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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C 2016 : GDC 서밋의 변화와 VR의 부상

이정엽 2016-04-07 17:05:53

GDC 2016이 3월 14~18일 사이 미국 캘리포니아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렸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객원기자인 이정엽 서울대 교수가 GDC를 다녀왔습니다. GDC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VR 붐이 있었던 올해 행사를 들여다 봤습니다. GDC를 넓은 시각으로 보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의 사정으로 게재가 다소 늦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편집자 주


 

GDC의 첫 출발: 산호세 시대

 

GDC는 올해 30회를 맞이했다.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게임 컨퍼런스로 거듭났지만, 그 출발은 소박했다. 1988년 4월, 게임 기획자 크리스 크로포드(Chris Crawford)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위치한 자신의 거실에서 27명의 게임 개발자와 함께 '컴퓨터게임개발자컨퍼런스'(CGDC)를 개최했다.

 

▲1988년 최초의 GDC 후 참가자들이 촬영한 사진. 앞줄 맨 오른쪽이 크리스 크로포드. 뒷줄 가운데에 갈색 티에 선글래스를 낀 사람은 인포콤에서 <비욘드 조크>, 루카스아츠에서 <룸> 등을 개발했던 브라이언 모리아티.

 

같은 해 캘리포니아 밀피타스의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2회 대회가 열렸다. 이 때는 125명의 개발자가 참여했다. 그 후 매년 참가자가 늘면서 GDC는 밀피타스, 산타클라라, 롱비치, 산호세 등 주로 실리콘밸리 남부 지역을 거쳐 2007년 이후 현재의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에 안착했다.

 

현재 GDC는 명실상부 가장 많은 게임 개발자가 참여하는 게임 컨퍼런스로 거듭났다. 올해도 2만 7,000명의 게임 개발자가 모였다. 특히 GDC와 거의 동급의 VRDC 행사를 겸해서 개최해 해당 분야 개발자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통상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리는 GDC의 메인 세션 강의는 디자인(기획), 프로그래밍, 비주얼 아트, 오디오, 프로덕션, 비즈니스와 마케팅 등 6개의 분야로 구성됐으며, 몇 년 전부터 여기에 과금(monetization) 분야가 추가됐다. 

 

메인 세션에서 다루기 어렵거나, 최근 부상하는 플랫폼이나 게임의 하위 장르에 대한 요구들이 2000년대 중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GDC는 이를 반영해 매년 업계에서 떠오르는 주제를 별도의 서밋(Summit)을 통해 다루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붐을 이룬 소셜 네트워크 게임이나 시리어스 게임, 인디 게임 등에 대한 분석과 방법론이 서밋을 통해 논의될 수 있었다. 

 

1996 CGDC 프로그램북(왼쪽)과 필자가 처음 참여했던 2007 GDC의 프로그램북. 산타클라라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하는 가운데 GDC의 위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서밋의 출발과 논의의 다양화: 샌프란시스코 시대

 

GDC에서 이러한 서밋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샌프란시스코로 안착한 첫 해인 2007년이다. 이 해에 서밋은 따로 독립되어 세션을 마련한 것은 아니었다. 프로덕션 강의로 진행하면서 강의의 제목을 인디 게임 서밋, 캐주얼 게임 서밋으로 이름 붙였다.

 

이듬해인 2008년부터 인디 게임, 캐주얼 게임, 시리어스 게임 등 3개의 서밋이 열렸고, 이러한 서밋은 스마트폰 게임, AI, 교육, 소셜과 온라인 게임 등으로 확대된다. 올해에는 인디 게임, AI, 교육, 스마트폰과 태블릿 게임, 프리 투 플레이 게임, 게임 내러티브, e스포츠, 커뮤니티 관리 등 8개의 서밋이 진행됐다. 

 

 

이 중에는 인디 게임 서밋이나 AI 서밋처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분야도 있지만, 캐주얼 게임이나 시리어스 게임, 소셜 & 온라인 게임처럼 한때 회자되다가 더 이상 논의되지 않는 분야도 존재한다. 

 

우선 시리어스 게임은 2000년대 후반부터 게임학계를 중심으로 많은 논의를 이끌어냈다. 게임학계가 시리어스 게임을 주목한 이유는 시리어스 게임이 교육, 의료, 공공 분야 등에서 활용되면서 게임의 순기능을 부각시키기 좋은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어스 게임 서밋은 게임의 효과성을 살리면서도 상업적으로 성공한 대표작들이 잘 나오지 않으면서 그 열기가 점차 시들해졌고, 2012년을 이후로 폐지되고 말았다. 

 

캐주얼 게임의 경우 2005년 Wii가 하드코어 게이머가 아닌 일반적인 대중을 상대로 인기몰이를 하면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동작 인식이 가능한 컨트롤러를 바탕으로 게임 내에서 표현되는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면 됐기 때문에, 기존 게임의 관습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캐주얼 게임 열풍은 예스퍼 율(Jesper Juul)의 책 <캐주얼 레볼루션>(Casual Revolution)에서 일종의 '캐주얼 게임 혁명'으로까지 높이 평가되면서, 소셜 게임과 스마트폰 게임의 캐주얼 게임 보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캐주얼 게임 서밋은 이와 비슷한 메커닉을 가진 소셜 네트워크 게임이나 스마트폰 게임 같이 플랫폼 주도로 논의가 진행되면서 흡수되고 말았다. 

 

이러한 논의를 이어받은 소셜 게임 서밋은 2008년에서 2012년 정도의 기간 중에 GDC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분야다. 당시 징가(Zynga) 같은 페이스북 기반의 소셜 게임 기업들은 거의 3억 명에 육박하는 월간 고정사용자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슈퍼셀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필자가 참가했던 2009년이나 2010년의 GDC에서는 소셜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다소 소외감을 느낄 정도로 시중의 모든 자본이 소셜 게임으로 쏠린 느낌을 주었다. 이를 두고 당시의 참가자들은 '소셜 게임 골드 러시’라 불렀다. 이러한  기세는 아주 오래 진행될 것 같았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이런 분위기는 이 분야 선도 기업인 징가가 IPO를 계속 미루면서 변화가 감지됐다. 게다가 소셜 게임 사용자 층은 2010년을 정점으로 2011년 초반부터 점차 정체 상태가 됐다. 그러자 2011년 GDC에서는 라프 코스터(Raph Koster) 같은 게임 개발자들이 소셜 게임은 경쟁 요소나 전투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게임 디자인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지의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셜 게임은 게임 내의 전투가 존재하지 않는 <시티빌>(CityVille)과 같은 건설형 소셜 게임을 계속 되풀이해서 제작했다. 물론 <엠파이어스 앤 얼라이스>(Empires & Allies)와 같이 부분적으로 전투를 지원하는 게임이 존재하긴 했지만, 대부분 비동기적인 형태였기 때문에 하드코어 유저들을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GDC 2011, 소셜 & 온라인 게임 서밋에서 강연 중인 라프 코스터.

 

결국 비슷한 메커니즘의 게임이 반복적으로 출시되면서 캐주얼 게이머마저 이 장르에 조금씩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후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6개월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소셜 게임은 급격하게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관련 기업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1년 말 뒤늦게 기업 공개를 시도했던 징가의 주식은 9.5달러에서 출발하여 2012년 3월 초 잠시 14.69달러를 기록했으나, 같은 해 11월이 되면 2.1달러대로 떨어진다. 2016년 현재에도 징가의 주식은 이렇다 할 반등 없이 여전히 2.16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메커닉의 근본적인 개선 없이 진부한 디자인을 반복하다가 시장 전체의 부침을 겪게 된 소셜 게임의 스토리는 현재의 스마트폰 게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VRDC의 등장과 다가올 미래 

 

돌이켜 생각해보면 캐주얼 게임과 소셜 게임, 그리고 스마트폰 게임은 대체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보편적인 게임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게임들이었다. 이러한 장르들이 플랫폼의 양적 성장을 바탕으로 한 소위 퀀텀 점프(Quantum Jump: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실적이 호전되는 것을 의미)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엄청난 사용자 수를 바탕에 둔 트래픽과 광고, 부분유료화 등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의 힘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를 등에 업고서도 이러한 장르들은 모두 서밋에 머물렀다. 그러나 올해 GDC는 VR을 자신들이 30회에 걸쳐 이룩한 컨퍼런스와 동급에 놓고 제1회 VRDC를 GDC와 함께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VR을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 이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면 VR은 보편적인 게임디자인을 매개로 해서는 달성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업계에서 소위 ‘몰입형 VR'(Immersive VR)로 분류되고 있는 오큘러스 리프트나 HTC Vive 등은 각각 599달러와 799달러에 소비자 키트와 개발자 키드를 판매하고 있다. 왠만한 콘솔 하드웨어보다 몇 백 달러나 비싼 기기의 가격은 이들이 하드코어 유저들을 위한 것임을 말해준다. 

 

시야각이 조금 좁고 성능이 떨어지는 모바일용 VR 기기들이 저렴한 가격대에 나와 있지만, 이러한 기기들 중 제대로 된 몰입 환경을 제공하면서도 100달러 가량의 저렴한 가격대를 맞춘 제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VR 게임은 ARPU가 매우 높은 기존의 하드코어 게이머 층을 공략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현재 출시된 VR 하드웨어와 게임의 가격을 고려할 때, 이러한 환경을 갖추는 것이 기존의 일반 게임 수십 종류를 더 플레이할 수 있는 것보다 가치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VRDC를 가득 메운 청중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VRDC는 수많은 예비 개발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오큘러스와 HTC, 에픽, 소니 등을 비롯한 여러 VR 관련 업체들도 처음으로 스토어에 상용 게임을 론칭하거나 앞으로 나올 게임들을 발표하면서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VRDC 관련 세션들은 자주 매진됐고, 아주 긴 줄을 선 뒤에야 입장이 가능했다. 게임 업계 종사자라면 대부분 지금 VR로 쏠리는 이러한 관심이 훌륭한 성과로 이어져 나가기를 바랄 것이다. 이러한 풍경이 GDC에서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라 느껴졌던 것은 2010년을 전후한 '소셜 게임 골드 러시’와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VR 하드웨어의 포지션이 고가의 몰입형 VR, 저렴하지만 다소 성능이 떨어지는 일반형 VR, 게임보다는 쇼핑이나 생활형 정보에 집중하게 될 AR로 나뉘어진 현재의 상황은 관련 업계가 아직 VR이 대중적인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동시에 VR과 관련하여 일반 소비자들을 위한 교육이 매우 쉬운 레벨에서부터 고급 레벨까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VR과 관련한 여러 하드웨어와 게임이 기술적인 깊이감을 더해갈수록, 일반 대중에게 VR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적어지게 된다. VR이 새로운 퀀텀 점프를 가져올 플랫폼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 대중과 개발자 사이에 놓인 VR에 대한 인식의 갭이 좁아져야 한다. 알파고가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과 전문가 사이의 인식의 갭을 확실히 줄여준 것처럼, VR 게임도 기술적인 와우 팩터(Wow factor)를 넘어 대중을 사로잡는 훌륭한 작품을 선보인다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보다 가까운 미래에 달성되기를 바랄 뿐이다.

 

※ 사진 출처 : GDC 공식 Flickr 계정(www.flickr.com/photos/officialgdc/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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