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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일의 정글만리] 2장 - 기호지세, 낙장 불입

모험왕 2015-05-01 09:53:15

 

“이게 뭐야?”

 

중국에 도착한 첫날 밤, 학교부근 사택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나온 첫번째 외침이었다. 쓰촨 청두 인근 충조우라는 소도시에 내가 앞으로 일해야 하는 학교가 위치해 있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청두인데 사실은 청두가 아닌 곳이다. 이를테면 서울 인근 광명시이나 안양시 정도 된다고 비유하면 될까? 소도시라고 해도  인구는 60만이 넘지만…

 

학교에서 마련해 준 집은 무척 넓었다. 단지 넓을 뿐이다. 60~70년대 지어진 것 같은,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당장 허물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외견의 아파트였다. 실내 인테리어는 놀라울만큼 투박하고 거기에 엄청나게 넓기까지 하니 기괴한 느낌마저 줬다. 부푼 마음을 안고 당분간 거주할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우리 가족을 처음으로 환영해 준 것은 쥐와 바퀴벌레였다. 한국에서 본 적이 없던 아주 큰 녀석들이었다. 

 

이 다 쓰러져가는 (1층은 상가로 사용되는) 오래된 아파트가 하필 충조우 시내 번화가에 위치해서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거리에는 각종 길거리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사람 사는 활력은 느껴지나 마치 시장통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주변이 시끄러웠다. 

 

아내와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은 당연히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이렇게 넓은 집에서는 처음 살아 보는군!’ 이라고 애써 밝은 목소리로 드립을 날렸지만 아내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고, 딸은 거의 울기 직전의 상태였다. 우리 가족의 중국에서의 첫날 밤은 쥐덫과 바퀴벌레 퇴치용 레이드를 설치하면서 보냈다. 도와줘요~ 세스코…  

 

실제로 이렇지는 않았지만 과장하면 이런 느낌의 아파트...

 

“이게 뭐야?”

 

다음날 학교에 가서 내가 배정받은 연구실(겸 사무실)에 가서 두번째 나온 외침이었다. 연구실도 집 만큼은 아니지만 무지 넓었다. 여기서 50명이 회의를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넓은 공간안에 딱 책상 하나 의자 하나만 있었다. 역시 기괴했다.

 

영화에서 보면 주로 고문하는 장소로 나왔던 비쥬얼이었다. 영화 <신세계>에서 이중구가 최후를 맞이하던 장소를 여기서 찍어도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책상에는 컴퓨터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모니터가 14인치 CRT였다. 내가 95년도 처음 샀던 그것과 비슷해 보였다. 당연히 인터넷은 연결이 안 되어 있었다.  

 

 

“이게 뭐야?”

 

세 번째 '이게 뭐야?'는 첫 번째 강의, 정확하게는 내가 가르칠 학생들과의 첫 번째 대면을 위한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에 들어가서 외치게 되었다. 이번에는 정말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강의실이 아닌 강당 같은 곳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했는데 게임학과 학생뿐만 아니라 타 학과 학생들까지 바글바글 구경을 온 것 같았다. 수백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고 뒤에 비슷한 숫자만큼 학생들이 서 있었다. 학생들의 눈빛은 의심과 호기심이 반반 섞여 있었다. 

 

 

 

대충 이런 분위기를 떠올리면 된다.

 

 

이 학교는 일종의 예체능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교와 학원의 중간 성격인데 3년제이고 설립된 지 2년차였다. 즉 1학년과 2학년만 있는 셈이었다. 학교당국에서는 ‘한국에서 엄청난 온라인게임 개발자를 교수로 초빙했다’는 허위 과장 광고를 때린 모양이고 이에 학생들이 무슨 연예인 보러 오듯 몰려온 상황이었다. 

 

소문이란 왕왕 과장되는 법이긴 한데 이번에는 정도가 확실히 심했는데 가령 내가 <미르의 전설>을 개발했고 당시 중국 게임업계의 전설적인 존재인 천티엔차오(샨다 창업자)와 호형호제 할 정도로 친하다는 이야기까지… 별의별 루머가 돌았고, 학교측에서는 그 반응을 즐기는 것 같았다. 이 나쁜 넘들…

 

심지어 강당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휴전선 넘어 북한군 초소에서나 볼 수 있던 붉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물론 중국어)로 씌여있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대충 김두일 선생을 열렬하게 환영한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문제가 있었다. 내 한자 이름이 잘못 표기된 것이었다. 내 이름은 한 일(一)자를 쓰는데 표기에는 날 일(日)로 되어 있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 보았더니 홈페이지나 여러 홍보물에도 이미 그렇게 표기가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비틀즈 멤버가 된 기분을 느꼈다는 '헐크'의 마크 러팔로의 마음이 어땠을지 알것 같다.

 

이게 바뀌어지는 데도 한참 걸렸다. 이름 따위가 딱히 중요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것인데 방심하면 바뀔수가 있다는 것을 이 때 처음 알았다. 이후 나는 중국에서 통상적인 이름의 한문(중국어) 사용 대신 영어표기를 하고 영어식 이름을 사용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때문에 내가 영어를 매우 잘할 것이라는 새로운 오해가 생겨난 것은 지금도 매우 귀찮은 일이긴 한데 그래도 이름이 바뀌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다음 게임 중 아는 것이 나오면 이야기 하도록… 로드 브리티쉬, <원숭의 섬의 비밀>, <디아블로>, 라라 크로포드, <삼국지>, <바이오헤저드>, <철권>, <파이널판타지>….”

 

“저요! '삼국지'는 알아요…중국 이야기고 우리 촉나라 이야기잖아요”

 

“코에이 <삼국지>를 안다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아닌가요??”

 

“-_-;;”

 

이것뿐만이 아니였다. 

 

<스타워즈>, <인디아나존스>, <ET>, <에일리언>, <블레이드런너>, <터미네이터>, <람보>, <다이하드>, <메트릭스>…와 같은 유명 헐리우드 영화들도 이 학생들은 전혀 몰랐다. 심지어 <백설공주>, <신데렐라>, 도널드 덕, 미키마우스 같은 유명한 애니메이션 IP는 디즈니 것이 아니라 중국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오리지널을 본 적이 없고 짝퉁만 보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들에게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고, 그 중국의 중심은 쓰촨이었다.  

 

게임 배경을 그려 오라고 과제를 내 주면, 산과 물이 등장하는 산수화를 그렸 왔고 캐릭터를 그려보라고 하면 <소오강호>의 영호충 같은 캐릭터만 그려왔다.  잘 그리긴 했지만 누가 그렸는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똑같은 것만 그려왔다. 2000년대 초 베이징 중관촌에서 만나 보았던 베이징대나 칭화대 학생들은 그래도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것을 보고 자란 느낌이었는데 이곳 쓰촨 충조우에서 본 학생들은 정말 산골 시골학교에 온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선생 김봉두'가 된 것 같았다. 

 

꿈은 이루어 질...까???(사진 출처: 영화 선생 김봉두)

  

이 학교 학생들의 절반은 소수민족으로 윈난성(운남성, 중국 최남단으로 동남아시아와 붙어있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원정간 남만땅에 가깝다)에서 온 묘족, 나시족, 백족(대리국,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그 대리 단씨들이 세운 국가이고 백성들임) 같은 친구들과 우리가 동티벳이라 부르는 쓰촨 북부의 장족(티벳인)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의 혜택을 받고 있었다. 

 

나머지 절반 정도가 한족들인데 사실 이들의 상황도 별반 다를 바 없어 자신들이 태어난 쓰촨 지역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는 것은 동일했다. 그야말로 산과 물만 보고 자란 것이다. 대부분 그 동네에서 태어나서 그 동네 학교(학교 이름도 심지어 1학교, 2학교, 3학교 하는 식이다. 물론 학교 레벨과 무관한 그냥 학교가 만들어진 순서다)를 다녔고, 처음으로 대학이라는 곳을 가기 위해 먼 곳까지 온 곳이 하필 바로 이곳 쓰촨 청두 충조우인 것이다. 

 

물론 청운의 꿈을 가지고 떠나온 이 지역이 딱히 자신들이 태어난 곳과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을 이 친구들은 전혀 모르고 왔을 것이다. 반대로 내 경우는 태어나서 공부하고, 자라고, 일하던 서울과 차이는 있을 것이라고 예상도 했고 각오도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당장 취소하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되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그때 나의 심정.jpg(이미지 출처: 영화 폰티폴)

  

이렇듯 나는 태어나서 윈난과 쓰촨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일이 없는 학생들에게 ‘게임 만드는 법’을 가르쳐야 했고 이 중에서 나랑 함께 게임을 만들 친구들도 뽑아야 했다. 사실은 ‘과연 이 친구들이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이 학교에 왔을까?’라는 걱정(혹은 의심)마저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기호지세, 절체절명, 풍전등화, 낙장불입… 그 어떤 것도 내 상황을 대변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지만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제는 정말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나에게 돌아갈 집이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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