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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 (30) – 넷(net) 초부터 지금까지, 아바타는 그곳에 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아바타 시리즈 마지막 편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넥컴박) 2018-09-21 11:44:47

디스이즈게임은 ‘넥슨컴퓨터박물관’과 함께하는 새로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수많은 소장품의 사연이나 박물관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물론, 컴퓨터와 관련한 IT업계 인사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 디스이즈게임 편집국


  

 

# 넷(net) 초에 아바타가 있었다!

 

한 처음에 사람들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가상의 공간, 인터넷을 만들었습니다. 1982년 5월, 전길남 박사가 이끌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연구팀과 경북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가 각각 고유 인터넷 주소를 할당받아 데이터 패킷을 송/수신한 것이 아시아 최초의 인터넷 연결이었는데요.

  

  

한국은 당시 인터넷의 선구자이던 미국보다 오히려 1년 빨리 인터넷 접속 표준 프로토콜인 TCP/IP 방식을 사용했고, 1990년 6월 1일, 전길남 박사는 ‘선스팍1(SPARCstation 1, Sun 4/60)’이라 부르던 컴퓨터를 사용해 국내 최초의 인터넷망 ‘하나(HANA)망’을 미국 하와이대학 네트워크를 거쳐 인터넷에 연결했습니다.

  

“여기는 대한민국, 누구라도 이 메일을 보는 사람은 응답하라”

 

곧 “축하한다. 너는 지금 인터넷에 접속된 것”이라는 답변이 도착했고, 우리나라의 인터넷 강국으로의 도약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넓고 깊은 인터넷 망망(網網)대해에 한국이 돛단배를 띄운 것이죠.

 

1986년 국내 최초의 PC통신 ‘천리안’을 시작으로 빠르게 발전한 우리나라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는 1999년 네이버, 프리챌을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세이클럽, 싸이월드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와 함께 텍스트 물결이 요동치던 이 넓은 우주에 사람과 같아 보이는 것들이 등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아바타’였죠.

 

앞선 두 연재물에서는

 

1. 퀴즈퀴즈, 세이클럽, 싸이월드와 같은 사이버 공간에서 나를 드러내 주는 외형적 대체물로서의 아바타 (보러가기)

2. 주로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 형태로 나타나며 내 일을 대신 해주는 대리인으로서의 아바타 (보러가기) 

 

를 살펴보았는데요.

 

세이클럽과 싸이월드의 아바타는 그 아바타들이 존재하는 공간, 즉 ‘세이클럽’과 ‘싸이월드’가 사라지며 함께 인터넷 어딘가에서 잊혀 가고 있습니다. 대리인 아바타는 늘 우리 곁에 있으며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지만 그 전의 아바타들에게 느끼던 친밀함과 ‘나만의 아바타’라는 특별함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두 아바타가 채워주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종종 새로운 아바타를 만들어 내곤 합니다. 바로 온라인 게임 속에서 나를 대신해 모험하고, 전투하고, 생활하는 아바타, 게임 캐릭터입니다.

 

플레이어의 분신으로 온라인 세상에 존재하는 가상 캐릭터라는 의미를 가진 최초의 인-게임 아바타는 1985년 루카스아츠가 개발한 온라인 RPG <하비타트(Habitat)>에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한국 머드 온라인 게임의 시초 <단군의 땅>이 출시되었고, 2년 뒤 넥슨의 <바람의나라>가 출시되며 온라인 게임 캐릭터로서의 아바타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내용: (보러가기)

 

 

# 게임에 들어간 나의 분신

 

비록 초창기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가 동시대의 채팅 프로그램 아바타보다 화려하거나, ‘꾸미는 재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 새로운 형식의 아바타를 통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얼굴과 머리 스타일, 복장이 조금씩 다른 몇 가지 지정된 캐릭터 중 하나를 골라 정해진 퀘스트를 수행하는 단순한 형식의 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온라인 게임을 통해 사람들은 현실에서 가질 수 없는 직업을 선택하고, 환상 속의 동물을 만나고, 마법을 부리며 전투를 하는 가상의 공간에 그들의 분신을 둘 수 있었죠. 그러나 이때까지의 게임 캐릭터는 결국 정해진 스킬과 특징을 가지고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현실의 ‘나’와는 별개의 독립된 개체에 지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마비노기>처럼 게임 내 특정 캐릭터에 부여된 직업과 스킬에 구애받지 않고 플레이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아바타를 육성할 수 있는 ‘높은 자유도’의 온라인 게임들이 등장했습니다. 전쟁을 통한 세력 성장을 원하는 유저는 전투형 아바타를, 채집을 통한 경제활동을 선호하는 유저는 그에 걸맞은 아바타를 키워나가면서 게임을 즐겼죠. ‘나’의 특성이 ‘나의 아바타’에 고스란히 반영됨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 활동이나 채팅 프로그램의 아바타와 달리 실제의 ‘나’가 게임 내 콘텐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새로운 형태의 아바타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수많은 아바타와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요? 더 나아가, 게임 내에서 아바타가 수행하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 Quest of the Avatar

 

많은 게임에서 우리는 참 다양한 모습으로 아바타가 됩니다. 소파에 누워 활을 쏘며 무시무시한 공룡 사냥꾼이 되는 주부가 있고, 온종일 회계 장부를 들여다보며 감사를 준비하던 대표는 힐링 농장에서 라벤더를 키워내고 매화나무를 심습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기획안을 짜내던 신입사원은 농구 골대를 들고 전장을 지배하기도 하고요.

 

2009년 미국 다트머스대학의 연구진은 게이머의 뇌 중 자기성찰과 판단기능에 관련한 부분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아바타를 생각할 때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발표했습니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게 되어가는 호접지몽의 경계 속에서 아바타의 세계는 현실의 사회적, 경제적 활동 양상을 닮아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미 ‘아바타’를 독립된 개체나 자신의 분신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하기 시작했죠. 

 

이와 같은 현상이 아바타와 아바타의 세계, 즉 게임에 대한 과몰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런데도 넥슨컴퓨터박물관 식구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아바타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A: 저는 요즘 게임 하나를 굉장히 ‘성실히’ 플레이하고 있어요. 하루에 한 시간씩 꼬박꼬박 접속해서 스토리를 따라가며 캐릭터에 몰입하죠. 레벨이 올라가고, 스킬트리를 맞춰가며 아이템을 하나씩 갖춰가는 캐릭터를 보면 굉장히 뿌듯해요. 아이가 있으신 분들이 종종 아이 밥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 하시는데... 제가 저의 ‘따뜻한 남자’(캐릭터 이름을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가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때 드는 느낌이 그와 아주 조금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B: 되게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대답을 해주셨는데... 거짓말쟁이네요. (하하) RPG는 경쟁이죠. 사냥하고, 장비 맞춰서 전투하며 “내가 여기서 제일 세다!”하려고요. 수많은 레이드 끝에 주황색 장비를 얻으며 희열을 느끼죠. 그래야 재밌잖아요. 이기는 것. 그것 말고 다른 답이 있나요?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 보다 전설의 캐릭터가 되어 게임에 닉네임을 남기는 게 더 쉽잖아요.
 

우리는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만족감을 얻고 싶어 합니다. 점심 식사 메뉴를 고민하는 것도, 인터넷 쇼핑몰을 몇 군데씩 돌아보며 최저가를 찾는 것도 모두 나의 점심이, 나의 소비가 만족스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족’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그 중 ‘성취감을 통한 만족’은 우리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뿌듯함은 골목 맛집을 발견해 김치찌개를 배부르게 먹는 것이나 가성비 좋은 전자제품을 사는 것에 성공하는 것보다는 조금 고차원적인 문제입니다. 여러 심리학자도 ‘자기실현의 욕구’, ‘성장 욕구’ 등 다양한 용어로 성취감의 중요도를 이야기합니다.

 

현실에서의 ‘자아실현’은 꽤 어렵습니다. GOTY에 이름을 올리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목표인 개발자가 신작 게임 출시를 위해 수일 밤낮을 열심히 일해도 게이머 반응과 시장 여론이 안 좋을 수 있고, 꼭 따고 싶은 자격증이 있어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해 본 시험에서 낙방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게임에서의 성취감도 사실 그리 쉬이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게임은 운에 많은 것을 맡겨야 하고, 자본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캐릭터를 만나 게임을 즐기며 각자 다른 방식으로 다른 크기의 성취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취감만이 사람들이 나만의 캐릭터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캐릭터 자체에 대한 애정도 사람들이 게임 속 내 아바타를 찾는 이유가 되죠. 석고와 끌, 아담의 갈비뼈나 신비로운 숨결 없이 내가 원하는 모습의 사람(혹은 오크, 혹은 엘프)을 키보드와 마우스만으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매혹적인 일입니다. 신화나 설화 등에서 이상형의 모습으로 조각상을 만들어 신적인 존재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불어넣는 등의 이야기가 많은 것도 우리가 얼마나 ‘내가 만든 존재’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갈망하는지 설명해줍니다.

 

캐릭터가 선사해주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열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이월드나 세이클럽에서 나를 표현해주던 외형적 아바타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일차원적 커뮤니케이션에서 나를 드러내 주던 것을 넘어서, 캐릭터를 통해 게임이라는 세상 속에서 더 많은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같은 단체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과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한다는 유대감을 느끼며 가상 세계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에는 ‘나’이면서도 ‘나’ 같지 않은 또 다른 ‘나’가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되어줍니다.

 

 

# 아바타 시리즈를 마치며

 

채팅 프로그램의 프로필, 은행 업무에 사용한 어플리케이션, 게임 속 캐릭터까지, 수십 년간 그 형태와 목적, 역할은 달라져 왔지만 결국 아바타는 나를 위해 만들어진 바로 그곳, 사이버 공간에 존재합니다. 잊힌 것도, 친숙한 모습이 아닌 것도, 특별히 소중한 느낌이 없는 것도 있지만요.

 

 

게임을 하는 이유는 모두가 다를 수 있습니다. 각각의 아바타도 다른 임무를 수행하겠죠. 프랑스의 사회학자 로제 카유아는 저서 '놀이와 인간(Les jeux et les hommes)'에서 게임을 ‘즐거움을 위하여 행하여지는 것’,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게임 자체에서 구현되는 가상의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게임이라면, 게임 캐릭터로 나타나는 우리의 아바타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게 해주는 또 하나의 내가 됩니다. 여러분의 아바타는 오늘 어떤 퀘스트를 수행하길 원하시나요?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 - 제주에서, 넥슨컴퓨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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