세계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성장시키면서 방대한 모험을 하게 된다. 초기 RPG에서 그래픽은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중요한 상황이나 대화는 모두 텍스트로 표현되었다.

 

 

 

[작가] 박찬미 Park, Chan-mi [email protected]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재학


단체전

 

2010

<美 완성> 전 (이형아트센터, 서울)

 

2008

아시아 대학생, 청년작가 미술축제 공모 <When we first met>전 (구 서울역사, 서울)
제9회 연례작가교류 프로그램 <시사회 & 리뷰> 전 (대안공간 팀 프리뷰, 서울)

 

2006

한-일 교류 <Is my bag Empty?> 전 (나고야 시민문화관 YADA 갤러리, 나고야, 일본)

 

2005

<父母님 前上> 전 (경원대학교 K-art space, 서울)
한-중-일 교류 <What's in your bag?> 전 (경원대학교 K-art space, 서울)

 


[필자] 이상우 [email protected]

 

 게임평론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게임문화연구회에서 활동 중이며, 2011년 ‘Pixel on Canvas - 미술로 보는 게임의 역사’ 전시회를 총괄 기획하였다.

 

 

  • [팩맨(1980)]채워지지 않는 조각

  • [플라이트 시뮬레이터(1980)] 추락하는 꿈에는 날개가 없다

  • [울티마(1980)] 역할 놀이, 그 불편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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