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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의 어머니 이야기 7

임상훈(시몬) 2016-10-30 22:58:04

그녀는 광주로 다시 내려갈 수 없었다. 분당에 있는 막내 아들 집에 머물렸다. 기력이 떨어질 경우 바로 아산병원 응급실로 가기 위한 조치였다.


직장인인 막내 아들은 엄마의 건강 관리를 위해 매일 아침과 저녁 식사를 직접 준비했다. 독일에서 온 여동생은 언니와 함께 먹고, 자고, 걷고, 이야기했다. 2주 후 다시 독일 집으로 돌아갔다.  호주에 다시 돌아갔던 딸은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손자와 손녀가 있는 딸의 집에서도 지냈다.


암 재발 이후 그녀는 1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 항암제를 맞았다. 퇴원한 후 3~4일이 지나면 다시 기운이 확 빠졌다. 응급실로 실려 갔다. 혈액 속의 칼륨, 혈소판 등이 부족했다. 남편은 지난 4년간 그랬듯 병실에서 함께 지내며 간병인 역할을 했다. 가끔 아들들이 교대를 해주면 사우나에 가거나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나갔다. 그녀는 화장실에 갈 때는 늘 남편을 찾았다. 아들들은 어쩔 수 없이 남편과 교대해야 했다.


그 사이 추석이 지나갔다. 그녀 부부는 분당에서 추석을 보냈다. 두 아들도 광주로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 가족이 광주가 아닌 곳에서 보낸 첫 명절이었다. 가게에서 사온 송편이나 부침개, 한과 등으로 어설프게 명절 분위기를 냈다.


4번째 항암제를 맞고 한 달 뒤, 그녀는 기력이 떨어진 상태로 병원에 갔다. 4년 간 그녀를 돌봐왔던 의사가 아들에게 따로 보자고 했다. 암지수와 간수치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정도로 치솟았고, 웬만한 항암제를 다 써봤으나 효과가 없다고 했다. 이제 평온한 마무리를 준비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두 아들과 남편은 그녀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그녀의 성격상, 이런 사실을 알면 축 처져서 다 내려놔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완화병실을 알아보는 대신 두 아들은 암 전문 한방병원에 가서 면역력을 높이는 치료를 하기로 했다. 그녀에게도 면역력을 높인 후에 다시 아산병원으로 오자고 했다. 의사도 그렇게 그녀에게 이야기해줬다. 의사는 간암의 특성상 통증이 잦을 거라며 마약 성분이 있는 진통제 30알을 처방해줬다.


10월 10일 아산병원을 퇴원한 그녀는 바로 삼성동의 소람병원에 입원했다. 아들들은 원장에게 그녀의 상태를 알리고, 한/양방이 섞인 집중적인 치료를 요청했다. 두 아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방병원을 택했다. 완화병실에 가기 전 0.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시도해볼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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