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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꼼수가 화를 불렀다.

안정빈(한낮) 2016-07-04 19:42:41

자율규제가 맞다. 아니 자율규제여야만 했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가 결국 국회의 철퇴 앞에 놓였다. 여당과 야당에서 한 목소리로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공개를 담은 개정안을 내놓았고, 여야가 합세한 이상 법안이 통과되는 건 어렵지 않을 걸로 예상된다.

 

그리고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을 자율규제로 남길 기회를 놓쳤다.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규제로 가득한 게임업계에 여야가 힘을 합쳐서 또 규제라니. 하지만 이번만은 게임업계의 편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자율규제를 과연 '규제'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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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의 자율규제를 시작했다.

 

한국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이하 K-IDEA)는 자율규제를 위한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협회 회원사들은 가이드라인을 따랐다. 문제는 이 가이드라인이다. 대략 중요한 내용만 뽑으면 아래와 같다. 

 

 

-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은 확률공개 대상이 아니다.

- 확률은 홈페이지 및 게시판, 게임 내 상점 등 원하는 장소에 공개할 수 있다.

- 같은 등급의 아이템은 확률이 다르더라도 하나로 묶어서 확률을 표시할 수 있다.

- S등급(0.1% ~ 0.9%)처럼 등급별 최소 최대값을 표시해도 된다.

- S등급(1% 미만)처럼 구간별로 확률을 표시해도 된다.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수두룩한 확률공개의 결과는 뻔했다.

 

'등급 하나로 몇 십 개의 아이템을 퉁 친' 확률은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고, 그나마도 많은 개발사가 형식적으로 공식카페의 공지사항 한 켠에 (봐도 도움조차 되지 않는) 정보를 올려놨다. 제대로 된 정보가 담긴 게임이나 정보를 눈에 띄는 곳에 표시해 주는 게임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관련기사] 자율규제 특집: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1주년, 바뀐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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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저들은 이를 두고 자율규제 '꼼수'라고 부르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과 개발사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더 무너졌다. 

 

   

사실 K-IDEA의 가이드라인은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직후부터 지적을 받았다. 자율규제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난 2015년 8월 K-IDEA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토론회만 해도 가장 많은 개발사가 택했던 구간별 아이템 획득확률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성인등급게임도 모두 아이템 획득확률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아예 모든 기자가 찬성했다. 그 자리에서는 K-IDEA의 김성곤 사무국장도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렇든 말든 K-IDEA의 가이드라인은 바뀌지 않았고, 그렇든 말든 약속했던 모니터링은 3개월 이상 밀렸으며 그렇든 말든 개발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자율규제의 도입을 지지부진하게 미뤄왔다.

 

그리고 K-IDEA는 그렇든 말든 매달 자율규제가 90% 가까이 지켜지고 있다는 자화자찬 식의 월간보고서만을 내놓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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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썼지만 필자는 자율규제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잘 운영될 수만 있다면) 게임업계가 스스로 자정이 가능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했다. 

 

모든 것을 법으로 정하는 건 위험한 생각이다. 특히 게임처럼 빠르게 변하는 콘텐츠에서는 더 그렇다. 예전에는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등급분류도 모바일게임에서, 인디게임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발목을 잡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그래서 이왕이면 법보다는 자율규제가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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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게임업계는 자율규제 대신 꼼수를 보여줬고, 이는 결국 '화'로 돌아왔다. 

 

당장 확률형 아이템의 자율규제만이 문제가 아니다. 게임업계의 대부분이 소속된 단체에서 자율규제를 진행 중인 사안에 국회가 나섰다는 건 게임업계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앞으로 셧다운이나 중독법 등 다양한 규제가 찾아오더라도 게임업계에서는 더 이상 자율규제 카드를 꺼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꺼내더라도 이번 확률형 아이템의 자율규제는 계속 발목을 잡을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이 차지하는 중요성이나, 게임업계의 입장은 십분 이해한다. 대화나 토론보다는 다짜고짜 규제부터 들이미는 국회에 대한 아쉬움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해외업체와의 역차별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만으로 툴툴대기에는 (아마도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이번 확률형 아이템 자유규제가 남길 상처는 너무나 크다. 최소한 의지를 갖고 할 거면 제대로 했어야만 했다. 꼼수 하나에 잃은 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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