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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게임과 법] 저작권법이 보호하지 않는 게임과 관련된 몇 가지 표현들

땡땡땡 2015-05-15 10:45:11

안녕하세요. 게임과 법 칼럼의 OOO입니다.

 

지난 번 연재였던 ‘표현은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지만 아이디어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에 보내 주신 관심과 의견 감사합니다. 제가 댓글을 읽다 보니 정확하게 사안을 이해하고 계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 모바일 게임업계에서 유사 게임이 대량으로 출시되는 흐름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는 풀렸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던 것 같습니다.

 

원래 오늘 연재는 다른 주제를 염두에 뒀지만, 생각을 바꿨습니다. 지난 주 저작물 성립의 이론에 대한 ‘맛만 본’ 것이니 내친 김에 한 발 더 나아가 그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면 다른 주제는 잠시 놓아 두고, 자판 두드려 지는 대로 써 내려가는 OOO의 ‘게임과 법’ 입니다. (사실 제가 그날그날 기분대로 써 가는 거라서 그렇습니다… ^^;)

 

저작권법과 관련한 방대한 이론 체계에서 '아이디어'와 '표현'에 대한 논의는 저작물의 성립과 보호대상에 대한 이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즉, 무엇이 저작물인지 여부와, 그 중에서 무엇을 저작권으로 보호하고 무엇을 보호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것에 대한 사항입니다. 저작권법을 이해하려고 하면 가장 처음에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이기도 하죠.

 

 


 

말하자면, 게임에서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은 애초에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권리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긴 하지만, 일정한 조건에서 그 권리가 제한되는 경우 – 도서관에서의 이용 등을 위한 사적 복제의 경우 등 – 와는 다른데, 그냥 그런 게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이 신생 게임 개발사의 의욕 넘치는 기획자라고 생각해 봅시다. 콘셉트만 알려주어도 프로토타입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낼 정도로 개발을 잘 하는 프로그래머와, 2D/3D 그래픽 툴을 마치 모니터 속에 손을 담그고 일하는 것인 양 자연스럽게 잘 다루는 디자이너가 있다고 합시다. 셋이서 창업했고 1년 정도 회사를 운영할 정도의 자금이 있습니다. 일단 뭔가 만들긴 해야겠지요.

 

일단 회사의 이름을 외부에 어느 정도 알리고, 대형 게임 퍼블리셔와 계약을 체결하여 다양한 플랫폼과 해외 시장에도 진출할 만큼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역량이 있음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장을 조사해 봤습니다. 

 

<클래시 오브 클랜(Clash of Clan, 이하 CoC)>이 지금 인기가 많으니 <플래시 오브 플랜(Flash of Plan, ‘번개불에 콩 볶아먹을 정도로 후닥닥 기획한 게임’이라는 의미로 썼습니다, 굳이 번역하면 ‘찰나의 기획’ 정도 되겠네요, 이하 FoP)>이라는 비슷한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서 개발력도 보이고 회사를 좀 더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기획자의 입장에서 법이란 걸 잘 모르긴 하지만, ‘<CoC>와 똑같이 만들면 소송 들어오지 않을까?’ 이런 막연한 생각은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긴, 소송을 하고 말고는 '슈퍼셀'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딸린 문제여서 <CoC> 개발사인 슈퍼셀이 소송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소송은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슈퍼셀의 의사결정에 회사의 첫 번째 게임의 운명을 걸 수는 없는 일이니 고민을 해야겠습니다. 지난 연재를 통해 아이디어만을 비슷하게 이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기획자가 <CoC>의 장르적 특성(자신만의 맵 구축, 플레이어 간 협업을 통한 공격과 방어 시스템)만 참고하고, 나머지 리소스와 맵 타일, 캐릭터 설정 및 능력치 등 대부분의 내용을 직접 기획하고 디자이너가 제작한다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가능성은 낮아질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지난 시간에 아이디어와 표현에 대해 설명해 드린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표현이 같아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 다시 차근차근 따라오실 준비가 되셨는지요.

 

 

카스와 카즈, 카드스는 어떤 관계일까요?

 

저작권법은 저작물에서 표현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해도 '특정한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그 표현 방법밖에 없는 경우'에는 이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표현까지 보호한다면 결국에는 본래 법이 의도한 취지를 벗어나서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합체의 원칙(Merger Doctrine)’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CoC>와 여러분의 야심작 <FoP>에서 이동하는 각 유닛의 남은 체력을 표시하는 막대 그래프가 각 유닛의 머리 위에 표시되는 표현방법이 서로 비슷하다고 합시다.

 

물론 숫자를 써서 표시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해당 유닛의 남은 체력을 막대 그래프로 표시하는 방법이 기능적으로 직관적일 뿐만 아니라 널리 쓰이고 있어서 달리 다른 방법으로 표시하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두 게임 사이에 이런 방법이 비슷하다고 해서 이것을 저작권 침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비슷하게 ‘표준적 삽화의 원칙(Scènes à Faire)’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합체의 원칙’이 주로 각 유닛의 능력치 표시 화면에서의 메뉴 배치, 아이템 구입 창 등 기능적인 표현에 대해 적용되는 것이라면 ‘표준적 삽화의 원칙’은 게임의 설정 등 스토리와 관련되어 적용됩니다. 본래 소설이나 희곡에 적용되던 원칙이니까요.

 

‘표준적 삽화의 원칙’은 콘텐츠의 장르적 배경 설정에 대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대 문명의 유물과 관련된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인디아나 존스>의 존스 박사처럼 고고학과 고대 언어에 해박하고, 사막이나 정글에서 활동하기 편한 복장을 자신의 유니폼처럼 입고 다니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서부극에서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리볼버 권총을 쓰며 담배를 피우는 캐릭터들이 대결을 하는 설정, 스팀펑크 장르에서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계가 등장하고 석탄을 때워 이를 조작하는 설정 등이 그런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특정 게임이나 배경의 설명을 위해 전형적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설정이나 장면은 누가 표현해도 같은 것이니 이를 저작권으로 보호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제가 불어를 잘 모릅니다만 표준적 삽화의 원칙을 말하는 ‘Scènes à Faire’는 불어로는 ‘(원래) 있어야 할 장면’ 이라는 뜻이라고 하고, [씨나 뻬-] 정도로 발음되는 것 같네요. … 네. 곧 여름이 다가올 터인데 시원한 수박 먹기 전에 ‘씨나 빼’겠습니다. 죄송합니다(_ _).

 

우리의 <FoP>에서도 <CoC>와 마찬가지로 용이 등장한다고 해 봅시다. 우리 디자이너가 <CoC>의 용을 베끼지 않고 직접 그린 용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 판타지의 설정을 기반으로 한 게임에서 기본적으로 악어나 도마뱀 같은 머리와 공룡의 몸체에 박쥐의 날개와 유사한 형태의 날개를 가진 불을 뿜는 용이 등장하는 것은 일반적이라 아무리 상상과 가공의 동물을 창작한 것이라도 그 모양새가 유사하다고 하여 이를 문제 삼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것이 ‘표준적 삽화의 원칙’의 예라고 하겠습니다.

 

 

NDC13에서 발표됐던 삽화의 원칙 사례. 폭탄이 터질때의 묘사 방법이 정해진 방법 외에는 활용이 어려워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공공의 영역에 속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애초에 특정인의 권리에 속하지 않고 그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던 표현이거나, 저작자가 사망하였으나 상속인이 없어 국가에 귀속되는 경우, 저작자 사망 후 70년이 경과해서 저작재산권의 보호기간이 다한 경우 등에 해당합니다. 이런 경우에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중의 것’이 된 것이므로, 자유롭게 가져다 사용해도 됩니다. 예를 들어 <FoP>에 지을 수 있는 건물로 광화문이나 남대문이 실제와 같게 표현되어 나오더라도 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난 번 연재에 대한 댓글들을 읽어 보면서 제가 조심스럽게 드리고 싶은 의견은 이런 것입니다. 기존 게임에 존재하던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거나 ‘윤리적으로 비난 받을’ 만한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목적과 이를 새로운 게임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노력했는지 여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존 게임에서 한 단계 발전하고 진일보한 게임은 기존 게임의 아이디어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갖추고 고심한 결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게임의 아이디어를 무작정 그대로 베껴서 카피 게임을 만든다면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기존 게임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자신만의 색깔을 갖춘 게임을 만들고, 이용자들도 그에 동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보이자 발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게임들은 사실 이용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깊이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게임들이라 당당하게 과거의 어떤 게임의 요소를 참고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슈퍼마리오> - <원더보이> - <쏘닉> - <브레이드>와 같은 얼핏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들의 시대적 흐름을 압니다만, 이들 중 나중에 나온 것이 나중에 나왔고 이전 게임의 요소를 차용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작을 베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게임속에서 나오는 장풍의 표현은 과연 누가 먼저일까?

 

이번 연재를 마치면서 지난 번 연재분과 함께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저작물에 있어서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영역은 표현이고, 2) 아이디어는 보호받는 것이 아니므로, 게임에서도 게임 규칙, 조작 방식 등의 요소는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는 없습니다. 3) 그러나 표현에 해당하더라도 아이디어와 표현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 또한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4) 여기에는 합체의 원칙이나 표준적 삽화의 원칙이라는 이론이 적용됩니다(다른 것도 있긴 합니다만 게임에서는 이 정도 알아 두시면 됩니다). 5) 공공의 영역에 속하는 표현을 이용하는 것도 저작권 침해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우리 게임 <플래시 오브 플랜>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획자는 이제 한 시름 놓은 것 같습니다. ^^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TIG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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