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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코로나19] 학카르는 알고있다? 와우 오염된 피 사건으로 바라본 코로나19

현재 상황과 비슷한 면 많아 ... 당시 감염 전문가 평가 "감염 연구의 새로운 방향될 것"

송주상(무균) 2020-02-28 18:22:24

2월 28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8만 명이 넘었다.

 

코로나19가 중국 우한 지역에서 작년 12월부터 발병했고, 올해 1월부터 중국을 벗어나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1월 31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중국 외 지역 기준으로는 한 달 만에 만 명 가까운 확진자가 발생했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셈이다. 

 

강한 전염성을 가진 코로나19와 비슷한 사건이 수년 전 한 게임에서 발생했다. 많은 게이머가 알고 있는 인기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오염된 피' 사건이다. 

 

 

2005년 WOW 북미서버를 강타한 '오염된 피 사건'

 

 ▲ 당시 플레이어가 남긴 오염된 피 사건 영상. 시간이 지날 수록 쌓이는 시체가 충격적이다

 

오염된 피 사건은 2005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미 지역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신규 레이드 '줄구룹'을 업데이트했다. 줄구룹 최종 보스 '학카르'의 능력 중 하나는 '오염된 피'라는 디버프를 플레이어에게 걸고, 플레이어 주위에 오염된 피를 전염시키는 것이었다. 디버프는 플레이어를 약하게 만드는 일종의 게임 속 '병'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보스와의 전투가 종료되면서 해당 디버프는 사라져야 한다. 플레이어에게 걸린 디버프는 실제로 사라졌다. 하지만 맹점이 있었다. 전투에 함께 참여한 '펫'에게 걸린 디버프는 남았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많은 대도시에 소환된 감염된 펫은 주위 플레이어를 오염된 피에 감염시키기 시작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서비스하는 블리자드는 GM(운영자)을 동원하여 대도시 출입을 통제하고 일부 지역에 검역소를 만드는 등 오염된 피 확산을 막으려 했지만, GM까지 감염됐다. 결국 사건 발생 5일 만에, 블리자드는 서버를 리셋한다. 문제가 된 디버프도 짧은 시간 지속하도록 수정하며, 오염된 피 사건은 막을 내렸다.

많은 이들은 단순하게 게임 내 이슈로 치부했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았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를 비롯해 많은 감염학 전문가가 오염된 피 사건을 눈여겨봤다. 니나 H 페퍼먼(Nina H. Fefferman) 박사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 학카르는 원시신 중 하나로, 제물의 피를 원한다.

 

감염원부터 감염 경로, 그리고 무증상 감염자까지 닮았다

 

페퍼먼 박사는 오염된 피 사건에 대해서 "감염 연구의 새로운 방향이다"이라고 평가했다. 현실 세계와 비교할 만큼 게임에서 일어난 사건이 가지고 있는 유사성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그녀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플레이어에게 역할이 있는 MMORPG이기에 현실 세계와 가까운 면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오염된 피 사건은 코로나19 사태와 유사한 면이 많다. 페퍼만 박사가 오염된 피 사건이 단순 헤프닝을 넘어,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가 불가능했던 이유 역시 현실에 대입할 수 있다. 그녀는 다음 3가지를 오염된 피가 퍼지게 된 이유로 꼽았다. 

 

① 장거리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마법사의 순간 이동, 귀환석 등)

② 플레이어와 동물 사이 전염이 된다. (사냥꾼과 펫 사이의 전염)

③ 무증상 보균자가 있다. (NPC의 존재)

 

코로나19는 중국 우한 지역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졌다. 28일 현재, 중국에서 시작한 코로나19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유럽은 물론, 지구 정 반대편에 위치한 브라질까지 퍼져나갔다. 중국의 한 지방에서 시작한 병이 퍼지게 된 이유는 단 하나 '교통'의 발전에 있다. 

 

특히, 육로가 고립된 한국 입장에서는 항공편이 거의 유일한 감염 경로다. 이 항공편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마법사 '순간 이동'나 귀환석 등에 해당한다. 만약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이 없다면, 이동 중에 사냥꾼의 펫이 사망하며 디버프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또 페퍼먼 박사는 오염된 피 사건이 사냥꾼의 펫에서 시작된 것을 지적하며, "사람들은 사람으로부터 병이 전염된다고 생각한다. 동물에 대해서는 간과하곤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역시 동물에서 시작했다.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박쥐나 천산갑과 접촉한 사람들로부터 코로나19가 발병했다고 알려졌다. 

 

현재 사람 위주로 방역하는 코로나19에 대해서 동물에 의한 감염도 주의해야 한다는 점도 시사한다. 예를 들어, 특정 동물에게는 코로나19가 무증상일 수도 있다. 영국 동물학회 앤드루 커닝햄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만약 종간 장벽을 넘은 사례가 한 번 일어났다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천산갑은 박쥐와 함께 코로나19 발병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염된 피 사건에서는 코로나19가 까다로운 이유인 무증상 감염자도 확인할 수 있다. 오염된 피가 플레이어에 가하는 데미지는 강한 편이었다. 약한 플레이어는 빠르게 사망했고, 강한 플레이어도 결국엔 사망했다. 모두가 사망한다면 감염이 계속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죽지 않는 NPC가 되살아난 플레이어에게 오염된 피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페퍼먼 박사는 이 점을 주목했다. 디버프에 걸려도 죽지 않는 NPC는 일종의 무증상 감염자라며, 페퍼먼 박사는 "(NPC 때문에) 게임 내에서 감염이 끊기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는 홀로 활동하지 못한다. 오히려 바이러스의 숙주인 감염자 어느 정도 건강해야만 다른 사람에게 전염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잠복기는 최대 2주라고 알려졌다. 발열이나 기침이 없어 감염 여부를 알지 못하는 무증상 감염자가 도시를 활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코로나19는 오염된 피처럼 퍼지게 된다.

 

▲ 현미경으로 본 코로나 바이러스

 

 

사이버 공간이 아닌 현실에선 '개인의 행동'이 중요하다

 

오염된 피 사건은 결국 서버를 재시작하며 일단락됐다. 이어서 블리자드는 단순 버그라며 사냥꾼의 펫에 걸린 디버프도 전투가 종료되면 사라지도록 조정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다. 페퍼먼 박사는 블리자드가 검역소를 만들어 사이버 공간에서 방역했지만 몇몇 플레이어의 돌출행동으로 실패한 점을 지적했다. 일부 플레이어가 감염된 상태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이기도 하고, 일부러 감염시키며 블리자드의 시도는 실패했다.

 

물론, 일부 플레이어는 체력이 낮은 플레이어를 안전한 지역으로 유도하고, 디버프로 죽어가는 플레이어의 체력을 채워주기도 했다. 그들의 선행과 블리자드의 방역이 오염된 피 전염을 막기에는 일부 플레이어의 돌출 행동이 치명적이었다. 

 

이런 점을 들어, 그녀는 "전염성이 강한 병을 현실에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많은 플레이어가 노력했지만, 게임 내 시스템만으로는 플레이어들은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 한동안 코로나19가 잠잠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일까? 또는 개인은 손 놓고 백신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오염된 피 사건의 본질은 발생한 전염병의 해결책이 아닌, 전염병이 퍼지기 쉬운 위험 요소와 전염병을 대하는 대중에 있다. 2011년 GDC에서 페퍼먼 박사는 오염된 피 사건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게임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전염병을 해결하기 힘든 이유를 토로했다.

"전염병에 대한 인간의 행동은 가장 뛰어난 수학과 과학으로 예측할 수 없다. 사람은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행동은 정말 어렵다."

그녀는 전염병이 창궐한 세상에서 개인의 행동이, 그리고 선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셈이다. 오염된 피 사건이 현재 코로나19 사태에 시사하는 바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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