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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화이트데이, 개발자 로망을 여한없이 담았다”

NDC 2012: 화이트데이 이은석 디렉터 포스트모템

현남일(깨쓰통) 2012-04-25 18:22:01

손노리가 개발하고 위자드소프트가 유통을 맡아 지난 2001년에 발매된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이하 화이트데이)는 국산 PC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3D 호러게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학교라는 친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동양적인 공포를 살렸고, ‘수위’라는 쓰러뜨릴 수 없는 적의 존재로 인한 심리적 압박에 이르기까지. 지금 봐도 참신하고 재미있는 요소가 많은 이 게임은 많은 유저들 사이에서 아직까지도 고전명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화이트데이>의 개발에 디렉터로 참여해 프로젝트를 주도한 핵심 멤버 중 한 명인 넥슨 신규개발3본부 이은석 팀장이 오랜만에 당시의 개발 비화를 공개했다. 디스이즈게임은 25일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 진행된 ‘화이트데이 포스트모템’ 강연을 정리했다. /(머리귀신 무서워서 끝까지 노멀 난이도 이상으로 엔딩 못 본)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넥슨 이은석 팀장. <화이트데이>에는 디렉터로 개발에 참여했다.

 

 

■ 프로젝트의 시작 - <바이오 하자드> 부럽지 않은 호러 게임을 만들자!

 

<화이트데이>는 지난 20세기 말, IMF 시절에 손노리가 자본금 수천만 원으로 독립해서 창업한 이후 시작된 프로젝트다. 당시 손노리는 적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3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했고, 그중에 <화이트데이> 프로젝트에는 파트타임 개발자를 포함해 13명이 투입됐다. 전체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늘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꿈이 있던 분위기였다.

 

당시 손노리의 목표는 <바이오 하자드>가 부럽지 않은 호러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이은석 팀장 개인적으로도 96~97년에 완성도와 평가 모두 좋지 못했던 호러게임을 개발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화이트데이>에서 만회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평가가 좋지 못했다는 그 게임의 이름은 강연에서 밝히지 않았다).

 

<화이트데이>가 개발되던 시기에 한국 게임시장은 지금의 1/100도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목표는 <바이오 하자드>처럼 부끄럽지 않는 호러 게임을 만드는 것!

 

개발팀의 초기 목표는 개발을 시작하고 10개월 안에 완성 버전을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는 풀 3D 게임 자체가 거의 없던 시절. 그런 만큼 이는 허황된 꿈으로만 남았고, 실제로는 기초 기술을 개발하는 데만 1년 가까운 시간이 들어갔다.

 

실제로 학교를 배경으로 몇몇 캐릭터가 나와서 움직이기만 하는 기술 데모가 완성되는 데만 8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만드는 데 오래걸렸어도 이런 기술 데모는 당시 개발진들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좋은 사례로 남았다.

 

기술 데모 자체가 개발진들 사이에서는 완성된 게임의 비전을 보여주었다고 할까? 기술적으로 풀 3D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게임이 추구하고자 하는 분위기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또 수많은 아이디어를 개발진들에게 제공해주었다. 일례로 캐릭터가 책상 위에 서 있는 장면은 그 실체를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진들에게는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어준 식이다.

 

 <화이트데이>는 국산 풀 3D 게임이 거의 없던 시절 야심차게 도전한 프로젝트였다.


게임의 무대로 학교를 선택한 것은 소재 그 자체의 매력과 함께 당시 <여고괴담> 등 학교를 배경으로 한 호러영화의 성공이 많이 작용했다.


기초 개발부터 시작해 8개월 만에 기술데모를 완성했다 참고로 이 기술 데모는 당시 국내 언론 등을 통해 마치 완성된 게임인양 공개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존재한다. 

 

기술 데모는 아주 간단한 내용이었지만, 개발자들에게 여러 가지 영감을 주었다. 그저 캐릭터가 서 있는 장면에서도 무서움을 주었고, 버그조차 공포감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 개발 2년차 돌입 - 게임의 틀을 잡다

 

기반 기술이 완성됐다고는 해도 프로젝트 자체의 진도는 부진한 편이었다. 특히 기획은 개발 1주년을 마무리하고 2년차에 돌입할 때까지도 제대로 결정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기초적인 조작 시스템, 게임 시스템 시나리오마저 확실하게 확정된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이러던 시기에 이은석 팀장은 디렉터에 임명돼 본격적으로 게임의 기획과 콘텐츠를 다듬기 시작했다. 사실상 개발 후반부라고 할 수 있었던 이 시기에 그는 상위 프로듀서(엔트리브소프트의 서관희 이사)와 함께 짝을 이루어 팀을 이끌게 됐다.

 

디렉터에 임명된 후 이은석 팀장은 의욕에 차서 콘텐츠를 다듬기 시작했다.

 

이은석 팀장은 먼저 초기 콘셉트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학교 호러물이라는 기본 소재와 ‘1인칭 시점’, 그리고 ‘주인공이 적을 공격할 수 없다’는 규칙은 그대로 가면서, 그때까지는 붕 떠있던 여러 기획요소들을 적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듬기로 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콘솔게임과는 다른 방향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바이오 하자드>가 워낙 큰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호러게임들이 그 게임을 따라서 만드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바이오 하자드>는 콘솔게임이기 때문에 패드에 최적화된 조작 시스템과 콘텐츠로 구성돼 있었다. 이런 이유로 <화이트데이>가 따라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적절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화이트데이>는 철저하게 마우스 중심으로 조작 시스템과 인터페이스를 꾸몄고, 카메라 조작도 <바이오 하자드>처럼 고정된 방식이 아닌 1인칭 방식을 선택했다.

 

<바이오 하자드> 같은 콘솔게임을 따라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어드벤처 게임이지만 FPS 카메라 시점을 따르고, 마우스만 조작 방식을 만들었다.

 

초창기만 해도 굉장히 많은 캐릭터가 기획됐지만, 이은석 팀장이 디렉터를 맡으면서 대폭 정리해서(주로 남자 캐릭터) 퀄리티를 다듬기로 했다.

 

기존에는 붕 떠 있던 시나리오도 보다 구체적으로 재구성하고, 팀원들의 손이 닿는 곳에 문서를 공개해 모두가 내용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 화이트데이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나?

 

진짜 무서운 게임을 만들고 싶다.이은석 팀장은 <화이트데이>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이나 <주온> 같은 일본의 호러 영화, 그리고 이토 준지의 호러 만화를 꼽았다.

 

이들 호러물은 고어한 장면을 보여줘서 유저들에게 공포를 전달하지 않으며, 분위기 그 자체만으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는 특징이 있다. 그와 같은 공포를 <화이트데이>에서도 구현하고 싶었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장소에도 특정 영화가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토 준지의 호러 만화들도 <화이트데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위에 거대한 얼굴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와 유사한 형태로 <화이트데이>에도 등장했다. 

 

현실체험이 무엇보다 큰 영감을 주었다. <화이트데이>를 개발하는 데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다름 아닌 ‘현실체험’이었다. 당시 개발팀은 현장답사라는 명목으로 한밤의 고등학교에 잠입하기도 했는데, 그 때의 경험이 게임을 만드는 데 무엇보다 큰 영향을 주었다.

 

게임이라는 문화 콘텐츠는 어떤 의미로 보면 결국 현실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모사하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자가 현실 그 자체를 경험하고 그것을 게임에 반영할 수 있으면 무엇보다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이은석 팀장은 강조했다.

 

<화이트데이> 개발을 위해 실제 밤중의 학교에 잠입해 취재하기도 했다.

 


음악 ‘미궁 - <화이트데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황병기의 ‘미궁이다. 이은석 팀장은 대학교 시절에 이 음악을 처음으로 들었는데, 당시에 들었던 충격이 게임을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이화여대 황병기 교수를 찾아 허락을 받고 ‘미궁’을 <화이트데이>에 사용했다.

 

그 결과는 대성공. 이은석 팀장은 “음악을 처음 개발진에게 들려줬을 때 다들 기분 나빠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서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궁은 <화이트데이> 출시 후 인터넷에서 온갖 괴담이 나돌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 게임 시스템과 레벨 디자인

 

<에반게리온>에서 따온 캐릭터 구성 - 이은석 팀장이 디렉터에 임명된 후 개발팀은 본격적으로 <화이트데이>의 시나리오와 캐릭터 설정을 다듬었다. 주인공은 ‘새로 학교에 온 전학생이라는 설정으로 확정했는데, 이는 무대가 되는 학교에 대해 잘 모르는 플레이어와 주인공 사이의 자기동일시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주변인물들은 게임의 현실적인 구현을 위해 핵심인물들만 남겨놓고 대거 삭제했다. 그렇게 해서 주인공 외에 조연으로는 3명의 여학생들만 남았는데, 이 여성 3명은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속 주인공들의 성격을 모티브로 삼아 설정됐다. 실제로 음성 녹음 때도 성우들에게 <에반게리온>의 해당 장면을 보여주고 연기를 주문했을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스토리 플로우 차트를 구성해 개발진이 공유했다.

 

시나리오를 짤 때는 영화보다는 TV 청소년 드라마의 납량 특집 같은 느낌으로 구성했다.

 

 

‘실제 학교 도면으로 레벨을 디자인하다.’ - <화이트데이>의 무대가 되는 학교는 실제로 존재하는 학교의 건축도면을 참고해서 모델링했다. 물론 건축도면은 ‘게임을 위한 레벨 디자인’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좋은 작업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실제 학교 건축물다운 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유저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 현실적으로 별도의 레벨 디자인이나 배경원화를 만들 여력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화이트데이>는 마지막까지 학교의 배경원화 없이 게임이 만들어지게 된다.

 

 실제 게임 개발에 사용된 건축도면.

 

참고로 <화이트데이>는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로딩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처음 게임에 접속하면 일정한 시간까지 로딩을 안 하는 구조였는데, 첫 무대인 본관이 신관 같은 다른 무대에 비해 지나치게 넓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본관을 2개의 구역으로 나눠서 로딩하도록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2개의 구역은 어떻게 나누면 될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층별로 나누면 되지만, 이렇게 층 단위로 나누면 모든 층이 똑같이 보인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개발팀은 층이 아닌, 아예 본관 가운데를 기점으로 구역을 2개로 분할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층으로 로딩 구역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본관 그 자체를 2개로 나누기로 한다.

 

‘서양식 자유도와 동양식 일방향성 진행을 합치다.’ - 일반적으로 서양에서 개발된 게임은 자유도가 높은 대신 드라마성이 떨어지고, 반대로 동양에서 개발된 게임은 드라마성은 강한데 자유도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많다.

 

이은석 팀장은 <화이트데이>에서 두 가지 개성을 하나로 합치는 시도를 했다. 그 일방향성과 자유도를 합치는 장치로 준비한 것이 바로 절대 쓰러뜨릴 수 없는 ‘수위’의 존재다.

 

수위는 항상 유저의 의도 및 게임 진행에 관계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게임을 할 때마다 다른 상황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화이트데이>는 진행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벤트가 나오고, 이벤트가 진행될 때는 수위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벤트에서 얻을 수 있는 ‘드라마의 재미’와 수위와의 밀고 당기기에서 얻을 수 있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재미’를 동시에 추구한 셈이다.

 

수위는 강제 이벤트 중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식의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수위는 고전게임 <미드나잇 브라더스>에서 영감을 얻은 존재였다.
 
 

■ 게임의 출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게임 완성에 대한 사명감으로 <화이트데이>는 2001년 9월 출시됐다. 하지만 그 과정은 여러 가지 의미로 순탄치 않았다. 당초 2001년 여름 출시 예정이었지만 치명적인 버그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계속 일정이 미뤄졌다. 이는 팀의 사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출시 직전 개발팀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이은석 팀장은 당시에 디렉터로서 팀을 지휘하며, 자신만큼의 헌신을 팀원에게 강요했지만 많은 부작용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래도 출시 이후 게이머들은 <화이트데이>에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고, 좋은 평가도 받으며 기억에 남는 게임이 됐다

 

이은석 팀장은 “<화이트데이> 프로젝트는 여러모로 도전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며, 당시 한국 게임의 한계를 넘고 싶었던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야말로 개발자와 개발사의 로망을 여한 없이 담은 작품이었다”고 회고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2001년 9월 드디어 출시. 당시 이은석 팀장은 프랑스 파리의 한 PC방에서 <화이트데이>의 반응을 보고 감격했다고 한다.

 

<화이트데이>는 정품 구매 유저들을 위한 멀티플레이 모드인 <오!재미>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프로젝트다.

 


<화이트데이>는 지금도 게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번외 이야기>

 

<화이트데이>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머리귀신은 인터넷에서 본 심령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사례다. 이은석 팀장은 기술 데모 개발 중 이 머리귀신을 남들 몰래 넣어봤는데, 프로듀서(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서관희 엔트리브소프트 이사로 추정)가 비명과 함께 의자에서 쓰러지는 것을 보고 이후 진짜로 게임에 넣을 결심을 하게 된다.


머리귀신의 최초 모티브는 바로 <버블보블>의 유령 몬스터다. 유령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얼굴귀신은 플레이어가 진행을 안 하고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등장해서 압박한다.


<화이트데이>는 개발이 끝난 후 최종 마스터본의 용량이 생각보다(?) 적었다. 그래서 개발팀은 조금이라도 불법복제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더미 영상 파일을 넣어 용량을 늘렸다. 이는 이후 게임 파일을 분해해본 유저들에 의해 그 실체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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