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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의 불량일기

OTT와 MMORPG

임상훈(시몬) 2015-01-24 10:39:59

데스크(부장)가 물었다. 

 

MMORPG가 무슨 말이야?

 

여러 명이 한 서버에 접속해서 기사나 마법사 같은 역할을 맡아서 플레이하는 게임, 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음... 게임은 보통 혼자 하잖아요. 근데 온라인게임은 여러 명이 함께 하는데, 그래서 Massively Multi Online을 줄여서 MMO라고 하고요, RPG는 Role Playing Game의 약잔데, 게이머들이 게임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서 함께 몬스터와 싸우고 레벨을 올려가며 재미를 느끼는 장르, 라고 이야기했다. 

 

음... 그래, 근데 기사에서는 뭐라고 쓰지?

 

1999년 신문사 시절 일이다. 나도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부장의 답답함은 더 했을 것이다. 'MMORPG'는 게이머에게는 일상어지만, 대중에게는 전혀 감이 안 잡히는 알파벳 여섯 자다. 

 

일반 신문 등에서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이라는 용어를 쓴다. 15년 전에도 그랬고, 요즘도 그렇다. 그래도 의문이다. MMORPG를 안 해본 일반 독자가 이렇게 풀어쓴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 여전히 뜬구름 잡는 막연한 느낌일 것 같다.

 

 

최근 나도 이런 답답함과 막연함을 경험했다. 시대에 뒤쳐진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OTT'라는 용어 때문이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설명도 별로 없다. 괄호 속에 'Over The Top'이라고 적어주는 정도로 그친다.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 같은 표현은 그나마 이해라도 됐지만, 'Over The Top'은 당최 무슨 뜻인지...

 

문맥에 비추어, 막연히 인터넷을 통한 콘텐츠, 특히 영상 콘텐츠의 전달, 같은 식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이게 왜 Over The Top인지는 전혀 감이 안 잡혔다. 체질적으로 이럴 때 나는 무척 답답해진다.

 

우연한 기회에 미디어 분야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친절한 답변을 얻었다. 구글을 뒤졌다. 머리가 개운해졌다.

 

영미권에서는 'Over The Counter'라는 표현이 있다. 카운터 바깥이라는 뜻이다. 주로 약국에서 'Over-the-counter drug'라고 쓰는데, 카운터 안쪽에서 조제하는 약이 아니라, 카운터 바깥에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약을 의미한다. 이를 OTC라고 표현한다.

 



 

OTC는 약에만 머물지 않고, 주식 시장으로 확장됐다. 증권거래소(의 카운터) 안쪽이 아닌, 바깥에서 거래되는 비상장 주식이나 그 거래가 이뤄지는 곳을 OTC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OTT는 여기서부터 왔다. 미국에서는 방송국이나 통신사업자 등이 제공하는 셋톱박스를 이용해 영화나 드라마를 봤다. TV set 위에 설치된 단말기는 '셋톱박스'(Set top Box)라고 불렸다. 예전 TV들은 모두 뚱뚱했으니까, 그 위에 단말기를 올렸나 보다.

 

'Over the Top'에서 'Top'은 셋톱박스의 'top'이다. OTT는 셋톱박스 외의 다른 방식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초고속 인터넷 확장과 모바일 기기의 확산이 일으킨 변화다. 미국에서는 '넷플릭스'가 가장 유명하다. '아마존'도 적극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어 화제다. 국내에서는 '티빙'이나 '호핀', 'pooq' 등이 이런 사업자다.

 



 

OTT 역시 OTC처럼 의미가 확장돼 쓰이는 듯하다. 기존 이동통신 사업자 외에 다른 방식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하는 것도 OTT로 표현된다. '카카오톡'이나 '라인', '위챗' 같은 회사를 OTT 사업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디지털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한다. 그런데, 문득 아날로그적인 생각이 들었다. 15년 전 부장은 MMORPG라는 단어를 보며 나를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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