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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NDC 15] “내 삽질을 넘어가라!” 신입 기획자에게 주는 5가지 조언

넥슨 박재석 기획자의 ‘내 삽질을 넘어서 가라: 신입기획자를 위한 가이드’

김승현(다미롱) 2015-05-20 14:34:45

게임기획자란 어떤 직업일까?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폼나게 구현하는 사람? 아니면 게임의 모든 것을 A부터 Z까지 설계하는 사람? 넥슨 박재석 기획자는 일반인들이 가지는 이러한 기획자의 모습에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그가 13년 간 보고 겪은 기획자는 좋든 싫든 현실과 타협하고 수시로 남의 의견을 듣고 아우르는 직업이었다.

 

NDC 15에서 그가 말한 좋은 기획자의 모습을 정리했다. 13년 간 그가 만나온 각양각색의 기획자 이야기와 함께 초보 기획자들이 착각하기 쉬운 기획자에 대한 환상을 알아보자.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넥슨 신규개발본부 MS실 MP유닛의 박재석 기획자

 

1. 너는 ‘정말정말정말’ 게임을 좋아하니?

 

박재석 기획자가 강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기획자, 아니 게임업계 구직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정말로 게임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지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강연 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여기에 투자하며 고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단 한국에서 게임은 굉장히 대우받지 못하는 문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는 동한 한 번이라도 ‘게임 좀 해라’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반대로 ‘게임 하지 말고 그 시간에 XX나 해라’라는 말만 지겹도록 듣는다. 이러한 주변의 ‘억압’은 자연히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억압된 대상을 갈망하게 만든다. 억압 때문에 도리어 게임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좋아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게임을 정말 좋아했더라도 사회 생활을 오래함에 따라 게임에 대한 애정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박 기획자의 동료 중에는 회사가 끝나면 아예 게임을 하지 않는 개발자도 있다. 그는 게임이 좋아 회사에 입사했지만 점차 생활에서 게임의 비중이 줄어든 경우다. 허나 이미 게임이 자신의 취향이 아님을 알게 된 후에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게임개발 밖에 없어 계속 업계에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삶에서 게임의 비중이 낮아지는 순간 게임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물론 이것이 나쁘진 않습니다. 실제로 업계에 투신하는 분들 중 ‘게임계의 스티브 잡스가 돼 억대 연봉을 받겠어’라는 분도 있습니다. 저 같은 소시민과는 다른 세계 사람같죠. (웃음) 그런데 돈을 벌려면 게임보다 더 좋은 사업도 훨씬 많습니다. 만약 돈이 목적이라면, 혹은 게임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면 더 쉽고 더 대우받는 업계로 가세요.”

 


 

박재석 기획자가 이렇게 게임에 대한 열정을 강조하는 것은 열정이야 말로 개발자, 혹은 업계 종사자가 일에 만족하고 또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게임만큼 이상과 현실이 극명히 차이 나는 업계는 찾기 힘들다. 그리고 반대로 이상과 현실이 수시로 섞이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런 업계에서 종사자가 추구하는 목적이 없다면 만족이나 발전은커녕 당장 닥친 현실만 보고 업계를 떠나기 십상이다.

 

그는 이 때문에 구직자들이 게임업계에 투신할 때 게임에 대한 애정 못지 않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얼핏 보면 개발만 있어 보이는 업계지만 실제로 그 안에는 개발과 운영, 사업, 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이 있다. 개발은 게임을 만들고 사업은 게임을 성장시키는 재미가 있다. 운영은 유저들과 소통하고 언론은 게임을 알리는 재미가 있다. 이 중 자신이 좋아하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야만 스스로도 발전하고 업계에서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게임을 즐기는 것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자신이 정말 정말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지, 일하고 싶다면 어떤 일정 정말 하고 싶은지 수십 번 고민한 후 업계로 오세요. 그래야 뒤늦은 후회가 없습니다.”

 


 

 

2. 로망과 현실은 다르다: 프로의 자세 편

 

그렇다면 이렇게 고민 끝에 기획자가 되었다면 어떤 것을 주의해야 할까? 박재석 기획자는 가장 먼저 기획자가 가지고 있는 ‘로망’부터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자들이 가지는 대표적인 로망이 <레드 데드 리뎀션>이나 <라스트 오브 어스>같이 ‘올해의 게임’급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기획자로서 당연히 꿈꿔 볼 만한 일이고 멋진 열정이기도 하다. 허나 이러한 로망은 기획자의 꿈뿐만 아니라 회사의 필요성, 동료들의 협동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취직한 기획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의 일은 ‘회사의 돈을 받고 회사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기획자의 꿈이 원대하고 멋지다고 하더라도, 취직을 했다면 자신의 꿈보다 프로젝트의 목표를 우선시 해야 한다. 이것을 망각한다면 다음과 같은 웃지 못할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다.

 


 

<던전앤파이터>에 신규 콘텐츠를 추가해야 한다고 예를 들어보자. 한 기획자가 과거 이런 것을 재미있게 즐겼다며 신규 콘텐츠로 ‘비행 전투 맵’ ‘다양한 탈 것’ ‘부위파괴 시스템’ 등을 제시했다. 허나 <던전앤파이터>는 존 방식의 MORPG이자 별도의 타겟팅 시스템이 없는 2D 액션 게임. 그가 말한 것을 구현할 수 없는 구조다. 

 

웃긴 이야기지만 이것은 박재석 기획자가 일하며 실제로 겪은 사례를 재구성한 것이다. 봉급을 받는 전문 개발 인력임에도 소속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만 내세워 일어난 일이었다.

 


 

 

3. 로망과 현실은 다르다: 그들이 사골을 끓이는 까닭

 

기획자들이 빠지기 쉬운 또다른 로망은 새로운 요소가 가득한 신규 콘텐츠다. 게임 서비스가 시작되면 필연적으로 신규 콘텐츠의 필요성이 생긴다. 이 부분에서 대부분의 신입 기획자는 A부터 Z까지 새로운 요소, 새로운 리소스로 가득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다. 바로 프로그래머와 이티스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등골 브레이커(?)의 시작이다.

 

개발의 최대 난적은 돈과 시간이다. 아무리 출중한 개발진도 유저들의 콘텐츠 소비 속도보다 더 빨리 콘텐츠를 더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몬스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과 프로그래밍, 디자인 등 수많은 요소가 투입된다. 당연히 작게 잡아도 일(日) 단위의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허나 유저들이 몬스터 하나를 만나고 소비하는 시간은 1 ~ 2시간에 불과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개발사는 소비 속도보다 콘텐츠 제공을 더 빨리하는 것은 진작에 포기하곤 어떻게든 둘 사이의 격차를 줄이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온 꼼수(?)가 바로 리소스 재활용이다. 몬스터의 색깔을 바꿔 다른 속성 몬스터로 설정하거나, 몬스터의 무기를 바꿔 액션 형태를 바꾸는 등의 꼼수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런 것이 과하면 신규 콘텐츠임에도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지도 못할뿐더러 유저들에게도 ‘사골 끓인다’며 비판 받는다. 당연히 기획자는 물론 개발자 모두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선택이지만 일반 몬스터 하나하나 신경쓰기엔 시간과 자원 모두 충분치 않아 선택하게 되는 차선책이다.

 

“가장 좋은 것은 개발자 모두 총력을 다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시간과 예산이 지배합니다. 신규 개발에 대한 기획자의 욕망이 동료들의 업무 부담을 늘리면 결국 프로젝트 자체가 망가지게 되죠. 기획자가 하는 일은 단순히 기획을 잘 하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후 기획한 것들 것 잘 개발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4. 절대불변의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과 관련해 신입 기획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게임 개발에 절대적인 원칙이나 프로세스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배경 스토리 설정 - 스테이지 기획 - 모델링 - 스킬 기획 - AI 작업’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개발 초기에는 이 과정이 지켜질 순 있겠지만 론칭에 가까워 질수록, 혹은 라이브 서비스가 진행될수록 이 과정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개발은 항상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견되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특정 분야에 업무가 과도하게 쏠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때 개발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업무 과부하를 무시하고 기존 프로세스에 맞춰 업무를 진행해야 할까? 현실을 무시한 채 원칙대로만 일하려 하니 효율이 나오지 않고, 효율이 떨어지니 개발 비용은 증가하고, 결국 프로젝트는 표류한다. 박재석 기획자의 말을 빌리면 “공포의 게임 개발 삼위일체”가 강림하는 셈이다.

 


 

오히려 이 때 기획자가 해야할 일은 ‘그럼 어떤 것을 먼저 할 수 있느냐’다. 사실 게임개발에 있어 절대적인 원칙은 없다. 때로는 프로세스 같은 것 무시한 채 급한 것부터 처리해도 콘텐츠는 생산된다. 물론 이 경우 제대로 된 개발 절차를 밟는 것과 비교하면 기획의도가 100%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고 결과물에 오류나 흠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개발은 때로는 완성도 못지 않게 ‘가성비’가 더 중요하기도 하다.

 

“완벽한 개발 환경이란 꿈입니다. 오히려 개발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하고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수시로 겪게 됩니다. 오히려 좋은 개발자가 되려면 때때로 주어진 환경 이상의 결과를 만드는 고민도 해야 하죠.”

 


 

 

5. ‘기획의도’만 내세우지 말고 다른 의견도 귀 기울여라

 

기획자란 기본적으로 프로그래머나 아티스트 등 다른 이들에게 ‘요청’을 하는 사람이다. 개발의 대부분은 기획자가 콘텐츠를 기획하고 요청서를 보내면 다른 이들이 이에 맞춰 개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렇다고 게임 개발이 기획자만의 의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기획의도’ 못지 않게 동료들의 의견도 반영에 게임에 더하는 것이다.

 

박재석 기획자가 겪은 일 중 이런 사례가 있었다. 한 기획자가 아티스트에게 신규 캐릭터의 일러스트를 요청했다. ‘귀여운 트윈테일 여성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것이 요구조건이었다. 아티스트는 이에 맞춰 그림을 그려줬지만 기획자는 요청했던 것과 복장이 다르다, 상상했던 것과 스타일이 다르다 등을 이유로 수차례 수정을 요구했다. 아티스트는 말 그대로 ‘멘붕’했다.

 


 

물론 기획의도란 굉장히 중요하다. 기획의도란 콘텐츠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이자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사례에서 기획자가 요구한 의도들이 정말 중요한 것이었을까? 앞 사례에서 중요한 기획의도는 ‘귀여운 트윈테일 여성 캐릭터’ 하나뿐이었다. 그 이외 다른 것은 단순히 기획자의 취향일 뿐이었다. 허나 기획자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입장만 내세워 팀원 하나의 의욕을 저하시켰다. 의외로 기획자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례다.

 

라이브 서비스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자주 일어난다. 만약 한 유저가 특정 스킬의 조작감이나 효용이 이상하다고 운영팀에 제보했다. 운영팀 또한 이것이 옳다 여겨 기획자에게 문의했다. 그에 대한 기획자의 답변은 ‘의도한 사항이다’뿐이었다. 오히려 기획자는 ‘유저들이 원하는 것 다 들어주면 어떻게 게임이 돌아가냐’고 되물었다. 이것이 정말 바람직한 것일까?

 

“기획의도가 모두 정답은 아닙니다. 때로는 핵심 의도를 유지한 채 동료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고, 때로는 기획의도가 틀린 것을 인정하고 유저들의 의견을 받아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획자란 게임의 모습을 설계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게임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기획자란 다른 사람의 의견까지 귀 기울이고 잘 아울러 게임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사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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