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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게임돋보기] 게임 업계의 남녀 평등

2008-09-14 15:40:13

얼마전 한 세미나에서 강연을 할 때 청중의 남녀 비율을 주의깊게 본 적이 있다. 게임계에서는 대체로 개발자라고 한다면 의례 남성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돌아보면, 청중들의 성비가 어땠는지는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여성 개발자가 10% 내외인 지금의 상황이 10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설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남성이 여성보다 게임 개발에 우수하기 때문일까하는 가정에서 생각을 해보자.

 

그런데 이는 개인적으로 학교에서 지난 4~5년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자질 등을 봤던 걸 생각해볼 때,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게임을 만드는데 남성이 여성보다 특별히 뛰어나다는 점을 느낄 수 없었기에 (통계적 근거가 부족하긴 하지만) 납득할만한 설명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남성이 여성보다 먼저 컴퓨터 관련 산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일까. 이건 부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도대체 왜 고등학교를 이과와 문과, 예체능으로 나누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남성은 전통적으로 이과를 선호하고 여성은 문과를 우선 선택하는 걸 권장하는 사회인 것을 생각하면 이공계의 진학은 당연히 남성쪽으로 편향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공계의 대표적인 전기·전자·기계 과목에 대한 선호는 그렇다고 해도, 공과대학 안의 여성 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토양에서 컴퓨터가 '자연스레' 공과 계열로 편입되면서 남성 편향이 덩달아 발전했다는 걸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게임 업계의 남성 편향이 한국만의 문제인가? 그건 아니라는데 또 다른 문제가 숨어 있을듯 하다. 아마도 유교적인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여성이 원래 기계에 약하다고 하기도 하지만 이건 여성들이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를 (마치 혈액형처럼) 우생학에 기반한 성별의 특징인 것처럼 말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사회의 어떤 일부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특출난 재능을 보여 주도적인 산업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비율이 좀 더 높은 (그래봐야 50~60%인, 그것도 과거 섬유 산업의 직공 같은 단순 작업만 필요한)' 직종은 있지만 여성이 주도하는 직종이 없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는 데서 근거가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한 이후 지난 5년간 외부에서 신입 개발자의 추천 요청이 올 때 마다, 우선 여자 졸업생을 고려하고 취업을 시키고는 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 '성 평등의 이유'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 산업이 점차 커지게 되고, 전체 인구의 많은 수가 게이머가 되었고, 게이머 안에서 여성의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팀 안에서 여성의 비율은 여전히 10% 내외에 그칠 뿐이다. 더군다나 여성의 비율이 많은 팀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비주얼이나 아트 관련된 파트에 한정되어있을 뿐 기획이나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지 않다는 걸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게임 산업에서 대부분의 게임들은 남성의 취향이 주로 반영되어 있고, 남성의 시각에서 보는 세계로 만들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여기서 굳이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언제나 게임 속의 여성은 글래머러스하고 벌거벗다시피한 의상을 입고 등장하며, 이들이 차지하는 게임 속 지위는 대부분 주인공도 아닌 주인공의 여자친구 이거나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정도, 혹은 주인공과 사랑을 나누는 역할에 그친다. 라라 크로포드가 여성들을 위한 캐릭터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힘들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 사이에 나온 게임 중 여성 개발자만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나 여성 게이머를 위한 게임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여중고생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코코룩> 정도가 대표적인 게임이고 이 외에 몇 개의 게임들 외에는 시도된 적도 시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다. 오히려 여성들을 꼬여내어 그 여성들에게 아이템을 (현금으로 사서) 갖다 바치도록 만드는 게임들만 수두룩할 뿐이다.

 

일반론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평등' 혹은 '여성의 지위 향상' 이라는 말은 사실상, 지난 수십 세기 동안 남성이 차지했던 자리를 여성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남성이 늘상 차지하던 자리를 여성이 차고 들어오는 것은 남성들에게 경쟁자의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언제나 반대되어 왔다. 심지어 이런 운동을 하는 단체들은 특히 군대와 엮여서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전적으로 남성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남성 위주의 게임 시장에 여성을 위한 게임들이 늘어나는 것은 게임 시장이 성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실제로 게임 시장의 확대는 이렇게 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 게이머와 개발자의 증가는 새로운 시장을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는 관점으로 보자면, 남성 개발자들이 이를 반대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여성 개발자의 참여를 늘리는 데는 기존 개발자들의 많은 협조가 필요하다. 일단 앞뒤 없이 무턱대고 반대하는 것을 잠깐 미루고 어떤 영향이 있을지에 대해서 더욱 다양한 시각을 봐야 한다. 그리고 남성들이 만들 수 없는 여성들의 취향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해야하고, 여성들이 자리를 뺏는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여기에서 '협조'는 전적으로 필요하다. 한쪽이 이미 우월적인 지위를 가진 상황에 새로 진입을 한다는 것은 어떤 '협조' 없이는 사실상 공평한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공평한 시장 경쟁이라고 부르는 FTA(자유무역협정)와 마찬가지인데, 불균형한 지위를 가진 두 세력이 '공평하게' 경쟁한다면, 이미 더 많은 힘을 가진 쪽에게 훨씬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즉, '평등'은 산업 안에서 공평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유리한 쪽이 계속 유리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시장에서 삼성과 인지도가 낮은 중소기업이 경쟁을 한다면 어느 쪽이 이길 지 상상해보라.

 

어느 나라, 어떤 산업이든 역사를 들추어 보면 언제나 보호를 통해서 성장해왔다. 한국 영화 산업이 지금처럼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도 그동안의 스크린쿼터를 통해서였고 한국이 박정희 정권을 지나며 지금처럼 '먹고 살만 하게' 된 것도 섬유, 반도체, 자동차 등의 보호 무역을 통해서였으며, 한국의 보호무역이 우리 어린 시절 양담배를 피우던 어른들을 애써 벌어들인 외화를 낭비하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걸 되새기면 게임 업계에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켜 평등하게 만든다는 것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협조와 노력, 그리고 보호가 필요한지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니, 부디 개발자들께 부탁드리건대, 게임 개발팀의 '꽃'을 위해서 여성 개발자를 뽑지 말아달라는 뜻이다. 그들은 나름의 시간을 들여 남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노력을 해서 교육기관을 졸업했고 여러분의 회사에 실력을 펼치겠다는 꿈을 갖고 도전장(이력서)을 내밀었다. 그들에게 정당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하고, 부족하다면 다른 남성 신입 개발자를 뽑아 가르치며 육성하는 것처럼 똑같이 가르치며 육성을 해주기를 바란다.

 

단지 사무실의 꽃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미스코리아 출신의 비서 경력자를 사무 보조로 뽑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 본 칼럼은 디스이즈게임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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