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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넥슨과 엔씨, 주주제안서의 맥락은

임상훈(시몬) 2015-02-07 11:01:02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넥슨은 지난 2월 3일 엔씨소프트(이하 엔씨)에 발송한 '주주 제안서'를 6일(금) 디스이즈게임을 비롯한 매체에 전송했습니다. ▲논의 중인 사안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점 그 안에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았죠. 10여 년 게임을 취재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주주 제안서 전문[여기]과 넥슨과 엔씨의 입장[저기]은 여기저기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1월 29일 허접칼럼(넥슨과 엔씨,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이 이슈의 배경과 전망에 대해 썼습니다. 결국 넥슨의 엔씨소프트 지분을 김택진 대표가 살 것으로 내다봤죠.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주주 제안서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이사 선임 안건 주주총회 의결권 위임을 위한 주주명부 열람 요청 같은 적극적인 경영참여 의지와 함께 자사주 매입과 소각 비영업용 부동산 처분 김택진 대표의 특수관계인 임원에 대한 보수 내역 공개 등 직접적인 요구사항이 담겨져 있었죠.

 

언뜻 봐도 제가 쓴 칼럼의 전망과 배치되는 내용입니다. 언론사들은 '넥슨 VS 엔씨, 결국 전면전'이라는 제목을 뽑아내고 있는 상황이고요. 저는 여전히 다른 생각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먼저 넥슨의 요청사항부터 봐보죠.

 


 

주주 제안서의 주요 내용은?


주주 제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넥슨 몫의 이사선임 안건' 제안과 '주주명부의 열람과 등사' 요청이었습니다.

 

넥슨은 김택진 대표이사의 재선임을 제외하고, 후임이나 추가 이사를 선임할 경우, 넥슨이 그 몫을 추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3월 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는 김택진 대표뿐입니다. 엔씨소프트가 원치 않으면 후임이나 추가 이사를 선임할 필요가 없습니다. 

 

협의를 통해 이사회 참가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단, 이사의 역할에 대한 합의가 먼저 되야겠죠. 그렇지 않으면 이사 간의 불협화음이나 허수아비 논란이 계속 나올 테니까요.

 

넥슨은 주주명부의 열람과 등사(복사)를 요청했습니다. 주주가 가진 권리입니다. 넥슨은 눈에 띄는 '구체적인' 이유를 달았습니다. '주주총회 의안과 관련하여 다른 주주들을 상대로 의결권 위임을 요청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 그렇다는 거죠. 

 

직접적으로 주주총회에서 표대결까지 갈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이상은 주주총회와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넥슨은 두 번째로 기업/주주 가치 제고를 위한 6가지 요청사항을 덧붙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바랍니다.

 

넥슨의 요청사항은 대부분 현재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전자투표제의 도입 ​현재의 자사주(8.9%) 소각 자사주 추가 매입과 소각 배당율 상향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등이 그렇죠. 

 

자사주를 소각하면, 발행수식 수가 줄어들어 1주당 가치가 높아집니다. 현재 보유 중인 8.9%를 소각하면, 산술적으로 주가는 9.8% 가량 오릅니다. 부동산 매각 후 그 자금 등으로 자사주를 더 매입해 소각하면 주당 가치는 더 오르겠죠. 거기에 더 높은 배당액까지 더해지면, 현재 주주에게는 꽤 매력적인 제안입니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일반적으로 주주 이익에 가장 부합되는 정책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이는 회사의 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한 환경에서 특히 그렇죠. 급변하는 환경에 있는 IT 기업의 경우, 배당이 없거나 낮습니다. 회사에 더 투자해야 하니까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100조 이상 현금성 자산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무배당 정책'을 지켰습니다.

 

그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보다 신제품 개발과 M&A 등을 선호했습니다. 투자를 통해 회사 가치를 올리는 게 회사와 임직원, 주주 모두에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죠. 잡스의 고집은 애플이 세계 최대 IT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엔씨는 국내 상장기업 중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이 가장 높은 업체 중 하나입니다. 게임 쪽에서는 가장 높죠. 2010년 24.6%, 2011년 27.3%, 2012년 33.7%​로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장기간, 많은 인원을 투입해 대형 게임을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넥슨의 제안은 이런 엔씨의 습성과 배치됩니다. 받아들이기 어렵겠죠.

 

그럼에도, 넥슨의 제안은 상당수 엔씨 주주들에게 반가운 소식입니다. 단기 이익이 중요한 외국인 주주에게는 특히 그렇겠죠. 의결권 위임 대결을 위한 포석, 또는 그 포석을 보여주는 제스처로 여겨집니다. 

 

넥슨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김택진 대표를 직접 압박했습니다. 김 대표의 특수관계인으로 비등기 임원으로 재직 중인 이의 보수와 산정 기준을 공개하라는 요청이 그랬죠. 김 대표의 동생인 김택헌 전무와 아내인 윤송이 사장을 꼭 집어 거론한 거니까요. 

 


글로벌최고전략책임자 및 엔씨웨스트 대표​를 겸하고 있는 윤송이 사장. 

  

 

주주 제안서가 공개된 맥락은?


문서의 공개가 이례적인 만큼, 최근 며칠 간 두 회사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맥락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제가 알기로, 1월 27일 이후 며칠 간 두 회사 경영진 사이의 대화는 없었습니다. 대표자의 신호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는 협상이었으니까요. 

 

허접칼럼(요기)이 나간 이후, 2월 초 넥슨(NXC) 김정주 회장과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가 만났습니다. 큰 틀에서 이야기를 나눴겠죠. 이후 양사의 핵심 멤버들 사이의 협상이 시작됐습니다.

 

 NXC 김정주 회장

주주 제안 문서는 3일 넥슨에서 발송돼, 4일 엔씨에 전달됐습니다. 논의를 진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처음으로 제시한 셈이죠. 제안서는 주주로서 넥슨의 이익에 부합됩니다. 또한, 지분 매각 등 다른 협상의 우위를 위한 압박용 수단도 됐겠죠.

 

엔씨가 이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상징적인 이사회 참여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주주 이익에 촛점을 둔 제안은 엔씨의 기조와 맞지 않았으니까요. 엔씨는 그들의 장점을 해치는 견해로 보고 있습니다. 구두 상으로라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기 어려웠을 겁니다.

 

넥슨은 협상의 와중에 이 문서를 매체를 통해 외부에 공개했습니다. 엔씨에게는 며칠 전 이미 외부에 공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피드백 또는 너희의 제안을 빨리 달라'는 압박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처음부터 제안서에 대한 협의가 잘 안 될 것을 내다보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넥슨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엔씨는 그 사이 구두로라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못 줬고, 주주 제안서 공개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넥슨은 계속 엔씨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주주와 여론의 향배를 주목하며 협상의 우위를 가지려 합니다. 처음부터 기획된 주주 제안서 공개는 그런 목적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이제 엔씨가 제안을 줘야 할 때


넥슨은 10일까지 답변 시한을 못 박았습니다. 그 사이에도 두 회사 사이에서는 계속 협상이 벌어지겠죠. 

 

다만 걱정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협상 중 구체적인 주주 제안서를 외부로 공개한 것은 국내 정서 상 거부감을 줄 수 있습니다. 협상 파트너인 엔씨는 '페어플레이'가 아니라며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공식적으로 김택진 대표의 가족을 언급한 점도 우려스러운 지점입니다.

 

국내 정서와 다소 벌어진 넥슨의 행보에는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이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제안서도 오웬 대표의 이름으로 보내진 것이었으니까요. 넥슨 대표로서, 그는 절차상 이 협상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입니다. 

 

 

 넥슨 오웬 마호니 대표

 

M&A 전문가로서 이런 압박 행사는 그에게 상식적인 프로세스일 수 있습니다. 일본에 거주하는 미국인인 터라 국내 관례나 정서에 얽매일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김정주 회장은 이 제안서의 내용과 대외공개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용인했습니다. 앞으로의 협상 전망이 팍팍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이 이슈의 흐름은 대주주로서 넥슨이 소극적인 엔씨를 차근차근 압박해 오는 형국입니다. 카드를 하나하나 펼치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번 사태의 흐름은 엔씨의 주장에 손을 들어줍니다. 넥슨이 희망하는 양사 협업이 얼마나 어려운 과업인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감정 소비도 엄청난 상황입니다. 오히려 향후 협업 과정에 짐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왼쪽부터 NXC 김정주 회장, 넥슨 오웬 마호니 대표, 넥슨 코리아 박지원 대표

 

이제 엔씨의 대응이 궁금합니다. 어쨌거나 넥슨이 마침내 구체적인 카드를 던졌고, 대외적으로 공표했습니다. 엔씨는 그 카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입니다. 반론 뿐만 아니라, 제안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제 개인적인 첫 번째 예상은 여전히 '​넥슨이 가진 엔씨 지분의 전량 인수'입니다. 이전 칼럼에서 언급했듯, 다른 경우의 수는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좌절된 희망에 기반을 둔 왜곡된 구조를 정상화하는 게 가장 깔끔하죠.

 

두 번째 예상은 '넥슨이 가진 지분의 일분 인수와 협업의 재개'입니다. 엔씨는 경영권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털어낼 수 있습니다. 넥슨은 구체적인 협업을 재개할 명분을 가지게 되겠죠. 명분 뿐 아니라, 이사회 참여, 채널링, IP(캐릭터나 게임 등 지적재산권) 공유 등 구체적인 협업 논의가 포함될 수도 있을 겁니다.  

 

두 가지 예상 모두 쉽게 결판나기 어렵습니다. 주식의 매매는 시간이 오래 걸릴 확률이 높으니까요. 양측의 이해는 주가의 등락에 민감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 이슈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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