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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NDC 18] 13년 동안 스토리 중심 모바일게임을 만든 회사가 걸어온 길

'하이스쿨 스토리', '초이스' 픽셀베리 스튜디오 올리버 미아오 CEO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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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슬(토망) 2018-04-25 18:09:12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이야기 위주의 게임이 성공할까? 픽셀베리 스튜디오는 이 질문의 답을 오래 전부터 직접 몸으로 실험하는 게임사 중 하나다. 드라마처럼 여러 에피소드로 나눠진 이야기를 즐기는 <Choices: Stories You Play>(이하 '초이스')의 개발사, 픽셀베리 스튜디오 올리버 미아오 공동CEO가 25일 NDC 18에서 'Post-mortem of Choices - a hit narrative, mobile game' ​강연을 통해 개발 과정을 회고하며 자신의 경험을 밝혔다. / 디스이즈게임 장이슬 기자


 

 픽셀베리 스튜디오 올리버 미아오 공동 CEO

 

 

# 4명으로 시작한 게임, 비벤디에 가다

 

18년 전, 미아오 CEO는 친구 세 명과 함께 게임 개발 팀을 만들었지만 금방 돈이 떨어졌다. 미아오 CEO의 표현처럼 운 좋게도, 막 태동하기 시작한 모바일게임에 투자하고 개발사를 찾는 회사가 있어 친구 소개로 들어갔다. 게임 개발 외주를 받으며 돈을 벌었지만 다른 게임사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오리지널 작품이 필요했다. 

 

고등학교를 주제로 한 게임을 만들자, 그 아이디어가 미아오 CEO와 팀의 운명을 크게 바꿨다.

 

고등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배경의 이점을 살려 등교 첫날의 마음, 인간 관계와 여러 청춘의 고민 등을 강조하는 스토리텔링 중심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잘 읽히고 재미있는 글을 쓰기 위해 작가를 영입하고 청소년과 젊은 여성에게 인기 있는 작품을 두루 접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5년 출시한 <Surviving High School>(이하 '서바이빙 하이스쿨')은 버라이존(미국 통신사) 마켓에서 26위를 차지했다. 수익 모델은 두 가지로, 한 번에 8달러 가량의 돈을 주고 내려받는 방식과 매달 3달러를 지불하는 구독 모델이었다. 매주 하나씩 새로운 이야기를 공개하는 업데이트 정책과 더불어 구독 이용자가 늘어났다.

 

성과가 생기자 여러 회사가 인수 의사를 보였고, 미아오 CEO의 팀은 프랑스 대기업 '비벤디'의 품으로 들어갔다. 비벤디의 마케팅 능력은 대단했다. 26위에서 머물렀던 순위는 단숨에 3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비벤디와 액티비전이 합쳐지자 모바일게임에 관심이 없었던 액티비전은 팀을 EA에 매각했다.

 


 

 

#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EA와 줄다리기

 

이 시점에서 모바일게임 시장은 아이폰 등 스마트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EA는 <서바이빙 하이스쿨>을 아이폰으로 '이식'하라고 했지만, 피처폰과 아이폰은 그래픽, 메모리, 볼륨 등 큰 차이가 있었다. 사실상 아이폰에 맞게 게임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이 점에서는 EA와 의견이 일치했지만 사업 모델에서 마찰이 생겼다. 

 

미아오 CEO의 생각으로, 당시 앱스토어는 인앱 결제의 무료 게임이 훨씬 인기가 있었다. 대형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매출 순위가 올라가고, 진입 자체도 무료이니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EA는 무료로 맛보기 에피소드를 제공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 어떤 것도 무료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TV나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VOD를 결제하는 개념은 어떨까? 업데이트를 놓친 이야기를 다시 볼 수 있는 상품을 제안했지만 EA는 또다시 거절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다음 업데이트 에피소드를 미리 볼 수 있는 것은? 그제서야 OK가 나왔다.

 

"상품이 좋다고 생각했는지 제가 귀찮게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건을 통해 꾸준히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좋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실패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더 좋은 생각을 해낼 수 있으니까요."

 


 

이 모델을 적용한 데모 버전을 만들어 EA에 제출했다. 본사에서 두 명의 임원이 와서 게임 출시를 취소한다고 전했다. 완성도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미아오 CEO의 팀은 게임의 기반을 튼튼하게 만든 다음 완성도를 나중에 높이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완성도를 먼저 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주일 간의 개선 시간을 벌어 최대한 완성도를 높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EA는 구조조정을 단행해 작가와 QA, 미아오 CEO를 제외한 모든 개발진을 해고했다. <서바이빙 하이스쿨> 아이폰 버전이 잘 될지 확신이 없다는 이유였다. 절망에 빠진 채 출시한 게임은 그런 EA의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했다. 출시 직후 미국 앱스토어 기준 매출 8위. 다음 에피소드 미리보기 등 소액결제 시스템 덕분이었다.

 

"수익화 모델을 만들 때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그보다 글을 더 잘 쓰고 표현할 수 있는 과정에 집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만드는지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배웠죠."

 


 

 

# 픽셀베리 스튜디오, 선택의 순간들

 

차기작은 스토리텔링과 SNG를 결합한 <하이스쿨 스토리>였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EA에서 세 명의 관리자가 거쳐갔다. 또다시 "게임에 확신이 없던" EA는 몇 달 간격으로 팀원을 해고한 끝에 팀 전체의 해산을 결정했다. 

 

미아오 CEO는 이 시기를 '선택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EA는 확신이 없다고 했지만 이들은 믿음이 있었고, 결국 팀 전체가 EA를 나와 '픽셀베리 스튜디오'를 창업했다.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면서 EA와 협상에 들어갔다. 아직 <서바이빙 하이스쿨>의 인기가 높은 상황이었기에 픽셀베리 스튜디오는 <서바이빙 하이스쿨> 업데이트를 계속 지원하는 조건을 걸었다. 그 대가로 개발 중이었던 <하이스쿨 스토리>의 권리와 지원금을 받았다. 이렇게 얻은 자금으로 <하이스쿨 스토리>를 출시, 앱스토어 매출 10위에 진입했다.

 


 

미아오 CEO는 보다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중심 게임 <초이스>를 구상하고 개발 작업에 들어갔다. 새 게임은 한 가지 주제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테마의 이야기를 선택해서 읽는 플랫폼에 가까운 게임이다. 소액결제 시스템을 강화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읽을 때 에너지가 소모되거나, '프리미엄 초이스'라는 유료 분기 스토리 등의 요소를 추가했다.

 

아직 <초이스>는 개발 단계였다. 그런데 돌연 <에피소드>라는 게임이 등장했다. 평소에 아이디어를 주고받던 타사 CEO의 게임이었다. ​<초이스>의 특징과 소액결제 시스템을 고스란히 투입한 선점자의 등장으로 <초이스>가 위험해졌다. 

 

아이디어를 도둑맞았다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미아오 CEO를 더욱 당황하게 한 것은 <에피소드>의 성적이었다. <초이스>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구현했음에도 <에피소드>는 매출 상위 200위 안에도 들지 못한 것. 

 

이대로 <초이스>를 낸다면 아류작이라는 오명은 물론 수익도 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상위 50위는 되어야 유의미한 매출을 얻을 수 있다. 픽셀베리 스튜디오는 <초이스> 개발을 잠시 중단하고 <하이스쿨 스토리>를 더 다듬는 것에 주력했다. 

 


 

물론 <에피소드>도 단순 카피캣에 머무르진 않았다. 미아오 CEO가 높게 본 것은 콜라보레이션 스토리, 움직이는 캐릭터, 그리고 유저들이 직접 스토리를 만들어 공유하는 기능이었다. 몇 차례의 업데이트 끝에 <에피소드>는 매출 30위까지 올라갔고, <초이스>는 또다른 선택에 직면했다.

 

경쟁 게임의 장점을 우리 게임에도 투입할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 

 

픽셀베리의 또다른 CEO는 <에피소드>가 그랬던 것처럼 만화풍 아트를 도입해 10대 유저를 적극적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아오 CEO는 실사와 비슷한 일러스트풍 아트로 보다 높은 유저층을 개척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경쟁 게임과 다른 유저를 공략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받아들여 졌다.

 

게임 퍼블리싱, 회사 인수 등을 원했던 사람들이 요구한 콜라보레이션 스토리나 유저 제작 콘텐츠 역시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서바이빙 하이스쿨> 때부터 함께 했던 작가진이 좀 더 수준 높은 콘텐츠를 만든다는 믿음이었다. 또 오리지널 콘텐츠는 제작 기간이 빠르기에 '매주 스토리 추가'라는 규칙을 지킬 수 있었다.

 


 

이제 회사는 돈이 없어지고 있었다. <초이스> 출시 몇 달을 앞두고 위기의 순간이 왔다. 창립자들은 이미 게임을 출시할 때까지 임금을 받지 않기로 결의한 상태였다. 미아오 CEO는 직원들을 모아 이야기했다.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게임을 출시하기가 힘들게 됐다. 만약 임금의 20% 삭감을 받아들인다면 게임을 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충분히 이야기해보고 익명 투표로 결정했으면 좋겠다." 픽셀베리의 또다른 선택은 어땠을까.

 

대다수 직원들이 임금 삭감을 받아들였다. <서바이빙 하이스쿨> 초기부터 함께 했던 직원들이었고,  게임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미아오 CEO는 이때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며 "오랫동안 근무한 직원은 경쟁 속에서 회사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서로 잘 이해하고 신뢰를 구축하며, 같이 일하면서 끊임없이 배울 점을 준다" 라고 전했다.

 


 

 

# <초이스>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새로운 도전

 

<초이스>가 세상에 나오고 일주일 뒤. 픽셀베리 스튜디오는 모든 직원에게 임금을 지급했다. 2주 후, 지금까지 줄였던 삭감분도 돌려줄 수 있었다.

 

먼저 구글 플레이스토어 자체에서 사전예약을 진행했던 것이 컸다. <하이스쿨 스토리>를 플레이했던 팬은 물론 경쟁 게임을 하던 유저들도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게임을 알게 되고, 고스란히 첫 번째 고객이 되었다. 리뷰를 통한 피드백 접수와 주 단위 업데이트도 호평을 받았다. 

 

앞서 이야기했듯 빠른 업데이트의 뒤편에는 회사 초창기부터 함께 해온 강력한 작가진이 있었다. 10년 가까이 작가와 일하면서 쌓은 노하우 덕분에 직원을 경쟁사에 빼앗기지 않고, 오히려 넘어오기 시작했다. 미아오 CEO는 핵심 인력을 경쟁사에 빼앗기지 않도록 대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개선의 여지는 있었다. <초이스>는 전세계 앱스토어에 출시했는데, 러시아 등 타 언어권에서 언어가 지원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했던 것. 전체 평점이 하락했기에, 추가 언어 지원 계획이 없다면 처음부터 영미권 국가에만 출시하는 것이 평점 관리에 유리하다.

 

인종 이슈도 발생했다. 다양한 인종의 캐릭터가 게임에 등장하지만 정작 유저들은 <초이스>가 인종 다양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따로 보면 괜찮지만 캐릭터를 모아서 보면 비슷한 피부색과 생김새로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 픽셀베리는 나중에서야 이 문제를 깨닫고 대대적으로 수정한 뒤 공식 사과했다.

 

또한 개발팀을 키우는 것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새로운 콘텐츠 개발 속도에 발목을 잡았다. 픽셀베리는 여라 차례 스튜디오가 인수되거나 해고된 경험이 있다. 그래서 한정된 인원으로 개발을 진행했는데, 이 때문에 개발 속도가 느렸던 것.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채팅 형태의 소설이 인기를 끌어도 당장 반영하지 못해 유행에 뒤쳐졌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초이스>는 성공을 거두었다. 조금씩 자리를 잡고 소문이 퍼지면서 출시 1년 6개월 뒤에는 미국 앱스토어 매출 8위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평균 25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픽셀베리는 또다른 선택에 직면했다. 특유의 장르와 개발 원칙 때문에 픽셀베리 스튜디오는 비벤디, EA를 비롯해 여러 큰 회사와 불화를 겪었다. 원칙대로 개발하기 위해 게임을 스스로 운영할지,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 또다른 파트너를 찾아볼지 고민한 것. <초이스>는 매각을 선택했고, 아시아 시장 진출의 효율성과 10년 이상의 라이브 경험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 넥슨의 신규 스튜디오가 됐다.

 


 

 

# 관심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면 분명한 차이를 낼 수 있다

 

시간을 잠시 돌려, 미아오 CEO가 픽셀베리 스튜디오를 막 창립했을 때 어떤 회사가 되고 싶은지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 미아오 CEO는 그동안 쌓아온 스토리텔링의 강점을 살려 교육용 게임을 만들고 싶었지만, 실제로 재미와 교육은 병행하기 어려웠다. 또 스튜디오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기에 당장은 사업적 성과가 필요했다.

 

그렇게 <하이스쿨 스토리>를 출시하고 관리하던 날, 게임 속에서 유저들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공간에 무서운 글이 달렸다. 한 유저가 자살하고 싶다고 글을 남긴 것. 너무 놀란 미아오 CEO는 자살 방지 상담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전문가에게 연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내부적으로 여러 논의 끝에 답변을 결정했다. 우선 전문가의 상담을 받도록 권하고, 우리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응하겠다고 답변했다. 그 후 띄엄띄엄 유저의 메시지를 받게 됐다. 어떻게 답변해야 도움이 될지 고민하고, 연락이 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됐다.

 

일주일 후 그 유저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겠다고 글을 올렸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데다 학교에서 괴롭힘까지 당하고 있던 그 유저는 이후 "여러분 덕분에 이렇게 살아 있다"고 감사 메시지를 전했다. 이 사건은 픽셀베리 스튜디오의 게임관은 물론 앞으로의 사업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은 픽셀베리 스튜디오가 청소년 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다. 미아오 CEO가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13명 중 한 명은 괴롭힘을 당하고, 그 중 대다수가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래서 픽셀베리는 '사이버스마일'이라는 비영리단체와 제휴해서 자살 징후를 보이는 유저를 연결해주고, 폭력 피해자를 돕는 기부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이스쿨 스토리>와 <초이스>에서 학교 폭력과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청소년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 고민에 대한 이야기는 위안이 되었다고 메시지를 전한 타 언어권 유저도 있었다. 여러 비영리기관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기획 단계에서 함께 하기도 했다.

 

"게임은 상호 작용이 가능합니다. 유저는 캐릭터와 연결됐다고 느끼고, 자신이 공감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게임에 고민을 털어놓기도 합니다.게임이 가진 힘, 서로 연결하는 힘을 통해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도 한 우물만 파면 관심 분야에서 분명한 차이를 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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