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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중독법 공청회? 그들만의 ‘발표회’에 대한 유감

공정성을 찾아볼 수 없었던 ‘4대 중독 예방법 마련 공청회’

김승현(다미롱) 2013-10-31 15:37:17
31일 정오, 4대 중독 예방법(일명 신의진법) 발표회가 끝났습니다. 예? 공청회 아니었냐고요? 재미있는 농담이네요. 아니면 제가 아는 공청회와 다른 것을 알고 계시거나요. 공청회란 무엇일까요? 잠깐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살펴보죠.

공청회: 국회나 행정기관에서 일의 관련자에게 의견을 들어 보는 공개적인 모임.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사회 일반에 영향력이 큰 안건을 심의하기 전에, 국회나 행정 기관이 학자 및 경험자 또는 이해관계자를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듣는 공개회의다.

적어도 제 기준에 이번 자리는 공청회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어제(30일) 발표된 참석자 명단을 보면서부터 강하게 들었습니다. 참, 그 때는 생각이 아니라 예감이었지요. 아무리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의 2/3가 보건복지 분야와 관련됐다는 것을 안다면 저와 같이 공정성에 대한 불안감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나, 행사가 시작되는 31일이 되었습니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국회로 취재를 가고 있자니 제 앞에서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깔깔거리면서 의원회관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의대 학생들이더군요. 교수님이 행사에 참석한답니다. 세미나실 앞에서 그들이 말한 스승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더군요. 현장에서는 교수와 학생이든, 교수와 의사든 간에 비슷한 광경에 계속 됐습니다. 아, 게임 관련 인사들의 안부는 보이지 않더군요. 이러한 광경 옆에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보낸 화환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예상했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제 기억이 옳다면 ‘4대 중독에 대한 행사였는데, 주된 주제는 게임 중독이더군요. 중독정신의학회에서 밝혔던 근거도 다시 나왔고, 신의진 의원이 30일 해명한 내용도 다양한 인사들의 입에서 되풀이됐습니다. 꾸준히 예고편을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충격(?)은 적었습니다.

그리고 11시 30분, 참관객에게 발언할 기회를 부여하는 자유토론이 시작됐습니다. 준비된 내빈석에 자리한 보건의학계 인사가 차분히 의견을 밝혔고, 자리가 없어 한 시간 넘게 서서 행사를 참관한 사람들에서도 많은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발단은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였습니다. 어떤 설전이 오갔는지는 직접 대화록을 읽어 보시죠.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이하 김종득): 게임 중독이라는 개념은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일명 DSM)에 수록되지 않았고, 학계에서도 아직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만 인정한 개념이다. 게임은 알코올, 마약 등과 다르다. 게임에 중독됐다는 사람만 하더라도 한 게임에 가득 몰입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흥미가 사라진다. 이것이 과연 다른 중독과 같은 것인가?

인천성모병원 기선완 정신과 교수(이하 사회자): 이 자리는 4대 중독법을 논하기 위해 마련됐다. 중독 대신 법에 대해 말해 달라.

김종득: 게임을 알코올과 도박, 마약과 같은 선상에서 놓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이유는 앞에 충분히 밝혔다고 생각한다. 

사회자: 보건의료전문가와 정신과 의사가 게임을 중독이라고 하는데, 업계가 이를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김종득: 업계 종사자도 눈이 있다. 이미 해외의 많은 논문이 게임 중독이라는 개념을 확정하지 않았고, 이 자체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회자: 법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

김종득: 왜 인터넷 중독과 게임 중독을 동일시하는가? 법안의 근거자료를 보면 모든 통계자료는 인터넷 중독과 관련된 것인데, 이에 대한 결론은 인터넷 게임 중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해하기 힘들다.

사회자: 자꾸 말꼬리 잡지 말라. (참관객 자리에서 웃음소리)

 

토론하다 “말꼬리 잡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

무언가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나요? 사회자가 청중의 발언을 끊고, 또 돌리려는 시도를요. 도대체 중독 관련된 법에서 중독에 관한 정의를 논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며, 다른 정신의학 종사자의 반론을 말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회자는 어떤 대답을 원한 걸까요?

 

어쩌면 제가 게임매체에서 일하다 보니 쓸데없는 피해의식을 가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서로의 입장을 다 떠나서 공청회라는 행사로만 놓고 보더라도 오늘의 자리는 그냥 그들만의 ‘발표회였습니다.

패널의 2/3 이상이 보건복지 관련 인사고, 사회자도 보건복지 관련 인사고, 지정토론에 참석하지 않는 보건복지 인사를 위해 특별히 내빈석까지 준비돼 있었습니다. 게임 관련 인사는 상대적으로 드물었고, 그중에 현직 게임업계 인물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행사라면 패널 구성은 균형이 맞아야 하지 않았을까요?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 역할에는 중립적인 입장의 인물을 배치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최소한 ‘공청회라는 이름을 내세웠다면 말이죠. 그 결과, 사회자가 자신의 치우친 성향을 한껏 드러내며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발언을 묵살하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비록 성적에 맞춰 배운 공부이긴 하지만, 행정학을 전공한 제게는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교수님의 한마디가 있습니다. 오늘 새삼 그 한마디가 다시 떠오르더군요.

“좋은 정책, 바른 행정이란 사회구성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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