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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PG 출판 15년,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도서출판 초여명 김성일 편집장

김승현(다미롱) 2013-04-16 11:17:48

TRPG(Table-talk Role Playing Game)는 컴퓨터 대신 주사위와 필기구, 그리고 룰북의 규칙에 따라 다른 플레이어들과 이야기하며 즐기는 현재 C(컴퓨터)RPG의 원조격인 놀이다. 최초의 TRPG <던전&드래곤> 시리즈는 동명의 게임이 수시로 개발될 정도로 RPG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해외에서는 TRPG RPG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TRPG의 위상을 말하자면 서브컬처 중에 서브컬처라고 할 수 있다. TRPG에 대해 아는 이도 드물고, 정식으로 출판되고 있는 TRPG 시스템도 하나에 불과하다. 이런 열악한 시장에 최근 한 출판사가 새로운 시스템을 출간하겠다고 밝혔다. 15년 동안 한글 TRPG만 출판해온 도서출판 초여명(이하 초여명)이다. ☞ 관련기사

 

초여명이 <던전월드>의 출판을 위해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은 하루 만에 목표액을 달성했고, 열흘도 지나지 않은 지금은 본래 목표액의 5배가 넘는 모금액이 모였다. 도대체 무엇이 이처럼 뜨거운 성원을 이끌어낸 것일까? 초여명의 김성일 편집장을 만나 보았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플레이어가 직접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매력 <던전월드>

 

 

도서출판 초여명의 김성일 편집장.

 

 

TIG> 기쁜 소식을 축하한다. 먼저 독자들에게 간단한 소개부터 부탁한다.

 

김성일: TRPG 전문 출판사 도서출판 초여명의 김성일이다. 현재 아내와 둘이서 도서출판 초여명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껏 <겁스>만 계속 출판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시스템을 소개하게 돼서 정말 기쁘다.

 

 

TIG> 한국에서는 15년 만에 나오는 신규 TRPG 시스템이다. 어떤 계기로 <던전월드>의 출판을 결심하게 되었는가?

 

해외 TRPG 시스템을 훑던 중 우연히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기존 TRPG와 달리, 플레이어 개개인의 이야기가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직접 플레이해 보니 기존 TRPG 유저는 물론 TRPG를 잘 모르는 이도 재미있게 즐겨 국내에 소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모태가 되는 <아포칼립스 월드>와 달리 <던전월드>는 국내에 익숙한 판타지 세계를 그린다는 것도 이러한 결심에 한몫했다.

 

 

 

TIG> 일반적으로 TRPG는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다는 선입견이 있다. 아무리 게임이 재미있어도 유저들이 접근하지 않으면 무의미하지 않은가?

 

<던전월드>의 특징 중 하나가 낮은 입문 난이도다. 예를 들어 캐릭터를 만들 때도 시트(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담은 문서. 일종의 상태창 + 인벤토리 + 스킬)에 써진 선택지만 골라 생성할 수 있다. 어느정도 TRPG의 규칙을 숙지한 상태에서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 다른 시스템에 비하면 훨씬 진입장벽이 낮다.

 

이는 마스터(TRPG에서 게임의 무대 준비와 이야기 진행을 담당하는 유저)도 마찬가지다. 사실 마스터는 어지간히 TRPG를 즐긴 유저에게도 부담되는 역할이다. 이야기 진행을 담당하는 만큼 개략적인 시나리오와 그 무대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던전월드>에서는 세계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역할이 마스터에게만 일임되지 않는다. 심지어 <던전월드>에 권장되는 게임의 방법 중 하나가 백지 지도일 정도다.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정한 설정이 그대로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저가나는 제국 남부 XX에서 자랐고 현재 둔탱이 A를 보살피며 여행하고 있어”라고 캐릭터를 설정하면, 그것이 그대로 게임의 배경이 되고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방식은 게임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캐릭터 시트에 있는 선택지만 고르면 캐릭터가 완성된다.

 

 

TIG> <던전월드>가 초보자 친화적이라면 기존 유저에겐 게임이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기존 유저들에게도 새로운 방식이다. 한국에 알려진 대부분의 TRPG 시스템은 주어진 스토리에 플레이어가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주사위 운 때문에 진행과정이 바뀔 수는 있어도, 대부분의 플레이는 마스터가 준비한 무대 위에서 진행된다. 실제로 해외에서 판매되는 TRPG 전용 시나리오북 같은 경우 사소한 것 하나도 데이터를 마련해 마스터가 예상치 못한 사태에 처하지 않게끔(그리고 성공적으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던전월드>는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캐릭터를 만들 때부터 플레이어는 다른 캐릭터와의 인연을 만들고 마스터는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는 게임 플레이 중에도 마찬가지다. 주사위를 굴릴 때도 그것이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마스터는 플레이어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나요?” 그리고 유저의 대답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존 TRPG와 달리 마스터뿐만 아니라 플레이어 모두 이야기에 관여하는 셈이다.

 

대부분의 TRPG가 마스터가 준비한 테마파크 게임에 가깝다면, <던전월드>는 유저 모두가 만들어가는 샌드박스 게임에 가깝다. 아마 기존 TRPG에 익숙한 유저라면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 “실패할 것 같아 번역본부터 공개했다”

 

TIG> 일반적으로 크라우드 펀딩은 인디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기존에 출판하던 <겁스>와 달리 <던전월드>는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글쎄, 사업자 등록을 하긴 했지만 초여명의 사정도 충분히인디’스럽지 않을까?(웃음) 이전부터 크라우드 펀딩 사례를 보면서 우리 같은 소규모 업체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해외 같은 경우 많은 인디 TRPG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빛을 보곤 한다.

 

 

영문판 <던전월드>도 해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빛을 보았다. 

 

 

TIG> 앞서 말했듯이 한국 TRPG 시장은 크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시장에서 유명 시스템도 아닌 인디 TRPG를 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염두에 둔 프로젝트였다. <던전월드>가 좋은 룰이긴 했지만 국내에서의 인지도도 떨어졌고, 이렇다 할 이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 분들 덕분에 모험을 할 수 있었다. 최근에 <겁스>의 판매량이 서서히 늘어나 신규 출판에 대한 부담감이 적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번의 실패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할까?(웃음) 그렇게 막무가내로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예상 외로 호응이 좋아서 놀랐다.

 

 

TIG> 프로젝트 시작과 함께 <던전월드>의 핵심 규칙을 번역해 공개했다. 규칙이 공개되면 출판본에 대한 욕구가 사라져 프로젝트가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사실 애초에 성공은 크게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번역본을 공개했다. <던전월드>를 직접 체험해 보니 프로젝트의 성패를 떠나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 규칙을 공개한다고 공언해버리면, 나중에 실패했을 때는 어떻게 되는가? 시스템도 소개하지 못하고 그동안 번역해 놓은 것도 허사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핵심 규칙을 먼저 공개하고, 마음에 들면 출판본의 후원을 부탁하기로 마음먹었다.

 

또한 이는 도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외국의 경우 <던전월드>의 핵심 규칙이 영문으로 공개돼 있다. 아무리 저자가 허락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대중에 공개된 물건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개판을 번역한 뒤 콘텐츠를 추가한 출판본을 후원받기로 결심했다. 핵심 내용은 같을지라도 편집이나 예시, 일러스트 등이 추가되므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크라우드 펀딩 시작과 함께 공개된 <던전월드> 한국어 공개판. ☞ 바로가기

 

 

TIG> 다행히 <던전월드>는 모금 시작 열흘도 되지 않아 목표액의 5배가 넘는 금액이 모였다. 프로젝트 진행자로서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역시 한국 TRPG 유저가 새로운 시스템에 목말라하고 있었다는 것이 크지 않을까? <던전월드> 15년 만에 한글로 나온 신규 시스템이다. 무엇이 됐든 새로운 시스템이 발간된다는 것이 유저들에겐 축제인 것 같다.

 

물론 이것이 <던전월드>아무거나라는 뜻은 아니다. 핵심 규칙을 공개한 만큼 규칙 자체가 마음에 들어 후원한다는 유저도 많았다.

 

그리고 조금 자화자찬을 하자면, 15년 이상 한국에서 한글 TRPG를 계속 출판해 온 초여명의 이름값도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웃음)

 

 

“TRPG 출판 15,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TIG> 한국 TRPG 시장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출판사다. 어떻게 이 시장에 뛰어들게 되었나?

 

중학교 때 TRPG를 접한 이후 인생 한쪽에는 항상 TRPG가 있었다. 오죽했으면 아내도 TRPG로 만났을까. 부부 모두 ‘TRPG 마니아다 보니 평생 동안 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하자마자 아내와 스프레드시트를 두들기며 계산했다. 굶어 죽진 않겠다는 계산이 나오더라. 그 길로 바로 시장에 뛰어든 것이 1997년이었다. 물론 언제나 현실은 예상보다 돈이 더 들고, 덜 들어오더라.(웃음)

 

 

TIG> 1997년이면 외환위기로 한창 시끄러웠을 때다. 회사를 세우며 어려웠던 점이 많았을 듯하다.

 

당시가 가장 힘들었긴 했지만, 그것이 매출 때문은 아니었다. 솔직히 처음 책을 내다 보니 매출을 봐도 이게 IMF 때문에 그런 건지, 아니면 책이 재미없어서 그런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 전이 잘됐던 경험이 없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오히려 어려움은 다른 데 있었다. 공교롭게도 회사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됐다. 순식간에 회사 규모가 반으로 쪼그라든 셈이었다. 물론 근무가 끝나면 나도 아내를 돕긴 했지만 퇴근 이후 일을 돕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당시 아내가 고생이 정말 많았다.

 

 

 

초여명의 주력 매출원이자, 현재 한국에서 유일하게 출판되고 있는 한글 TRPG <겁스>.

 

 

TIG> 그렇다면 요즘은 어떤가? 솔직히 한국 TRPG 시장이 작다 보니 TRPG 출판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것만으로 먹고산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처음에는 집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고, 출판 중간중간 부업 삼아 프리랜서 번역을 하기도 한다. 아내는 이미 그쪽 업계에서 베테랑 대접을 받을 정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꾸준히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상황이 점점 나아진다면 최소한 노후를 걱정할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한다.(웃음)

 

 

TIG>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도 TRPG 출판을 계속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TRPG가 좋다. (웃음) 요즘 아무리 놀 거리가 많다고 해도 TRPG에는 그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 훌륭한 영화, 잘 만든 게임 모두 그만의 장점이 있겠지만, 소비하는 입장에선 다른 이의 이야기라는 한계가 있다.

 

TRPG는 나의, 우리의 이야기다. 설령 마스터가 마련한 이야기를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이르는 과정은 플레이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TRPG를 하면서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TIG> 청춘을 TRPG에 다 쏟았다. 그간의 일 중 인상적인 경험이 있다면?

 

<던전월드>의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여러 해 동안 TRPG 출판도 하고, 관련 커뮤니티도 운영했지만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책을 만들어 서점에 보내도 누군가에게 그것이 전달된다는 실감은 없었다. 커뮤니티가 있긴 했지만 이젠 독자라기보다는 친구처럼 느껴지고….(웃음)

 

이러다 보니 매번 책을 내면서도 우리가 하는 일이 과연 독자들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 일일까 고민도 많이 했다. 간혹 근거 없는 이야기가 진실인양 퍼지기라도 하면 그동안 TRPG에 쏟은 열정이 떠올라 억울하기도 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정말 고독하게 이 일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하면서 댓글을 통해,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게 되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스스로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과 격려를 받으니 정말 기뻤다. 모금액을 달성한 것보다, 하루가 다르게 쌓이는 리플과 트윗이 소중했다.

 

한 독자는 트위터를 통해초여명 덕분에 학창시절을 즐겁게 보냈다”고 말해줬는데, 이 맨션 하나가 나와 아내의 고민을 단숨에 날려주었다. 그동안 우리가 했던 일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말 한마디가 정말 고마웠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남겨진 후원자들의 리플.

 

 

TIG> 앞으로도 출판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계속할 생각인가?

 

신규 시스템을 부담 없이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독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라우드 펀딩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회가 되고 좋은 시스템이 있다면 언제고 다시 프로젝트를 시작할 계획이다. 아마 해외 인디 TRPG가 주가 되지 않을까 한다.

 

 

TIG> 마지막으로 디스이즈게임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TRPG는 정말 즐거운 취미라고 생각한다.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면, 혹은 힘들어서 접하기 꺼려졌다면 <던전월드>를 추천하고 싶다.(웃음) 이미 주요 규칙이 한글로 공개됐으니, 후원하지 않더라도 한번 접해 보길 권한다. TRPG를 아는 이나 모르는 이나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도서출판 초여명의 <던전월드>는 현재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바로가기)을 통해 5 26일까지 후원을 받고 있으며, <던전월드> 출판본은 2013년 7 31일 이후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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