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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우디 '왕좌의 전쟁'을 들여다 보다

임상훈(시몬) 2017-11-09 18:48:29

사우디아라비아. 이름은 익숙한데, 실상은 참 낯선 나라입니다.


게임을 취재하며, 이 나라 이야기를 가끔 들었습니다. 영공을 지나갈 때는 비행기 내에서도 술을 마시면 안 되는 나라. 남편이 함께 가지 않으면 외국 여자에게는 비자조차 발급이 되지 않는 나라. 제가 들어본 현존하는 가장 보수적인 나라였죠.


안타깝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죠. 왜 저럴까?


최근 '왕좌의 게임'을 보면서 그 이유를 얼핏 추정해볼 수 있었습니다.


1. 형제 세습


-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그랬던 것처럼 사우디의 초대 왕 압둘아지즈 알사우드는 건국 과정에서 아라비아 반도의 부족들을 통합하기 위해 22개 부족장 딸과 결혼했고, 왕자만 44명을 낳았죠. (왕건 Win. 부인 29명)


- 걱정이 생겼습니다. 자기가 죽으면, 왕자들끼리 왕위를 둘러싼 싸움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거였죠. 왕자들 뒤에는 부족장인 외할아버지들의 가문이 버티고 있으니까요. 고려 초기 역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에서 이준기와 아이유가 고생한 게 다 그런 이유겠죠.

 


- 압둘아지즈는 묘안을 생각해 냅니다. '형제 계승'. 자기가 죽고 나서 장남이 왕위를 이어받지만, 그 다음부터는 이복동생들 중에 장자가 왕위를 잇는 방식이죠. 그러면 형제들끼리 서로 싸우지 않을 거라고 본 거죠. 얼추 맞아들어갔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르기 전까지는요.

 

- 그런데 말이죠. 2대 이후 국왕의 취임 나이를 보세요.

 

2대 51세

- 3대 58세

- 4대 62세

- 5대 61세

- 6대 81세

- 7대 80세 

 

- 이러니 나라가 극도로 보수적일 수 밖에요. 따로 의회도 없고, 장관들은 왕족들이 나눠갖고, 국왕이 전제정치를 하는 나라인데,  이런 '노인 정치'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2. 아들 세습

  

- 그런데 더 급한 문제가 생깁니다. 계속 형제로 왕위를 세습하기 어려워진 거죠. 후속 왕은 더 나이가 들었거나 무덤 속에 있을 확률이 높을 테니까요. 

 

- 그래서 2015년 1월 80세에 왕위를 이어받은 7대 왕 살만은 형제 상속의 전통을 끊어버렸죠. 처음엔 이복동생을 왕세자로 책봉했다가, 3개월 만에 큰조카인 무함마드 빈나예프로 교체했습니다. 62년 만에 초대 국왕의 아들 세대에서 손자 세대로 왕위가 넘어가게 된 거죠. 

 

- 그런데, 지난 7월 현 국왕 살만의 아들인 빈살만이 친위부대를 동원해 사촌형 빈나예프를 감금하고, 왕세자 자리를 빼앗아버렸죠. 그리고, 지난 며칠 간 11명의 왕자 형제를과 그 부하들을 체포해버렸습니다. 1,700개의 은행 계좌를 묶어버리고, 891조 가량의 자산을 몰수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 궁금했습니다. 아빠의 빽이 있다지만,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기사에는 32살의 빈살만이 <손자병법>을 좋아한다고 나와있는데, 그렇다고 그 많은 왕자들을 별 저항 없이 단숨에 제압한 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살펴보니 이런 게 보이더군요. 역대 왕의 재위기간을 보시죠.

 

- 2대: 11년

- 3대: 9년

- 4대: 7년

- 5대: 23년

- 6대: ​9년 

 

- 5대 파흐드 국왕의 재위기간이 무척 길었습니다. 그 뒤에 기다리던 왕세자 몇몇은 선왕의 장수로 왕위를 얻기 전에 무덤에 먼저 누웠죠. 그런데, 현 국왕 살만은 파하드 국왕의 친동생입니다. 즉 5대 국왕과 7대 국왕의 엄마는 같은 사람이라는 거죠. 

 

인터넷에서 유일하게 찾은 5대 국왕과 7대 국왕의 엄마 수다이리. 초대 국왕이 가장 사랑했던 왕비였다고 하네요.

 

- 할머니 집안(수다이리 가문)의 빽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겁니다. 그와 함께 재위 기간만 보면, 현재 주요 군사나 정보 등 핵심 보직에 있는 관리자들은 대부분 5대와 7대 국왕 쪽과 긴밀하게 이해관계를 나누고 있을 확률이 높은 것 같아요.

 

- 서른 둘 나이의 왕세자가 거침없이 일을 추진하는데 음으로 양으로 큰 백그라운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런 내용을 들여다보니, 괜한 걱정이 생겼습니다.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우리나라의 개혁 과정이 그렇게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현재의 구조와 이해관계를 나누고 있는 권력 곳곳의 적폐들이 꽤 많이, 꽤 오래, 꽤 긴밀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을 테니까요. 이를 잊지 않고, 차근차근 바꿔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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