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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치킨집이 끝? 게임 프로그래머는 다르다”

‘알집’과 ‘카발’ 시리즈 만든 이스트소프트 민영환 부사장

김승현(다미롱) 2013-09-05 18:29:01
[NPC란?] 디스이즈게임에서 새로운 인터뷰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익히 잘 알려진, 또는 아직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실력 있는 인물과 업체를 소개합니다. 그래서 연재물의 명칭에 ‘named’(유명한)라는 단어를 써서 NPC(Named People & Company)라고 이름을 지어 보았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인물은 <알집>을 시작으로 <카발 온라인>과 <카발 2>를 개발한 이스트소프트의 민영환 부사장입니다. 수학교육과를 나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된, 관리자가 되어도 언제나 일선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골수 프로그래머의 이야기를 들어 보시죠.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이스트소프트 민영환 부사장


만나서 반갑다.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부터 부탁한다.

민영환: 이스트소프트의 민영환이다. 이스트소프트에는 1999년 프로그래머로 입사해 지금은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과분한 위치에 있다. 2000년대에 PC를 시작했던 분이라면 ‘alsdream’이라는 닉네임을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다.(웃음)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나와 프로그래머 생활을 시작했다. 어떻게 프로그래머의 길을 걷게 되었나?

글쎄.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래밍이 취미였고 프로그래머가 꿈이었다. 어찌 보면 전공을 잘못 선택했던 것일지도.(웃음) 물론 농담이다. 수학을 배운 덕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까.

국민학교 5학년(1983년) 컴퓨터라는 것을 처음 보게 되었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 컴퓨터를 보려고 금성(현 LG) 대리점에서 하루 종일 살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컴퓨터부가 생겼다. 컴퓨터 없이 종이에 자판을 그려 타자 연습을 하던 클럽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지만 그때는 컴퓨터를 배운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그러다가 집에 컴퓨터가 생겼다. 디스켓도 아니고 테이프를 저장 매체로 쓰던 시절의 컴퓨터였다. 그때 처음 접한 프로그램이 퍼즐액션게임 <로드 러너>(Lode Runner)였다. 당시 많지 않았던 컬러 게임, 거기다 맵 에디터까지 있어 정말 신나게 즐겼다. 모든 스테이지를 깨고 내가 만든 맵을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직접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당시에는 깊이 생각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길로 나를 이끈 것 같다.


민영환 부사장을 게임 프로그머로 안내한 <로드 러너>.(출처: 위키피디아)


전업 프로그래머가 되니 어떻던가? 첫 결과물인 <알집> 프로그램 정보를 보면 당시 어려운 환경에 대한 자학개그(?)도 많았는데….

<알집>에 실은 것처럼 사정이 썩 좋진 않았다. 이스트소프트는 1993년 설립한 회사인데 이렇다 할 대표작 없이 외주작업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이 돼도 밖에 나가기보다는 동료들이 밥을 지어서 간장과 마가린에 비벼 먹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물론 <알집>을 통해 말했던 것처럼 라면도 많이 먹었다.(웃음)

그런데 정말 웃긴 것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도 프로그래밍하는 게 좋더라. 프로그램을 짜는 것은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 처음엔 모든 것이 막막하지만, 작업이 진행될수록 완성되는 그림을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게 된다. 덕분에 시키지도 않은 야근도 많이 했고. 아마 마음 맞는 이들과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지금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분들은 나같이 일하지 말고 좋은 환경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길 바란다. 솔직히 나도 다시 하라면 못한다.(웃음)


<로드 러너>로 프로그래머를 꿈꿨는데, 첫 결과물로는 압축 프로그램(알집)을 만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겠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파일을 압축한다는 게 어지간히 컴퓨터에 조예가 깊지 않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외산 압축 프로그램이 대부분인데다 유저 인터페이스(UI) 또한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나름 IT기업이었던 이스트소프트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은 너무 답답해서 프로그래머들끼리 의기투합해서 사원 누구도 쓸 수 있는 말랑말랑한 압축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것에 살이 붙다 보니 결국 <알집>이 나오더라. 솔직히 그때만 하더라도 그 프로그램이 그렇게 뜰 줄은 몰랐다.

민영환 부사장의 첫 상용 프로그램인 <알집>. 프로그램 정보를 보면 당시 이스트소프트의 절절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 게임 프로그래머? 절대 수학을 놓지 말아라

<알집>의 흥행 이후 <카발 온라인>을 개발했다. 아무리 어린 시절 꿈이었다지만, 그동안 매장 관리 프로그램(POS 시스템)과 압축 프로그램만 개발하다 게임을 만들려니 망설여지진 않던가?

오히려 그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다시피 게임 개발은 돈이 굉장히 많이 들지 않는가?(웃음) <알집>이 떠서 게임이 망해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했었다. 꿈을 쫓는 배고픈 개발자를 기대했다면 미안하다.(웃음)

오히려 걱정했던 것은 다른 동료들의 의견이었다. 이스트소프트는 한 번도 게임을 만든 적이 없었으니까. 때문에 처음엔 굉장히 조심스레 제안했는데 시시하게도(?) 다들 흔쾌히 찬성하더라. 생각해보면 당시 이스트소프트 직원 모두 열혈 게이머였다. 오죽하면 내가 이스트소프트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맨날 게임하러 놀러 왔기 때문이었을까.


실제로 게임 개발을 해보니 어떻던가?

다들 게임 개발 경험이 없다 보니 처음부터 고생길이었다. 가장 압권은 <카발 온라인> 엔진을 만들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처음에는 게임엔진이라는 개념도 몰랐다. 단순히 캐릭터의 움직임 등을 일일이 코딩하기 귀찮아 게임 속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들다 보니 밖에서 말하는 게임엔진이 만들어졌다. 만들기 전에는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라는 것을 몰랐었지.(웃음)

참고로 앞서 말한 공식이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의 의미다. 게임 프로그래밍에서는 다른 프로그래밍보다 수학적 지식을 많이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3D 게임의 경우 화면 속 캐릭터가 회전하면 이러한 3차원 움직임을 4차원 평면으로 표현하는 계산식이 필요하다. 결국 고등학교 때 배우는 ‘회전변환행렬’이나 대학교 때 배우는 ‘선형대수학’ 등이 필요한 셈인데 그동안 수학 공부에 소홀했다면 고생의 양은 배가 된다. 이건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민영환 부사장 사무실에 놓인 수학 서적.


그래도 나름 수학교육과까지 졸업하지 않았었나?

대학을 졸업한 게 1993년, 그리고 <카발 온라인>을 만든 것이 2005년이었다. 아무리 프로그래밍과 수학이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지라도 12년의 시간 동안 수학지식을 복습할 일이 얼마나 있었겠나.

만약 게임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이가 있다면 프로그래밍 지식 못지않게 수학 지식도 쌓으라고 권하고 싶다. 게임 프로그래밍은 다른 영역보다 수학 지식을 많이 필요로 한다. 물론 많은 프로그래밍 경험은 개발자에게 원하는 움직임이나 효과가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게 한다. 하지만 수학적 지식 없이는 이러한 것을 정교하게 표현할 수 없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현하길 꿈꾸는 이에겐 수학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이스트소프트에도 게임 개발하며 다시 ‘정석’ 펴고 공부하는 프로그래머가 많다.


본인이 생각하는 게임 프로그래머의 덕목이 있다면?

프로그래밍이라는 행위 자체를 얼마나 즐길 수 있느냐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프로그래밍은 매 순간이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그림을 바라보며 이 그림이 그려지기 위해서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궁리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 지금도 관리자 일을 때려 치우고 일선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웃음) 그리고 이렇게 일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실력도 늘게 된다. 프로그래밍은 언어와 같아서 많이 쓰고 궁리할수록 실력이 늘어난다. 더 짜임새 있고 깊이 있는 프로그래밍을 위해서는 이런 과정이 필수다.

아, 이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려나? 조금 더 보편적인 이들을 위해 조언하자면 손톱 관리를 열심히 해라. 농담이 아니다. 프로그래머는 결국 키보드를 치는 사람이다. 많은 타이핑을 위해선 정갈한 손톱모양이 필수다. 피아니스트의 손톱이 길면 어떻게 피아노 건반을 칠 수 있겠는가? 프로그래머도 마찬가지다. 항상 손톱깎이를 가까이 해라.(웃음)




■ 치킨집이 끝? 게임 프로그래머는 다르다

<카발 온라인>을 만들면서 개발 총괄 업무를 시작했다.

정확히는 <카발 2>부터다. <카발 온라인>도 명목상 개발총괄이긴 했지만, 개발진 모두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이들이라 따로 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이 없었다. 워낙 소규모 팀이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카발 2> 개발을 총괄할 때는 고생을 배로 했다. 업무는 생소한데 개발팀 자체는 몇 배로 불었으니까.


프로그래머에서 관리자(개발총괄)가 되니 어떻던가?

지옥이다.(웃음) 관리자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각기 다른 영역의 일을 조율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프로그래머들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낮기로 유명하다. 나부터가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골방에서 컴퓨터를 만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동안은 대화보다 채팅이 더 많았을 정도니…. 이런 사람이 관리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봐라. 아마 팀원들도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도 프로그래머 출신인 만큼, 프로그래밍 업무를 잘 안다는 것은 강점이 아닌가?

물론 프로그래머 출신인 만큼 남들은 이해하기 힘든 프로그래머의 사정을 잘 안다는 것은 강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획자 출신은 기획 일을 잘 알고, 원화가 출신은 원화나 그래픽 작업을 잘 아는 것과 다르지 않다.(웃음)

어떤 직업이든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중시하는 순간이 온다. 막 입사했을 때는 프로그래밍 능력이나 원화 실력 등 전문적인 스킬을 요구하지만, 경력이 쌓이고 팀장이라는 직함을 달기 시작하면 남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자신의 의견을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키냐가 더 중요하게 된다.

문제는 프로그래머라는 직책은 일하면서 이러한 능력을 키우기 힘들다는 데 있다. 아마 업무 특성상 남들과 이야기하고 의견을 조율하기보다는, 어려운 문제를 끙끙대며 푸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의식적으로라도 남들과 대화하는 것이 좋다. 관리자를 준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항상 일선에서 뛰고 싶은 이도 대화를 통해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쓴맛을 보게 된다.(웃음)


프로그래머 중에서 관리직으로 갈 수 있는 이는 소수고, 일선에서 뛰고 있는 40대 프로그래머도 많지 않다. 프로그래머의 종착역이 ‘치킨집’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의 슬픈 단면이다. 한국은 소프트웨어 시장도 작고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다. 일단 돈 주고 쓰려고 하질 않으니까. 사주는 이가 없으니 프로그래머가 줄어들고, 프로그래머가 줄어드니 사줄 만한 프로그램도 없어지는 악순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임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국 소프트웨어 업체 중 자신의 프로그램을 내걸고 장사하는 곳은 많지 않다. 극소수의 유명 업체가 아닌 한 대부분 외주로 먹고 산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10년 넘게 인기를 끄는 작품도 있고, 매번 어떤 프로그램(게임)이 나오느냐도 관심사다. 시장의 크기나 프로그램 자체의 주목도 면에서 다른 소프트웨어 시장보다 훨씬 났다.

이는 프로그래머에 대한 대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경력 있는 프로그래머를 대우해 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업체에서는 시간만 있으면 어지간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엄연히 스타 개발자라는 것이 존재하고, 게이머들도 그들이 꿈꾸는 작품을 기대한다. 그런 작품의 대부분은 경력 있는 개발자의 손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게임 프로그래머들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참 프로그래머의 손을 필요로 하는 대작 타이틀은 모바일게임에 밀려 줄어드는 추세다.

개인적으로 지금 게임시장은 일종의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모바일게임이 그렇게 뜰 줄 몰랐고, 지금은 캐주얼게임을 넘어 미드코어 타이틀이 하나 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물론 그들이 꽃피는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세상이 언제나 모바일 캐주얼게임 중심이 되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깊이 있는 미드코어 타이틀도 자리 잡게 될 테고, 기기가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이 다른 만큼 PC온라인게임이 죽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력 있고 경험 많은 프로그래머가 필수다. 과도기의 혼란이 없진 않겠지만, 체계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가 있는 한 게임 프로그래머의 미래는 언제나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스트소프트 민영환 부사장

1999년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졸업, 이스트소프트 입사
1999년 압축프로그램 <알집> 프로그래머
2005년 MMORPG <카발 온라인> 프로그래머, 개발 총괄
2012년 MMORPG <카발2> 개발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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