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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러닝@미국]조선소 없이 배를 팔다

위정현 교수의 'G러닝, 미국에 가다'

디스이즈게임 2012-01-25 18:36:02

 

디스이즈게임이 새로운 연재물을 선보입니다. 그 이름은 바로 ‘G러닝, 미국에 가다’입니다. G러닝이란 말이 아직 생소하시죠? '게임학습'(Game Learning)의 약자로 게임을 통해 학습하는 하나의 교육기법으로 위정현 중앙대 교수님이 국내에 선보였는데요. 올해로 10년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G러닝이 한국과 일본에 이어 최근 미국에도 진출했습니다. 위정현 교수는 미국에서의 G러닝은 정말 엄청난 경험이었다고 말했는데요. 디스이즈게임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느라 바쁜 위정현 교수께 G러닝의 미국 진출을 담은 연재물을 부탁했습니다.

 

이 연재물은 약 15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업무에 치인 터라, 사진촬영도 제대로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연재물은 사진보다 본인 회고 형식의 글이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그럼 G러닝 미국 스토리를 들어볼까요?  /디스이즈게임 편집국


 

미국에 G러닝을 런칭한 지 2년이 됐다.

 

2003년 한국에서 처음 시작된 G러닝은 올해로 런칭 10주년이 된다.

 

디스이즈게임에서 미국 G러닝 도입에 관한 연재를 부탁받고 지난 날의 기록을 다시 꺼내 보았다. 순간 아득해졌다. 미국에 G러닝을 도입하는 게 이렇게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과연 했을까? 한국과 일본에서 G러닝이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미국에는 ‘스타워즈(star wars)’, 즉 우주전이라는 새로운 경지가 있었다.

 

수 많은 회의에서 만나는 미국인들의 사고 방식은 아시안과 달라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우리가 게임상의 엘프(?)라면 미국인은 다크 엘프(?) 같은 다른 종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절망감도 깊었다. 특히 나는 미국의 많은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충돌을 조정하고 제어하는 PD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G러닝 준비를 시작하면서 개인적으로 당혹스러운 질문도 많이 받았다.

 

“안식년으로 오셨으니 가족과 여행도 많이 하고 좋으시겠네요”였다.

 

여행? 가족? 안식년,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는 나와 전혀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는 G러닝을 런칭하러 미국에 왔고, 일단 미국에 온 이상 반드시 성공시켜야 했다. 이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많은 원망을 받기도 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G러닝을 도입할 학교를 찾아 나섰다.

 

한국과 일본에서 검증된 콘텐츠라고는 하지만 교육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이를 받아들여 줄 지는 의문이었다. 더구나 기능성게임 분야는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지 않은가? G러닝이 기능성게임과는 다른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인들이 얼마나 이를 이해하고 평가해 줄 지는 미지수였다.

 

LA를 중심으로 한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여러 개의 학교를 조사하고 접촉했다. 그중 LA 근교에 있는 컬버시 교육구(Culver City)가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새롭게 구성된 컬버시 교육구 간부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서둘러 회의 날짜를 잡았다. 5월 말경이었다. 회의에는 교육위원과 부교육감과 담당 팀장, 후보 학교의 교장 등이 자리했다.

 

먼저 G러닝의 이론적 설명, 확산 과정, 콘텐츠에 대한 특성, 한국에서 개발된 콘텐츠 등을 설명했다. 이들은 나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난 후 이런 저런 궁금한 점을 질문했다. 다행히 그들은 G러닝에 대해 호감을 보여 주었다. 부교육감이 질문했다.

 

“그래요. 위 교수의 G러닝 설명은 이해됐습니다. 이제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 교육구에서 사용할 G러닝을 시연할 수 있을까요?”

 

아찔했다. 예의 그 질문이 온 것이다. 사실, 미국에 투입할 G러닝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주저하다 이를 앙 다물었다.

 

“아직 없습니다”

 

순간 회의실의 모든 눈이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왔다. 팽팽한 정적에 숨이 막혔다.

 

부교육감이 다시 말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학생들이 사용할 콘텐츠를 보지 않고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어요.”

 

그렇다.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아무리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1970년대 초에 조선소도 없이 유조선을 팔았다고 하지만 그건 제조업의 세계이고, 콘텐츠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그대로 끝장나는 것이었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속이 탔다. 애써 물을 한 잔 마시며 여유를 보였지만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다.

 

“저는 좌절하고 있는 많은 미국 어린이들에게 큰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IT 강국 한국에서 검증된 새로운 온라인게임 기반의 교육방법론에 대한 결과를 신뢰하면 도입하시고, 그렇지 않다면 도입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G러닝을 투입할 지 않을 지는 여러분의 결정입니다.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일종의 초강수였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이 NO라고 하면 기회가 일순간 날아가는 것이었다. 당당히 서 있었지만, 심장이 요동쳤다.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 난 후 교육위원인 케이시가 물었다.

 

“흠… 그래요? 그런데 개발사는 어디인가요?”

 

등줄기가 곧곧해졌다. 개발사를 물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아니면 거짓말을 해야 하나?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더 크게 눈을 떴다. 케이시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콘텐츠 개발과 수업에 사용할 펀드(운영자금)는 있는 거지요?”

 

‘있는 거지요’라고 묻는 것은 예외를 생각하지 않는 질문이다.

 

드디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순간이었다.

 

“아직 없습니다”

 

순간 회의실이 크게 술렁였다.

 

이들이 미국의 대학이나 연구소와 논의하는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미국의 연구기관은 가장 먼저 연구를 위한 펀드를 준비한다. 다음에 개발사나 개발팀을 구성해 콘텐츠를 개발하고, 그 후 해당 교육 구와 투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이는 하버드이건, UCLA건 예외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내가 제안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룰과는 전혀 다른, 아니 상식 이전의 이야기였다. 나는 펀드도, 개발사도, 콘텐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UCLA의 CRESST라는 유명 연구소의 초청으로 여기에 왔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대학교수도 아니다.

 

회의실 안이 낮은 술렁거림으로 가득했다. 당혹감과 곤란함이 역력한 그들의 표정… 웅성거리는 그들의 수근거림은 안 들어도 뻔했다.

 

‘미국에 도입하는 일정이 처음부터 너무 무모한 거였나…… 그래도 할 말은 다 해야 하지 않나.’

 

나는 그들을 한 명 한 명 응시하면서 또박또박 새기듯 말을 이어 갔다.

“지금 현재는 G러닝 콘텐츠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논의된 9월 13일에 어김없이 G러닝 수업을 시작하겠다는 것을 여러분께 약속합니다. 저는 반드시 약속은 지킵니다. “

 

한동안 완고한 침묵이 계속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일단, 위 교수를 믿겠습니다. 한 번 해 봅시다."

 

케이시가 나에게 와서 악수를 청했다. 미국 G러닝이 첫걸음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웃는 척했지만, 웃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 불어 닥칠 시련이 이미 선명히 보이고 있었다.

 

이는 케이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결정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결단이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된다.

 

/위정현 교수 트위터 : @Wi_Jonghyun

 

게임을 통해 정규과목을 배우고 있는 미국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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