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습니다. 다사다난했던 2013년을 떠나 보내고 ‘올해는 조금 더 희망 찼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때마침 행운의 상징 청마(靑馬)의 해가 60년 만에 찾아왔네요. 그 좋은 기운 받아보고자 푸른 말을 찾아 보니 이 녀석,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상 속의 동물이지 뭐예요. 하지만 상상이 현실에 되는 세계가 있죠. 갑오년 새해를 맞이하여 디스이즈게임에서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푸른 말들을 한곳에 모아 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로 시작했던 새해 기획기사가 TIG 스토리가 된 사연은 무엇이었을까요?
2013.12.31. 9: 50 a.m.
국장님. E3를 지나 차이나조이를 거쳐 지스타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TIG 하반기 일정은 연말 기획기사를 끝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12월 31일, TIG는 먹고 마시는 종무식 대신 <변호인>을 단체 관람하는 문화회식이 예정돼 있었죠. 오전 근무만 하면 된다는, 기쁘고도 행복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한 2013년 마지막 날 아침, 누군가 한마디 툭 던졌습니다. “신년기획 가야죠. 막내야?!”
엊그제 연말기획을 마감했는데, 1월 1일은 당장 하루가 남았는데, 남은 시간은 얼마 없는데, 종 치는 것도 보러 가야 하는데! 느닷없이 신년기획이라니요! 하지만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아직은 일이 너무너무 행복한 ‘막내’이니까요. 어쨌든 마감은 정해졌고 기사는 써야 하는데, 시작하기도 전부터 머릿속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죠. 2014년은 60년 만에 돌아온 청마(靑馬)의 해라는 사실이요.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청마, 푸른 말. 아름다운 행운의 상징이라는 푸른 말을 보여주며 역동적이고 희망찬 한 해를 맞이해볼까? 생각해 보세요, 국장님. 상상이 현실로 되는 세상, 게임 속에 없는 게 어디 있나요. 평소 즐기는 RPG에는 타고 다니는 펫이 있고, 펫에는 말도 있고, 그러면 게임 속 푸른 말을 찾자! 네, 그렇습니다. 신년기획은 이렇게 가볍게 시작됐습니다.
2013.12.31.10:00 a.m.
국장님. 눈을 감아 보세요. 지금껏 즐겨온 게임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파아란 갈기를 흩날리며 드넓은 초원을 자유로이 뛰어다니는 푸른 말을 찾아봅니다. 무엇이 떠오르셨나요? (무언가 떠오른 당신, 왜 그곳에 계신 건가요?)
(무려 기획기사의) 마감을 5시간 앞둔 저의 머릿속은 이미 새하얘졌습니다. 대한민국에 탈것이 나오는 게임이 한두 개도 아니고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는 예상은 했죠. 그런데 막상 플레이했던 게임을 하나씩 되돌아볼수록 말 모습의 펫은커녕 푸른 말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당장 웹브라우저를 띄웠습니다. 초록 검색창, 파란 검색창 그리고 세상 모든 정보를 다 담고 있다는 새하얀 검색창까지 말이에요.
푸른 말, 파란말, 게임속 푸른 말, 푸른 말 펫….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죠. 종무식을 앞둔 즐거운 분위기의 속에서 ‘삼연벙’당한 홍진호 같은 얼굴로 광활한 인터넷 세상을 헤엄치고 다닌 지 어언 60여 분. 국장님, 저는 당장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아, 망했어요.”
2013.12.31.11:00 a.m.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약 한 시간을 헤맨 끝에 깨달은 거죠. 마감 4시간 전,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난다 긴다 하는’ 게임을 일일이 찾아보는 수밖에는! 국장님, 저희 어머니께서는 제게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머리 나쁜 애들은 손발이 고생하는 거야.”
말, 하면 생각나는 게임? 두말하면 잔소리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가 있지 않습니까?
이야, 말을 검색할 수도 있습니다.
“희망찬 신년을 위해 <앨리샤>를?”이라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머릿속엔 이미 그저 ‘말’ 하나뿐이었어요. 말이면 되는 것이었어요. 망설일 틈도 없이 일단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갔습니다. 이럴 수가, 메인화면부터 여기저기 말 천지 아닌가요! 새하얀 빛깔과 탄탄한 그들의 허벅지(?) 근육. 보기만 해도 마음이 설렜습니다.
흑마, 백마, 갈… 아니 황마 그리고 점박이. 푸른 말은 어디…?
그 옛날 유행어가 생각났습니다. “힁, 속았지?”
하지만 국장님, 여기서 실망하고 분노하고 역정을 낼 틈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선배들이 강조했던 ‘빠른 선택과 포기’가 필요한 시점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할 시간도 없습니다. 꿈과 희망이 가득할 것만 같은(?) 넥슨 먼저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딱히 없었어요. 홈페이지 맨 위에 있는 <메이플스토리>부터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게임 펫이며 탈것이며 엄청 많잖아요. 분명 그랬거든요.
강아지, 캥거루, 토끼, 칠면조…?
순결의 상징 유니콘은 참 새하얗네요….
장식, 전투, 탑승 그 쓰임새가 다양한 <마비노기>의 펫은 뭔가 다를 겁니다. 그래, 무엇보다 <마비노기>에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새까만 샤이어와 속도가 빠르다는 서러브레드, 이름답게 빛깔도 빵스럽구나.
<삼국지를 품다>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삼국지인데, 설마 <카트라이더>처럼 자동차를 타지는 않을 테니 말이죠.
국장님. 저는 넥슨 게임에는 푸른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정말 귀중한 진실을 얻었습니다.
2013.12.31.12:00 p.m.
엔씨소프트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10년이 넘은 <리니지 2>에 말이 없을 리가 없죠. 각성 클래스 전용 말들이 있잖아요. 그것도 푸른 빛깔의 말을 봤던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모두가 점심식사를 준비하던 그 때, 저는 <리니지 2> 파워북을 열어보았죠.
그리고 ‘블루팬텀’. 이름부터 ‘때깔’이 달랐습니다. 신비롭고 희망찬 푸르른 기운을 담고 있는 듯한 그 이름. 광활한 초원에 파아란 갈기를 흩날리며 힘차게 내달릴 것만 같은 그 이름. 블.루.팬.텀!
“힁, 속았지?”
분명 파랗다고 했습니다. ‘블루’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국장님, 이 녀석 자세히 보니 푸른 안장을 찬 백마인 게 아니겠습니까.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여자들도 좋아하는 <아이온>의 말은 알록달록 조금 다를까 일말의 희망을 걸어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이온>의 탈것들은 외향이 좀… 특이 하잖아요.
국장님, 어쩌면 차라리 우주선을 찾는 게 빨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13.12.31.1:00 p.m.
탈것이 있는 국산게임은 많았습니다. 전지현 누나 말마따나 ‘어마무지하게’ 많았습니다. 덕분에 일일이 찾아보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망했습니다. 많아서 쉬우리라 생각했던 이 기획은 결국 많아서 망한 겁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퇴근 2시간 전. 국장님, 이왕 망한 거 저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정말 푸른 말이 나오는 게임이 없을까? 파란 말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단 말인가!’라고 말이죠.
아무래도 제 시야가 너무 좁았던 게 아닐까 자책했습니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지구 반대편도 한나절이면 날아가는 글로벌 시대에 국산게임만 뒤지고 있었으니까요.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요즘 선배들의 지갑을 탈탈 털고 있는 ‘연쇄할인마’ 스팀을 열어 봤습니다.
하지만 전 설레발치지 않았습니다. <앨리샤>를 보며 말이 주인공인 게임은 속된 표현으로 ‘레알 말’만 나올 걸 알았으니까요. 선사시대가 나오는 <쉐도우 랜드>, 불 끄는 <이머전시 2014>, 아이언 ‘홀스’ 하우스가 개발에 참여한 <트레인즈 시뮬레이터>….
그냥 말이 주인공인 게임을 찾아봤습니다.
국장님, 요즘 세상이 ‘가짜’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보기 어려워서였을까요.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게임에서도 사람들은 ‘진짜’와 ‘리얼’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2013.12.31.1:30 p.m.
구글 플레이 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를 실행하는 순간 저의 확신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아, 이 기획은 망했다.’ 격정적이고 힘센 푸르른 말을 독자들과 나누며 기운을 북돋아주겠다는 게 저의 목표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마이 리틀 포니>의 ‘레인보우 대시’라든지 ‘플릿풋’과 같은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는 알고 있지요.
하물며 <말달리자>의 ‘해마’로 ‘희망’과 ‘행운’을 만끽해 보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청마는 역동적인 생명력의 기상으로 행운을 불러온다고 하는데, 사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갑오년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1894년에는 흉흉해진 민심 가운데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고, 그로부터 60년 후 한국은 전쟁 끝에 분단국가로 남았습니다.
2014.01.02. DAY +2
그런 우울한 생각이 들었는데 포기할 수 있나요. 왠지 푸른 말을 찾지 못하면 역사가 재현되는 게 아닐까 두려워졌습니다. 푸른 말이 상상으로 끝났기에 그 행운이, 활발하고 진취적인 기상이 일어나지 못한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지난달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속 ‘칠봉이’의 멘토 요기베라 말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그리고 마침내, 저는 해냈습니다. 현실에는 없었던 그것, 청마는 꿈같이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