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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G러닝@미국]혜가 스님, 자신의 손을 잘라 달마의 제자가 되다

위정현 교수의 'G러닝, 미국에 가다' (3)

디스이즈게임 2012-04-16 09:13:52

6세기 경에 활동한 달마대사는 인도 출신으로 중국 선종의 시조이다. 달마 대사는 서기 520년 경 북위의 수도인 낙양에 도착해, 북위의 무왕을 만났고, 이후 숭산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좌선했다. 입적한 성철 스님이 3년간의 면벽좌선을 했다고 하니 9년 동안 눕지도 않고 좌선한 달마 대사의 수행법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달마대사의 첫 제자이자 2대조가 혜가 스님이다. 혜가를 만나기 전까지 달마는 아무도 제자로 맞아 들이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제자가 되기에는 수준 미달이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어느 날 혜가가 소림사의 달마를 찾아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달마가 물었다.

 

“이 눈을 붉게 만들 수 있겠느냐?

 

혜가는 두 말 없이 차고 있던 칼로 자신의 왼팔을 잘라 흰 눈을 붉게 물들여 보였다. 달마는 이를 보고 혜가를 자신의 제자로 받아 들였다. 혜가는 스승이 제자에게 건네는 신의(信衣)를 받아 달마 입적 후 중국 선종의 2대조가 되었다.

 

자신의 팔을 잘라 스승의 질문에 대답한 혜가의 행동은 아마 달마의 예상을 뛰어 넘었을 것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질문할 때는 대략 답의 범위를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제자의 답이 스승의 예상 범위를 넘어설 때 스승은 감동한다. 일반적인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상대방에게서 예상을 뛰어 넘는 답변이 나올 때 그 사람은 감동한다.

 

 

디지털 헐리우드 컨퍼런스 2010 Spring’에서 강연.

기능성게임의 최강국 미국이 이와 접근법이 다른 G러닝을 높이 평가해 주었다

 

G러닝이 컬버시 교육구와 합의해 시범수업 준비가 시작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난관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예산이었다. 미국 G러닝을 지원하기 위한 G러닝 커미티가 구성되어 펀드를 모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가장 큰 애로사항은 2010년에 사용할 공공펀드와 민간 펀드가 이미 2009년 시점에서 용도가 정해져 있었다는 점이다. 2010 5월 시점에서 펀드 집행이 시작되고 있던 상황에서 새롭게 G러닝을 설명하고 자금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펀드는 반드시 필요했다. 미국 교사를 훈련시키기 위해 한국에서 연구원들이 미국으로 건너와야 하고, 또 미국용 콘텐츠 개발도 해야 했다. 미국 교사에 대한 인건비와 대여할 노트북 PC에 대한 비용, 각종 회의비도 들어간다. 9 13일로 정해진 수업 일정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7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G러닝 커미티 USA 멤버들이 모여 긴급 회의를 열었다. 안건은 G러닝의 진행 여부에 대한 결정이었다.

 

미국에서 올해 펀드를 모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이미 확인된 상태에서 G러닝을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중단할 것인가의 심각한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 10여명이 모인 회의 자리는 무거운 분위기였다. 막상 G러닝이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현실은 난관이 많다는 것을 모두들 절감하고 있었다.

 


UCLA에서 열린 G러닝 커미티 USA 회의 사진

회의 순간이 남아 있는 유일한 사진이다. 왼쪽두번째가 컬버시 교육구 교육위원인 캐시

 

내가 질문했다.

 

“지금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필립 크리스톤 감독이 주저하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는 것 같다. G러닝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 아니면 펀드가 만들어질 때까지 연기하는 것이다.

 

나 : “그러면 컬버시 교육구와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필립 :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수 밖에……”

 

나 : “하지만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는가?

 

필립 : “방법이 없지 않은가? 연기냐 중단이냐, 결정은 PM인 당신이 해야 한다.

 

나 : “그런가…”

 

 

회의를 중단시키고, 밖으로 나왔다. 회의가 열린 LA 코리안타운 내에 있는 ‘카페 맥’의 주위는 어둠에 싸여 있었다. '고'(Go)'인가 '스톱'(Stop)인가,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었다. 그건 나중에 책임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었다. 내가 중지 결정을 하고, 컬버시 교육구에서 문제제기를 했을 때 그 책임은 모두 나에게 오게 되어 있었다. 미국인은 절대로 책임질 만한 건수를 만들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밖에 나가 혼자 벤치에 앉아 멍하게 있는데 제레미가 나의 어깨를 툭 쳤다.

"안으로 들어갑시다"(Lets go inside) 다시 회의실에 들어가 앉았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나 만을 쳐다 보고 있었다내가 선언했다.

 

G러닝 프로젝트는 일정대로 간다.

 

모두들 깜짝 놀라 쳐다 보았다.

 

“비용은 어떻게 할 건데”

 

제레미가 큰 소리로 외치다시피 물었다.

 

“내 개인 돈"(my pocket money)

 

모두들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나의 경제적 수준을 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일반적인 미국인이 워런 버핏이나 빌게이츠 같은 부자가 아닌 바에 자기 돈 들여 공공 사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밖에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는가? 컬버시 교육구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 G러닝을 위해서는.

 

이 회의 이후 G러닝 커미티의 미국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미국에서 뭔가를 하려면 자기 손발을 자르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하는 건가?.........

 

/위정현 교수 트위터 : @wi_jong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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