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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만화를 죽였다 살리려 하더니, 이젠 중독법인가?”

‘게임 및 문화콘텐츠 규제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김승현(다미롱) 2013-11-21 14:42:21
“그동안 무분별한 규제로 수많은 문화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원치 않는 피해를 입었다. 4대 중독법은 문화콘텐츠에 대한 규제이며, 문화 가치를 훼손하는 이 법은 철회되어야 한다.”

게임 등 문화콘텐츠에 대한 규제 개혁을 촉구하는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했다. ‘게임 및 문화콘텐츠 규제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게임규제개혁공대위)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발족식을 가졌다.

게임규제개혁공대위는 최근 4대 중독법(이하 중독법)을 비롯해 지난 몇 년 동안 지속된 게임, 만화, 웹툰, 영화 등 문화콘텐츠에 대한 규제 움직임에 반대하는 모임이다. 게임규제개혁공대위는 만화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박재동 화백이 위원장을 맡았고,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게임개발자연대 등 게임관련 단체와 독립음악제작자협회, 문화연대, 아나수로 등 총 22개 단체가 참여했다.


“중독법은 문화 콘텐츠와 표현물 자체에 대한 규제”


게임규제개혁공대위에 게임 단체 외에 다양한 문화, 시민 단체가 참여한 까닭은 중독법을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간 계속되어온 과도한 문화 콘텐츠 규제의 연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박재동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과거 만화는 청소년들의 유일한 문화콘텐츠였다. 하지만 정부는 유해물질이라는 낙인 아래 만화책을 불태우며 억압했고, 지금은 진흥법을 만들어 죽은 산업을 살리려고 하고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중독법이란 이름으로 다시 탄생했다. 청소년 보호라는 이름 아래 각종 문화 콘텐츠를 규제하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청소년이란 공부만 하는 존재가 아닌지 걱정된다. 오락은 범죄가 아니다. 요식적인 토론으로 규제해도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며 중독법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박재동 게임규제개혁공대위원장

이는 게임규제개혁공대위에 참석한 다른 문화, 시민단체의 일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배장수 이사는 과거 영화계에 일어났던 규제가 게임에서도 얼토당토않은 근거로 발생하고 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중독법이 미디어 콘텐츠, 나아가 표현물 자체를 규제하는 정책의 시초가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중독법의 주된 대상인 학부모와 학생들의 의견도 나왔다. 권금상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학부모의 입장에서 진정 청소년 보호를 원한다면 게임밖에 할 수 없는, 그리고 놀이 자체를 죄악시하는 사회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인권활동 아나수로의 호두악마(닉네임)는 청소년 보호를 위한 법 대부분이 만들어질 때 정작 청소년의 의견은 듣지 않았다며 법조계와 업계 모두를 향해 청소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을 호소했다.

게임규제개혁공대위는 이러한 문화, 시민단체들의 뜻을 모아 “지난 몇 년 동안 계속된 과도한 문화 콘텐츠 규제는 문화 콘텐츠 전반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특히 ‘게임중독’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근거 없이 마녀사냥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중독법은 문화예술계와 문화콘텐츠 생산자들에게 납득할 수 없는, 편협하고 일방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선언하며, 중독법 법안 철회 요구와 이른바 ‘중독 현상’ 등 각종 사회적 폐해 치료를 위한 시스템 개혁 및 문화 콘텐츠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다.




1,000명 규모 플래시몹과 정기포럼, 민간과 학계를 아우르는 사업계획


게임규제개혁공대위는 앞으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중독법의 통과를 막고, 게임 등 문화콘텐츠에 대한 정책연구를 통해 바람직한 문화 콘텐츠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힘쓸 계획이다.

먼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중독법 저지가 제 1순위 사업으로 진행된다. 게임규제개혁공대위는 단기적으로는 중독법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동본부를 꾸릴 계획이며, 이와 함께 문화계, 학계, 시민사회와 연계해 중독법 저지를 위한 선언 및 서명운동, 1인 시위와 1,000명 규모의 플래시몹 퍼포먼스 등을 준비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정기 학술 포럼이나 정책 연구회 등을 주최해 그동안 미진했던 학문적, 정책적 연구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게임, 영화, 음악, 만화 등 문화콘텐츠 규제 사례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또한 미디어 문화 콘텐츠에 대한 민간 자율규제 제도를 마련해 정부가 아닌 민간 차원의 규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러한 활동은 중독법에만 국한되지 않고 강제적 셧다운제나 청소년 보호법 등 그동안 있어왔던 문화 콘텐츠 전반의 규제책에 대해 포괄적으로 실시된다.

게임규제개혁공대위는 이외에도 재정 확보를 위한 후원의 밤을 개최해 활동 기반을 다지고, 문화 콘텐츠 산업 종사자를 위한 문화모임을 열어 각종 규제로 사기가 떨어진 종사자들을 도울 계획이다.


“중독은 매혹, 문화에 매혹되는 것은 영혼이 치유되는 과정”


다음은 게임규제개혁공대위 발족식에서 있었던 일문일답이다.




만약 신의진 의원이 중독법에서 게임을 제외하고, 추후 게임 및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규제 정책을 따로 만든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먼저 이에 대한 위원회 차원의 논의가 없었으므로 지금 발언은 개인적인 소견임을 밝힌다. 기본적으로 게임이 4대 중독에서 배제돼야 한다는 입장은 변함없다. 만약 게임이 4대 중독에서 빠진다면 기쁠 것 같다.(웃음) 하지만 게임이 포함된 중독법에 통과함으로 인하 정신의학계가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게임이 중독법에 관련될 것으로 생각한다.

게임과 미디어 콘텐츠를 따로 규제한다는 가정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게임에 대한 규제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일명 게임법)에 이미 포함돼 있다. 진흥법이라는 이름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이러한 종류의 모든 법안에는 진흥책과 규제책이 같이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게임에 대한 규제는 기존 법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게임계는 이미 강제적 셧다운 제도라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단체가 지금에서야 나온 까닭은 무엇인가?

이동연: 처음 강제적 셧다운제가 나왔을 때는 문화 콘텐츠에 대한 규제라기 보다는 청소년 인권 측면에서 접근했다. 실제로 당시에는 각종 인권단체와 많은 연대를 했었다.

하지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신의진 법을 보니 법안에 게임이나 미디어 콘텐츠라는 정의조차 불분명하다. 관련 인사들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법안에 특정 개념이 실리면 이는 그 자체로 실체를 가진다. 지금 상황에선 개념도 정의하기 나름이고, 이는 나아가 문화 콘텐츠 전체에 대한 규제다. 하지만 중독법 발의자들은 이에 대한 영향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정의조차 불분명한 법안이 특정 단체에 의해 주도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신의학계의 의견을 부정하진 않지만, 일명 ‘게임중독’과 관련된 담론에서 그들이 가장 중요하거나 핵심적인 시선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공대위에 다양한 문화, 시민 단체가 포함된 것도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개념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반영하고 싶어서다. 지금은 문화 관련 단체가 많지만, 나중에는 학부모나 교육 단체와도 함께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싶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선언문을 보면 게임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있지만, 이를 게임 자체가 아닌 사회적, 환경적 문제라고 정의했다. 자세한 의견을 듣고 싶다.

박재동 게임규제개혁공대위원장: 작가의 시점을 이야기하겠다. 작가는 끊임없이 유저를 매혹시키고 중독시켜야 하는 존재다. 한 번 작품을 보면 바로 다음 편을 보고 싶어지는 매력을 갖추는 것이 모든 작가의 꿈이다. 나는 만화가지만 다른 문화콘텐츠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혹시 봐도 그만, 보지 않아도 그만인 드라마를 보고 싶은가? 아니면 역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다고 이를 규제할 것인가?

결국 일상적으로 쓰이는 중독이란 ‘매혹’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이 매혹은 수용자들이 선택할 문제다. 밤 늦게 재미있는 드라마를 볼까, 아니면 일찍 자서 내일 편안한 하루를 보낼까. 이것을 과연 국가가 정해줘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스스로와의 싸움이 콘텐츠의 매력이고 인생의 매력이다. 그리고 이는 나아가 그 사회의 문화적 역량이다.

물론 콘텐츠 자체가 사람을 지나치게 위험에 빠트리면 이는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콘텐츠 자체에 해악성이 내포될 때의 이야기다. 게임이나 만화, 드라마 자체에 해악성이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놀게’ 하는 이런 것을 규제하고 국민을 일 중독, 공부 중독으로 만들어야 하나? 문화에 매혹된다는 것은 사람의 영혼이 치유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문화인 게임을 규제하는 것은 학생들의 안식처를 빼앗아 가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는 어떻게 아이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 개발자들 사이에서 ‘나이키와 닌텐도는 경쟁관계’라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결국 콘텐츠의 경쟁력이란 어떻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점유하느냐다.

‘게임 중독’이란 개념은 게임이란 콘텐츠가 매혹적이어서 여기에 몰입하는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정말 게임에만 사람들이 시간을 쏟을까? 가까이는 드라마가 있고, 시선을 달리하면 일이 있고 공부가 있다. 나는 중독법이 생산적이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한 탄압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국가는 국민을 산업역군으로만 다루지 말고, 쉴 줄도 아는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 공대위를 통해 게임 뿐만 아니라 문화 콘텐츠 산업 전반에 대한 규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


많은 학부모들이 게임으로 인해 아이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문제를 겪었던 사람으로서, 다른 학부모들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다면?

권금상 문화연대 집행위원: 근본적인 문제는 현상을 바라보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부모들이 자식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며 걱정하고, 그 시간에 차라리 공부나 했으면 하는 생각에 공감한다. 실제로 나부터 그랬다.

많은 부모들은 공부 이외의 것을 일탈로 규정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과연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올바로 미디어를 소비하는 법을 가르친 적이 있는지, 아니면 게임을 하는 아이를 이해하려 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왜 아이는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지 말고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이어진다.

나는 오히려 우리 부모들이 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없는지, 왜 학원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독법과 함께 논의되는 청소년 보호의 주된 논지는 결국 수면권과 학습권이다. 하지만 학습권은 공교육이 정상화되면 해결되고, 수면권은 아이들이 일찍 귀가하고 밖에서 뛰놀면 해결되는 문제다. 학부모들이 왜 아이가 공부하지 않는지에 대한 근시안적은 고민 대신, 왜 아이가 밤 늦게까지 공부해야만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


권금상 문화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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