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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초등학생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시 '중독', 사실은...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임상훈(시몬) 2017-06-16 16:07:23

5월 말 ‘중독’이라는 제목의 시화(시와 그림)를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귀여운 글씨였지만, 운율과 풍자가 제대로 살아있으니까요. 많은 이들이 빵 터졌습니다. 특히 게임 생태계의 호응이 높았습니다. 초등학생의 순수한 눈으로, 게임을 중독으로 보는 어른들의 답답한 시선에 속시원한 일침을 가했으니까요. 

 

틈만 나면 게임한다고

중독이라 하지만


난, 학교 갔다 와서 할 뿐

난, 학원 갔다 와서 할 뿐

난, 밥 먹고 할 뿐

난, 똥 싸고 할 뿐


학교도안가학원도안가밥도안먹어똥도안싸

틈도 없이 하는 게 중독이지


틈도 없이 잔소리하는

엄마가 중독이지


일부 언론에서는 발빠르게 ‘초등학생의 시’를 기사화했습니다. 통쾌한 글에 공감하는 이가 많았던 만큼 블로그나 카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서도 ‘초등학생의 시’가 많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퍼져나간 내용은 대부분 오보였습니다. 그 시는 초등학생이 지은 게 아니었으니까요. 

 

시화를 작성한 것은 초등학생이 맞습니다. 사진의 제목 아래 ‘그림: 한창희’라고 적은 서교초등학교 3학년 한창희 학생이죠. 하지만, 그 시는 동화 작가인 강기화 님이 지은 것입니다. 한창희 학생이 ‘글: 강기화’라고 적은 것도 그 이유죠.

 

 

한창희 학생은 지난 5월 시화 수업시간에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본 책에 나온 시가 본인 생각과 딱 맞다고 생각해서 그림에 그 시를 적어 넣었죠. 지금도 교실 뒤에 걸려있다고 합니다.

 

서교초등학교의 한 선생님은 한창희 학생에 대해 “창의력이 뛰어나고 똑똑한 학생이다. 음악 시간에도 곡에다 독특하고 상상력 넘치는 가사를 붙이는 재능이 뛰어나다”고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창희 학생은 조금 위축된 상태입니다. 언론에서 연락이 와서 ‘어느 책에서 본 거냐’고 물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속 물어보니 본인이 무언가를 잘못한 것 아닌가, 하고 느끼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현재는 선생님이 언론과의 연결은 막고 있는 중이라고 하네요.

 

시를 지은 강기화 님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동시 작가입니다. 2016 우수출판콘텐츠 사업에 선정돼, '놀기 좋은 날'이라는 첫 동시집을 냈죠. <중독>은 바로 이 동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고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시인은 시집 속 '시인의 말'을 통해 "동시를 쓰는 일은 이렇게 엉뚱한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히 바라는 기도"라고 이야기하며, "어린이 친구들과 어른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보내는 힘찬 응원"이자 "좋은 사람이 되라고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라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시화를 작성해준 한창희 학생에게 그 응원을 담아 개인적인 메시지를 보냅니다. 

 

‘한창희 학생, 멋진 시화를 작성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즐거워했거든요. 도서관 책을 못 찾아냈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어요. 창희 군은 강기화 님이 글을 썼다고 적었잖아요. 지금 위축되어야 할 사람은 창희 군이 아니라, 확인 없이 초등학생이 지은 글이라고 기사를 쓴 사람들입니다. 위축되지 말고 힘내세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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