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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의 어머니 이야기 11

임상훈(시몬) 2016-10-31 23:51:13

보바스병원 원장은 간암 환자가 수면 중에 사망할 확률은 2% 가량 된다고 했다. 하늘로 올라간 그녀를 보며, 이렇게 미소 짓는 표정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거의 못 봤다고 이야기했다. 가족들은 마지막으로 한 명씩 돌아가며 그녀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녀의 남편이 가장 크게 울었다. 모두 울었다. 그녀만 웃는 얼굴이었다.


간호사들이 산소호흡기를 뗐다. 주사바늘과 복수를 빼는 튜브도 뽑았다. 환자복을 벗기고, 그녀가 좋아했던 꽃무늬 그려진 원피스를 입혔다.


천주교 신부님이 5층을 지나가고 있었다. 큰 아들이 신부님에게 그녀를 축복해달라고 요청했다. 신부님이 방으로 들어와 주의 기도문을 외며 송별의 의식을 해줬다.


장례식은 광주에서 하기로 했다. 그녀의 40대 때 가족이 함께 살던 지역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정했다. 큰 아들은 그녀를 앰뷸런스에 싣고 병원에서 장례식장까지 내려갔다. 다른 가족들은 차와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가족이 처음 겪는 일이고 경황도 없었지만, 다행히 장례 절차는 무난히 진행됐다. 막내 아들 친구가 그 장례식장을 운영했던 까닭이었다. 그녀가 열심히 활동했던 천주교 교회의 사람들이 많이 와 울며 기도문을 외워줬다.  


그날 밤과 다음날까지 그녀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아줬다. 가족들의 지인들도 많이 왔다. 그녀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장지는 그녀가 태어난 담양의 천주교 묘역의 부부단(부부의 유해를 함께 모시는 납골당)이었다. 남편이 두 달 전 예약했다.


10월 24일 오전,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을 가졌다. 많은 사람이 울었다. 그녀가 다녔던 용봉동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가졌다. 그녀의 관 위에는 흰색 국화가 하나씩 놓여졌고, 촛불을 든 사람들이 둘러쌌다.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승화원을 거쳐 그녀는 담양 묘역에 안치됐다. 그녀의 가족과 친지들, 가까운 친구들이 함께 그곳까지 따라왔다.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그녀가 열심히 활동했던 레지오마리애 멤버들이 장례식장에서 장지까지 거쳐가는 모든 곳에서 엄숙한 작별의 의식을 치뤄졌다.


관을 들었던 막내 동생의 친구는 그들의 의식을 보며 ‘장례의 끝판왕’이라는 표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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