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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NDC14] 김학규 대표 회고록 “끊임없이 갈망하고 학습하라”

IMC게임즈 김학규 대표의 ‘나의 개발자 인생 회고록’

김승현(다미롱) 2014-05-29 19:05:39
IMC게임즈의 김학규 대표가 자신의 개발자 인생 20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김 대표는 29일 경기도 판교에서 열린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 2014(이하 NDC14)에서 ‘나의 개발자 인생 회고록’이라는 주제로 게임계에 몸담으며 잘했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후배 개발자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개미맨2> <악튜러스> <라그나로크 온라인> <그라나도 에스파다> 등 다수의 히트작을 만들어 온 김 대표의 진솔한 이야기를 글로 옮겼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IMC게임즈의 김학규 대표.

잘한 점 1. 지속적인 갈망


사람이 어떤 것이든 일정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죠? 이를 표현한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단어도 있죠. 그런 의미에서 저도 오래 게임개발을 한 덕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오래 하려면 힘들고 지루하고 지치죠. 그럼 어떻게 게임개발을 계속 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존경하는 후배, 넥슨 김동건 본부장이 옛날 ‘갈망의 아궁이’라는 강연을 했습니다. 목마름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간절하게 하고, 이것이 없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설명한 강연이었죠. 저도 이러한 목마름과 결핍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결핍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죠. 하지만 이 결핍이라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너무 심하면 사람이 근시안적이 되지만, 적절한 결핍은 사람을 무언가에 집중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저의 결핍은 무엇이었을까요? 제 첫 갈망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였습니다. 처음 컴퓨터를 접한 것이 83년이었습니다. 정신없이 게임에 빠져 살았는데, 이렇게 번듯한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울티마 4>같은 근사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어린 시절 짧은 영어로 외국 프로그래밍 책을 사다 보기도 했고, 컴퓨터 잡지도 사 부록으로 딸린 소스코드도 고치기도 했습니다. 94년 아마추어 개발팀을 꾸렸어요. 팀원들과 여러 시도를 하며 게임을 만들었죠.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되니 이제는 번듯한 작업실을 가지고 싶더군요. 

그때가 20대 초반, 한참 미래에 대해 걱정하던 시기였습니다. 나는 게임을 만들어 먹고 살 수 있을까, 팀원들과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이후 회사를 차린 이후엔 어떻게 하면 회사가 망하지 않을까 까지. 조직을 안정시키고 싶다는 결핍이 생겼죠. 

우여곡절 끝에 회사가 안정되고 먹고 살만해지니 이제 다른 결핍이 생기더군요. 게임계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죠. 이렇게 많은 결핍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결핍을 창출하는 능력이야말로 무언가를 오래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주변에 같이 게임개발을 하다가 수천억 원을 번 동료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그게 참 부러웠는데, 지금은 제가 그렇게 벌었으면 개발자로 남지 못했을 것 같아요. 스티브 잡스가 좋은 말을 했죠. Stay hungry, Stay foolish. 부족함이 동기를 만들어 줍니다.




잘한 점 2. 같은 분야를 여러 번 반복해서 개발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에는 같은 분야를 반복해서 개발한 것도 컸습니다. 처음 게임 개발에 뛰어들 때 꿈은 <울티마> 시리즈 같은 제대로 된 RPG였습니다. 그래서 1992 ~ 1993년에는 하이텔 게임제작동호회도 만들고 활동하며 열심히 몸부림쳤죠. 

개발자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RPG라는 장르는 초보 개발자가 도전하기는 너무 벅찬 목표죠. 그래서 목표를 깎고 또 깎았어요. 처음엔 정통 RPG가 목표였는데, 그나마 쉬워 보이는 액션RPG로 선회도 하고…. 그때 <이스> 시리즈를 신나게 하고 있었는데 <울티마> 시리즈보다는 단순해 보이더라고요. 

물론 이 편견은 만트라 입사해 <이스2 스페셜>을 만들며 박살 났습니다. (웃음) 그렇게 목표를 최대한 깎아 낸 것이 횡스크롤 액션이었습니다. 첫 작품이 <리크니스>였습니다. 사실 이조차도 저 혼자 만들지 못해 소프트맥스 최연규 실장 등과 공동개발을 했죠. 출시도 남의(?) 손으로 했고요. 



이렇게 목표 비스름한(?) 것을 달성하니 아쉬움이 남더군요. 아쉬운 점, 미흡했던 점을 모아 <라스 더 원더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가 1995년이었는데, 마침 32비트 2MB라는 무한한(?) 메모리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왔었습니다. 

<리크니스>는 640kb 메모리 사용하느라 이펙트도 마음대로 넣지 못했는데, 덕분에 신나게 개발할 수 있었죠.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도 아쉬움이 남아 <라스 더 원더러> 엔딩 장면에는 ‘죄송합니다. 더 잘 만들겠습니다’라는 문구까지 넣었어요.

97년 윈도우와 비주얼스튜디오가 보급되었습니다. 당시 <개미맨2>를 외주로 개발하고 있었는데, 이 덕분에 꿈만 꾸던 ‘다관절 보스’ 같은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였는데 통학하는 좌석버스 뒷자리에서 노트북으로 보스의 관절을 만들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횡스크롤 액션만 만들며 아쉬움을 극복하다 보니 점점 프로그래밍에 대한 자신감이 쌓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이 아닌, 저 자신에게 확인을 받고 수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자신감과 실력도 늘고, 주체적으로 방향도 설정할 수 있죠.



그리고 2000년, 수년간의 외도(?)를 마치고 RPG <악튜러스>를 만들었습니다. 장르는 달랐지만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후 온라인 RPG를 만들 때도 네트워크나 3D 등에서 고생은 했지만, 맨땅에 헤딩한다는 두려움은 없었죠.

어떤 분야든 일정 깊이 이상으로 파고들다 보면 변화가 옵니다. 안정적인 기반이 생기고 새로운 영역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죠. 최근에는 툴도 빨리 변하고, 신기술도 자주 나오죠? 그래도 여기 계신 분들께 당부하고 싶은 점은 개인 프로젝트만이라도 좋으니 한 가지 주제로 꾸준히 파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장인 정신을 가지고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스스로 변화가 느껴집니다.




잘한 점 3. 계속 새롭게 배울 소스 확보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과 기술을 접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처음에 책과 인터넷으로 이것을 대신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 중 하나가 94년 대학교에 인터넷이 개통됐어요. 신세계였죠. 워싱턴 대학에 FTP에서 자작 게임엔진이 올라오기도 했고, 97년 베를린공과대학에서는 3D 엔진을 구했습니다. 

이런 것을 계속 접하며 새로운 지식과 자극을 얻었습니다. 요즘은 NDC나 GDC, KGC같은 좋은 행사가 많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만 받아들이지 말고, 가끔은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것을 먼저 시도해 보세요. 

저 같은 경우 물리기반 렌더링이 처음 나왔을 때 꽂혀서 공부했는데, 그 덕에 지금 <울프나이츠>에서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항상 좋은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안되면 다시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시도하세요. 설사 실패하더라도 그 자체가 좋은 자극제가 됩니다.



자신의 분야 밖으로 지식의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프로그래머 출신이다 보니 한동안 프로그래밍 책만 팠는데, 나중에 회사를 차리고 사장이 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그래서 경영학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학자끼리 의견도 다르고 모순되더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학이나 인문학 같은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건드리는 분야가 많아지니 나중에는 실용서 외에도 생물이나 물리 같은 기초과학 서적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양으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게임과 관계없는 책이 게임을 만드는데 영감을 줬죠. 

사실 게임의 본질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물이 진화했고, 사회는 어떻게 변해왔고, 사람은 어떤 보상에 반응하는가 같은 지식도 어떻게든 게임에 적용되죠. 성공한 게임만 벤치마킹하다 보면, ‘게임’이라는 좁은 틀 안에 안주하기 쉽습니다. 이를 벗어나려면 게임 외의 것도 꾸준히 접해보세요. 좋은 자극이 됩니다.




잘한 점 4.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가르치려 노력함


그리고 이렇게 배우고 쌓아온 것을 남에게 알려주세요. 내가 오래 하고 ‘자기 피드백’ 받은 것을 남에게 알려주면, 오히려 자기가 더 많이 배우고 (지식을) 정리하게 됩니다.

숙명여대 근처 학원에서 강사를 했었습니다. 사실 기존 강사가 ‘빵꾸’나서 들어간 것이었는데, 막상 상황을 보니 제대로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는 거에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쪽팔림’을 무릅쓰고 그동안 만들었던 엔진이나 소스를 교육자료로 사용했습니다. 

이러면서 저 스스로도 제가 가진 지식을 정리하고 숙성시키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그 과장에서 이미 보답을 받는 것 같아요. 어차피 게임이라는 분야는 기술이나 트렌드가 굉장히 빨리 변하잖아요? 노하우라고 쟁여봤자 시간이 지나면 쓸모없어지는 것이 태반입니다. 

저도 예전부터 프로그래밍 책을 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다 보니 다 쓸모없어졌어요. (웃음) 그러니 차라리 자신의 지식도 정리할 겸, 하다못해 인지도라도 쌓을 겸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남는 장사입니다. 




아쉬운 점 1. 중간에 조직이 바뀜


지금까지 열심히 잘난 점만 이야기했네요. 아쉬운 점은 없었을까요? 가장 큰 아쉬움은 중간에 조직이 바뀐 것이었습니다. 2002년, 옛날부터 함께 하던 아마추어 팀이 성공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성공을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2003년 개인적인 문제로 옛 회사를 나와 새 회사를 차렸거든요. 많은 부분이 ‘리셋’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동안의 개발 노하우도 가지고 있겠다, 나름 성공 경험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팀원도 금방 모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2003년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현실은 상상과 다르더군요. 회사를 창업하고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창업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게임을 개발하는 시간보다 게임팀을 만드는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죠. 

게임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개개인의 노하우보다, 팀 전체가 공유하는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죠. 개발팀에 한 명의 천재가 있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버그만 고치는 것은 가장 나쁜 대응입니다. 

좋은 것은 문제의 원인을 뿌리 뽑는 것이고, 가장 좋은 것은 원인을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팀원 전체가 이를 인지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관련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죠. 팀워크는 팀원 간의 친밀도의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팀원이 어떤 경험을 공유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죠. 

저는 그것을 이전 팀원들과 떨어지면서 알게 되었죠. 조직이 바뀌었을 때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같이 게임을 만들며 위기를 헤쳐온 팀원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이 뒤늦게 아쉬움으로 다가왔죠. 만약 이전에 함께했던 이들과 계속 함께했다면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었겠죠.




아쉬운 점 2. 자본, 회사, 창업에 대한 이해 부족


그렇다면 왜 조직이 중간에 바뀌었을까요? 가장 큰 원인은 개발자로만 살아온 덕에 자본·회사·창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여럿이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려면 처음부터 그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회사가 만들어진 후에는 고칠 수 없는 부분이 있죠.

하지만 이에 대한 경험이 없다 보니 처음에 선택을 잘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창업이든 퍼블리싱이든, 계약할 때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을 꼼꼼히 신경 쓰기보다는 당장 <악튜러스>를 출시하기 위해, 혹은 당장의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것을 잘못 선택했죠.

나중에 이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원하는 개발환경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새로 쌓는 수밖에 없었죠. 저는 그렇게 다시 나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죠.




“나는, 우리는 왜 게임을 만드는가?”


올해 NDC의 주제가 ‘체크포인트’입니다. 저는 오늘 모인 분들께 체크포인트로서 묻고 싶습니다. 왜 게임을 개발하나요? 왜 게임회사를 다니나요?

사람의 행동은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해 이뤄진다고 합니다. 저는 이 기준을 3가지로 분류합니다. 첫번째는 시장입니다. 그것을 하면 돈을 주니까.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고, 노동자 혹은 예술가로서 노력에는 정당한 대가가 있어야 하니까요. 

다음은 공동체입니다.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고, 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즐거워서. 사회에 살아가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대부분의 일반 회사는 시장 규범과 공동체 규범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만약 전문 계약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시장규범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것이고, 대기업 공채에 성공한 이는 연수원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며 공동체 규범이 강해지겠죠.

그런데 저는 개발자라면,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규범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더 좋은 것을 만들고 싶고,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 돈이나 조직이 나에게 부과한 규범이 아니라, 개발자 자신의 자아 안에서 이뤄지는 ‘자기 규범’ 말입니다.

저는 이상적인 개발사를 꿈꾸며 일합니다. 게임을 좋아하고 이해하는 이들이 서로를 배려하면서, 유저들의 응원을 받아가며, 미래의 게임을 상상하며 만들어 나가는 조직이 꿈이죠.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게임을 만들고, 어떤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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