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C게임즈의 김학규 대표가 8년 만에 신작 MMORPG를 공개했다. 13일 한게임 EX 2011에서 발표한 <프로젝트 R1>(가칭)이다. <프로젝트 R1>에서 그는 아기자기한 캐릭터와 유저 간의 커뮤니티를 강조했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으로 유명세를 탄 그의 ‘전공분야’다.
그래서일까? <프로젝트 R1>을 이야기하는 김학규 대표에게선 반드시 대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대박을 치고야 말겠다는 압박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그는 시종일관 편한 자세로 질문에 대답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다 보면 누군가는 즐겨주지 않겠어요?” 게임 개발 19년 차, 만들고 싶은 게임으로 돌아온 김학규 대표를 한게임 EX 현장에서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R1은 유저 사이의 만남을 돕는 촉매제”
다시 귀여운 분위기의 게임으로 돌아왔다.
김학규: 내가 안 만들면 (귀여운 게임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개발을 시작하게 됐다. <그라나도 에스파다> 때는 해 본 적 없는 게임을 개발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고, 이번에는 익숙한 게임이지만 그걸 더 깊이 있게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들 사이의 커뮤니티를 많이 강조한 걸로 보인다.
캐릭터와 커뮤니티를 많이 고려했다. <프로젝트 R1>은 사람과 사람이 만날 기회를 주는 일종의 촉매제다. 개발사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즐기기보다 게임이 유저의 커뮤니티를 돕는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게임 안에서는 마차를 타고 이동하게 되는데, 길을 가다 지나가던 사람을 보면 태워 줄 수도 있다. 여기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몇 번씩 얼굴을 보다 보면 서로 친해지기도 할 것이다. 억지로 파티플레이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유저 사이의 만남과 커뮤니티 형성을 유도하는 셈이다.
<프로젝트 R1>는 이처럼 유저 간의 이벤트를 계속 공급해 주는 존재다. 전투 역시 <프로젝트 R1>에서는 커뮤니티 형성을 돕는 하나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다.
IMC게임즈에서 나오는 게임들은 유난히 여성 유저들이 많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여성 아티스트가 많아서 취향이 잘 맞는 듯하다. 포스터부터 시작해서 개발실에도 아예 여성용 방이 따로 있을 정도다. 원화 담당하는 아트디렉터와 도터 중에도 여자 스태프가 많다.
그럼 <프로젝트 R1>에서 염두에 둔 타겟 유저층이라도 있나?
편하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찾는 사람들, 라이트한 게임을 찾는 유저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라이트한 유저들도 게임에 몰입하면 안 라이트해지긴 하던데…(웃음).
■ “그라나도는 절반의 성공, 무협게임은 취소”
<그라나도 에스파다> 때는 멀티 캐릭터 컨트롤(MCC)이 화제가 됐다.
당시에는 MMORPG가 누구 장비가 좋고 누가 물약을 많이 갖고 있나 수준의 싸움이니까 거기에 전술을 넣어 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콘트롤을 잘하는 유저는 굉장히 게임을 잘 즐기고 있다. 다만 캐릭터가 셋이 되다 보니 아시다시피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이 약간 부족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프로젝트 R1>에서는 유저가 아바타에 더 많이 집중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다. 전투도 때로는 깊이 있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은 수준으로 조절할 것이다.
<그라나도 에스파다>를 통해서 느낀 점도 많을 듯하다.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게임을 서비스하고 다음 게임인 <프로젝트 R1>을 만드는 포석을 다듬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라나도 에스파다>만의 개성도 잘 살렸다. 하지만 더 많은 유저들이 즐기는 데는 부족함이 있었다.
<프로젝트 R1> 이후로도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꾸준히 개성을 살려나갈 것이다. 신작이 풀 3D 게임이 아닌 이유 중에 <그라나도 에스파다>를 염두에 둔 부분도 있다.
기존에 개발 중이던 무협게임은 어떻게 됐나?
개발이 취소됐다. 팀 내부에서 게임에 대한 이미지 공유가 잘돼야 하는데 그게 어려웠다. 무협에 대한 이해도 역시 다르고 생각도 각기 달랐다. 결국 지금은 보류된 채 32GB USB 메모리에 넣어서 금고에 잘 보관하고 있다. 언젠가 무협을 더 잘 만들 수 있는 개발진이 있다면 다시 부활시킬 것이다.
사실 무협게임 이외에도 중간에 많은 시도가 있었다. 지금 개발 중인 게임도 있지만, 초기 단계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프로젝트 R1>의 R은 역시 <라그나로크>를 뜻하는 것인가?
처음에 이름을 지을 때 알파벳 하나와 숫자 하나만 넣어서 단순한 코드네임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이미 L1, L2, R2가 있으니까 우린 R1을 하자고 했다.
많은 퍼블리셔 중 한게임을 선택한 이유는?
한게임의 정욱 대표와 대화를 많이 했는데, 내가 이야기하는 걸 많이 들어줬다. 돈 달라면 돈도 주고(웃음). 대표적인 사건(?)이 있는데, 예전에 온라인게임의 퀄리티를 올리려면 대규모 QA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녔다.
동시접속자를 1,000명 정도 만들 수 있는 베타테스트를 회사 내부에서 할 수 있다면 그 이상 게임 퀄리티를 올릴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곳이 NHN이었다. 물론 내가 말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이야기만 듣고 바로 행동을 시작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이야기를 나눠도 검토해 보겠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는 게 아니라, 빠른 행동을 보여주고 말도 잘 통하는 만큼 같이 서비스해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프라와 분석력도 좋은 파트너다.
■ “압박은 없다.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겠다”
커뮤니티를 내세우고 싶다면 소셜게임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사실 소셜게임도 많이 봤는데 어느 날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라는 6글자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걸 버리겠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생각해 보니 ‘게임’은 포기하더라도 ‘매시브(Massive)’는 포기할 수 없겠더라.
소셜네트워크게임도 마찬가지다. 즐기는 사람은 많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대규모(Massive)의 유저가 함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8년 만의 신작인데 그 사이 시장도 많이 달라졌다.
시장이 달라져도 고정 팬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전에 게임을 개발할 때도 이런 게임이 나오면 어떻겠냐고 주변에 보여줬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반면 무협게임은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김학규 사단’이라는 꼬리표가 부담은 없나?
시작부터 대작을 만들겠다고 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게임을 개발하며 좋은 파트너를 만나고, 그러면서 목표가 수정돼야 하는 건데 이걸 시작부터 초대작을 만들어 대박을 터트리겠다고 생각하는 건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창조하는 사람이 결과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규모는 NHN이 잘 생각해 줄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이런 게임을 만들면 분명 좋아할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게임을 개발할뿐이다.
<라그나로크 2>가 나왔을 때의 심정은 어땠나?
그라비티를 나오면서 그 후부터의 <라그나로크>는 남아서 개발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사실 <라그나로크> 개발자보다 <그라나도 에스파다> 개발자로 불리는 게 편하다.
<프로젝트 R1>은 참 편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게임을 만든 지도 어느새 19년이 됐다. 어느 시점부터는 투자받은 돈이나 빌린 돈으로 개발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그라나도 에스파다>를 서비스해서 매출을 내고 비축한 자금으로 게임을 개발 중이다. 언제까지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1년 이상 홀가분한 상황에서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었다.
일본 시장에서도 많이 관심을 가질 듯하다.
정치인이 자기 지역구를 떠나지 못하듯, 나도 한국과 일본을 떠나서 게임을 개발할 생각은 못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대로 만들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분명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도 있다.
대주주인 한빛소프트가 IMC게임즈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는 IMC게임즈는 여러 가지 실험을 많이 하고 의사결정을 단순하게 할 수 있는 조직이길 바란다. 가능하면 지분을 다시 우리가 구입해서 지배구조를 단순히 하고 싶다. 다만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 쉽지가 않다. 그래서 한빛소프트에 의사를 이야기했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살 수 있으면 당연히 우리가 스스로 사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19년 동안 만든 게임이 8개다. 패키지게임은 매년 1개씩 낼 수 있는데 온라인게임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죽기 전까지 내가 게임을 몇 개나 만들 수 있나 싶다. 그래서 무엇을 만들더라도 하나 하나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몇 개씩 찍어내는 것보다는 하나를 만들더라도 긴 호흡으로 개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