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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G러닝@미국]권력투쟁에 휘말리다

위정현 교수의 'G러닝, 미국에 가다' (2)

디스이즈게임 2012-02-15 10:51:11

어떤 회사가 미국 시장에 콘텐츠를 론칭했다고 하면, 특히 미국의 공교육에 도입했다고 광고하면 사실 확인을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실제로 필자가 만나 본 몇몇 국내회사는 미국 초등학교에 교재를 기부한 후 언론에 미국 공교육 진입으로 광고하고 있었다.

 

물론 미국 학교도 교재를 기증한다고 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두 손 들어 환영한다. 공짜로 주는 데 한해서이지만.

 

이런 허위를 판별하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미국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복잡한 사전 절차와 계약서의 존재 여부다. 이런 장애물을 거치지 않고 미국의 공교육에 진입해 수업하기란 불가능하다. 한국에서도 정부나 교육청의 관료주의에 대한 지탄이 심하지만 미국의 관료주의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하다. 미국의 행정 절차는 한국보다 훨씬 규정도 까다롭고 절차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하다.

 

미국 컬버시 교육구에 G러닝을 도입하기로 결정된 다음, 펀드 조달, 콘텐츠 기획 등등의 준비를 착수했다. 컬버시의 후보 초등학교와 교장, 교사에 대한 조사와 학교 선정 작업도 동시에 진행됐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부교육감이 황급히 나를 보자고 말했다. 민망한 표정을 짓는 부교육감은 이야기를 뱅뱅 돌리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닥터 위, 우리 교육구에서 실험하려면 사전에 TB테스트(결핵반응검사)와 지문조회, 계약서 작성 등을 해야 하는데 일정상 이것들을 생략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정이 생겼어요. 정말 미안하지만 이런 절차를 밟아 줘야 할 것 같네요. 저도 어쩔 수 없어요

 

TB테스트는 결핵균 보유에 대한 검사였다. 미국은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라 특히 결핵에 대해서는 대단히 엄격했다. 지문 조회는 혹시 있을 지 모르는 강도나 성범죄 등 범죄자의 학교나 교육구 출입을 막기 위한 사전 확인 절차였다. 이해는 되지만 왜 갑자기 이 시점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지 궁금했다.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교육위원인 캐디와 부교육감이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교육구 내에서 별다른 장애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 그곳도 인간 사회라 파벌과 인맥을 둘러싸고 복잡한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 캐디의 반대파 측에서 볼 때 G러닝이 성공하면 안되기 때문에 시작을 방해하려고 장애물을 설치한 것이었다. 시간이 없어 이런 절차를 생략하려고 했는데 바로 견제가 들어온 것이었다.

 

만일 이런 사전절차가 지연되면 G러닝 수업은 정해진 날짜에 시작할 수 없고, 이렇게 되면 수업 진도와 콘텐츠가 맞지 않아 G러닝 도입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다. 또 설사 성공하더라도 이런 중대한 절차를 무시하고 진행한 게 발견되면 나중에 캐디와 부교육감은 책임져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 온다.

 

내가 물었다.

 

이 검사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요?

 

“TB테스트는 병원에 가서 하면 되고 지문조회는 경찰서에 가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FBI로 의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찰서에서 끝나면 2주일이지만 FBI까지 가게 되면 얼마나 걸릴 지 아무도 모르지요

 

사실이었다. 미국의 행정기관에 가서 서류 신청을 해 보았기 때문에 미국 행정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알고 있었다. 미국의 공무원도 기업도, 매뉴얼에 따른 각 개인의 책임과 권한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권한 내의 일이면 대단히 권위적으로 바뀐다.

 

또 처리 일정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언제 완료될 지도 모른다. 한번은 서류 추가 제출을 몇 일에 걸쳐 계속 요구하는 미국 공무원에게 도대체 언제까지 내가 서류를 들고 여기를 와야 하느냐고 따지자 너무도 당당한 표정으로 노려보며 “until I am pleased (내가 만족할 때까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요즘 한국공무원의 행정 효율성과 친절을 보면 미국인조차 충격을 받을 것이다. 한국에서 어느 공무원이 민원인을 빤히 노려보면서 내가 만족할 때까지라고 외칠 수 있겠는가. 

 

또 경찰서나 FBI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미국의 상류층이라면 자기네들 네트워크로 이들 기관에 연락해서 처리를 독촉하거나 할 수 있겠지만 아시안인 내가 어디 그럴 힘이 어디 있는가? 바로 그 날 근처 병원에 가서 TB테스트를 하고, 다음 날 컬버시 경찰서로 가서 열 개의 지문을 찍었다. 담당 경찰관은 친절했지만 그에게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었다. 그냥 하늘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암초는 더 있었다. G러닝을 플레이하는 PC다. 우리는 PC하면 개인용 컴퓨터을 가르키지만 미국에서 PC 하면 MS OS 기반의 컴퓨터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개인용 컴퓨터를 PC와 애플의 Mac으로 구분한다. 컬버시의 학교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는 Mac이기 때문에 학교에는 PC 전산실이 없었다.

 

그런데 PC를 조달해야 하는데 데스크탑, 노트북 어느 쪽이 좋을까? 비용으로 보면 당연히 데스크탑이었다. 그러나 컬버시 교육구와 회의 결과는 달랐다.데스크탑은 불가였다. 이유는 케이블 때문이었다. 만일 어린이들이 수업 중간에 지나가다가 케이블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까지거나, 심하게 다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미국은 철저하게 개인 간의 갈등을 전제로 설계된 소송 사회이다. 만일 어린이가 넘어져 다치면 부모는 누군가를 상대로 소송을 할 것인데 누가 여기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가의 이슈였다. 더구나 교육구의 프로그램이 아닌 외부의 프로그램이 도입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더욱 그랬다. 학교와 교육구의 대답은 당연히 NO였다.

 

그러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었다. 미국에서 소송에 잘못 걸리면 심한 경우 전 재산이 날아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법률 천국, 변호사 천국 미국이 빚어낸 현실이었다. 그래서 비용의 관점에서 보면 데스크탑을 조달해야 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이런 위험을 피해 갈 수 있는 노트북으로 해야만 했다. 다만 문제는 비용이 훨씬 더 든다는 것이었지만.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런 토론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묵묵히 참고가야지, 미국에 G러닝을 도입해야 하기에………..

 

열흘 후 컬버시 경찰서에서 교육구로 지문 조회 결과가 왔다.

 

‘Dr. Wi is clean’ (위 교수는 해당 없음)

 

/위정현 교수 트위터 : @Wi_Jonghyun

 

미국에서 클럽 축구를 시작한 둘째딸(초등학교 4학년). 운동 중 다치면 책임 소재를 놓고 심각한 상황이 생깁니다.

 

필자가 살던 토랜스 근처의 팔로스 버디스 해안 절벽. 사람이 없어 매우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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