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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해설] 변태임금제? 게임업계에 불어오는 '포괄임금제' 논란

법에 없는 변태적 임금 체계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최영락(가나) 2017-05-26 16:13:01

게임업계 노동자 다수가 이른바 크런치 모드에 따른 야근을 하지만,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1일 고용노동부가 주요 게임업체들을 대상으로 기획근로감독을 진행한 결과 대다수 업체들이 초과근무를 시켰지만, 이에 대한 연장근로 수당 등은 미지급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게임업계의 근무 관행과 더불어, '포괄임금제'를 지목했다. 정의당도 고용노동부 발표 다음날, 원내 브리핑을 통해 "이 기회에 불법 장시간 노동을 뿌리 뽑기 위해 포괄임금제를 전면적으로 손봐야 한다"면서 관련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사에서는 포괄임금제가 무엇이고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됐는지 살펴본다. 아울러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해결 가능성은 있는지 정리해본다. / 디스이즈게임 최영락 기자


 

 

 

# 법에 없는 '포괄임금제'...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

 

포괄임금제는 '야간, 연장근로 등 시간 외 근로에 대한 수당을 급여에 포함시켜 고정 지급하는 임금제도'를 말한다. 일한 만큼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전 얼마나 급여를 받을지 미리 정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포괄임금으로 월 200만원을 계약한 근로자는 야근이나 주말, 재택근무 등 아무리 초과근무를 했어도 추가 수당 없이 200만원만 받는다.

 

사실 포괄임금제는 법적으로 존재하는 제도는 아니다. 근로기준법에도 명확한 규정이 없다. 90년대 대법원이 판결에서 포괄임금제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하면서 대중에 통용됐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감시단속 근로자나 여객버스 운전원처럼 '초과근로 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포괄임금제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포괄임금제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게임업계를 비롯해 많은 사무직 현장에 적용되어 있다. 2015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30대 대기업 직원의 56.8%가 포괄임금제를 적용받고 있다. 또한 지난달 27일에 공개된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장 206곳 중 41.3%가 포괄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 변태임금제가 된 '포괄임금제'

 

지난달 25일,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대선 후보자 TV 토론회에서 “포괄임금제는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도 장시간 · 저임금 강요하는 '변태임금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면서 포괄임금제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해, 안랩의 대주주로 있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비판한 바 있다.​ 

 

포괄임금제는 실제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활용되지만, 법정수당의 지급과 법정 근로시간의 준수를 피하기 위해 악용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게임 시장 내 경쟁이 치열해지고 개발 환경이 각박해지면서, 자연스레 게임업계 초과근무가 만연해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원내 브리핑을 통해 "포괄임금제가 결국 공짜 야근, 장시간 노동의 근원이라는 것이 이번 근로 감독을 통해 다시 확인됐다"고 밝혔다. 

 

고용주 입장에서 포괄임금제는 좋은 제도다. 수당이 '포괄적'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이 일했는지 따질 필요가 없고, 일을 많이 시켜도 나가는 돈이 고정되어 있다. 나아가 시간당 최저 임금 적용을 피해 저렴한 임금(최소 비용)으로 노동력(최대 효과)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다.

 

반대로 근로자는 입장에서는 초과근로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 포괄임금제로 받는 월급이 200만원이라면, 하루 10시간, 12시간을, 주 5일이나 6일을 일해도 월급은 200만원으로 고정된다. 연장근로 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는 계기로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포괄임금제 적용을 받는 근로자의 월 초과근로 시간은 13시간 9분으로, 일한 시간에 따라 수당을 받는 근로자(10시간 43분)보다 초과 근로 시간이 약 3시간 더 길었다. 포괄임금제 근로자가 실제 근무 시간에 따른 급여는 받지 못하면서, 근무는 다른 근무자보다 더 많이 하는 셈이다.

 

 

 

# '포괄임금제' 손보기

 

포괄임금제에 대해서는 정부, 정치권 모두 해결해야 될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상반기 대선과 토론회, 기타 여러 사태와 조사 등을 거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대선 주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노동시간 단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특히,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포괄임금제 개선을 강조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심상정 후보가 안랩의 포괄임금제를 문제 삼으며 안철수 후보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부터 근로시간 단축을 강조해왔다. 다만, 전문가들은 공약 취지를 살리기 위해 포괄임금제부터 손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 정치권에서 포괄임금제 손보기는 정의당이 앞장서고 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지난 2월 ‘게임산업 노동환경 실태와 개선과제 토론회’​를 열고 노동관계자들을 만났다. 토론회에 참석한 관계자 대부분은 게임업계에 ‘특화된’​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포괄임금제부터 개선하고, 아울러 정부가 노동 실태를 직접 조사해 게임백서에 기입함으로 문제를 공론화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어 이정미 의원은 지난 3월, 포괄임금제 악용을 막고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른 근로시간 연장이 가능하도록 한 현행 규정을 삭제하고, 포괄임금제 계약을 금지하는 내용 등의 신설 안이 담겨있다. 지난 21일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대해서도 미흡하다면서, 포괄임금제 문제 해결을 위한 날을 세웠다.

 

고용노동부는 게임 관련 협회의 역할에 기대를 걸었다. 고용노동부 유명 게임사 감독 결과에서 정형우 근로기준정책관은 "게임산업의 특수성이 있더라도 법정 근로시간 준수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근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게임 관련 협회 및 업계를 중심으로 포괄임금계약 등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로환경 개선안을 수립하고 근로조건 개선 사업 참여 유도와 재정 지원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 '포괄임금제' 관련 문제 해결 여부는 아직 미지수

 

새 정부의 추가 움직임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재 포괄임금제와 관련해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고용노동부의 방침으로 나누어진다. 

 

이정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현재 소관위 심사를 위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된 상황이다. 좀 더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본회의 심의는 둘째치고 소관위 심사도 통과되지 못한 상황이라 근로기준법이 개정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고용노동부가 기대를 걸고 있는 게임 관련 협회의 움직임이나 반응도 현재까지 보이지 않는다.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한국게임산업협회의 경우, 지난 19대 대선 기간 동안 총 10개의 질문으로 구성된 정책 질의서를 각 정당에 보낸 바 있으나, 게임산업 진흥 관련 내용 외에 근로자나 임금 개선과 같은 노동 문제에 대한 부분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지난 21일 발표 이후, 고용노동부나 협회 둘 다 아직까지 별다른 입장 표명이나 추가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포괄임금제를 비롯한 노동문제는 제도적 뒷받침이 없으면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업계 자율에 맡겨 해결되기는 어렵다 생각되며, 노사정위원회와 같이 업계 노동 관련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구심점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최근 들어선 새 정부의 역할에 대해 기대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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