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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의 불량일기

2박 3일 대구 유람

임상훈(시몬) 2014-06-02 18:22:11
각오가 필요해. 5월 말, 서울 촌놈이 대구에 간다는 건. 이미 한여름이거든. 그 곳은.

그래도 가야했지. shiraz가 결혼한다는데. 10년 전 웹에서 만나 쿵짝쿵짝거리다 TIG에 합류했던 녀석. 나랑도 참 많이 아웅다웅했지. TIG도 떠나고, 서울도 떠났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공상을 주고받는 친구거든.

결혼식은 일요일. 금요일 오후에 내려갔지. 겸사겸사해서.

금요일


대구 최고의 번화가 동성로를 갔어. 나를 포함해 네 사람이 전라도 음식점에 앉았지. 아구찜과 삼합을 와작와작 씹었어. '투핸즈'라는 쉬라즈 품종의 와인을 맥주잔에 담아 훌훌 넘기면서. 대구 중심가의 전라도 식당, 삼합과 맥주잔 속의 와인. 멋진 콜라보였어.

음식처럼 사람도 그랬어. 서울에서 내려간 나, 대구 게임회사의 대표 아저씨, 게임회사를 하다 시행사 사업으로 전업한 아저씨,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에 내려와 로스쿨에 다니는 후배. 게임회사 아저씨와 내가 한 사람씩 초대한 거지.

콜라보, 아니 짬뽕 조합은 좋더군. 술처럼 이야기도 술술술. 쓸모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건설업에 대해 많이 배웠어. 역시 다양성은 좋은 거야. 와인을 다 마시고, 파계한 신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갔지. 자리가 없더군. 바깥에서 맥주 한 병씩 서서 마셨어. 곧 자리가 났고, 사케를 마셨지. 왜 그랬는지는 몰라. 

이때쯤 이미 좀 취했던 것 같아. 그 뒤 '디스이즈나인'이라는 곳에 가서 라가불린과 라프로익을 마셨지. 몰트는 역시 아일라가 짱.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주종이 섞인 밤. 그 다음은 기억이 잘 안 나. 다음날 목마름에 일어났지. 여기는 어디고, 나는 나지 뭐. 경북대 근처, 후배의 고시텔 안이었지.


토요일



고시텔을 나갔어. 와, 진짜 이 놈의 더위. 나중에 보니, 대구가 37.4도까지 올라갔다더군.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5월의 하루. 하필 내가 그곳에 있었던 거야. 근데, 나는 그 더위를 운 좋게 피했지. 스타트업을 하는 친구들과 팔공산에 갔거든. 

나무는 역시 고마운 존재야. 산공기를 마시며 술도 깨고, 더위도 피하고. 가벼운 산책을 마치고 산 아래 온천에도 갔지. 노천탕이 있었어. 홀딱 벗고, 자연과 만났지. 좋더군. 훌훌 벗어던진 자연인의 해방감이랄까. 이렇게 맨몸으로 야외에 있는 게 몇 년만일까. 기억도 안 나. 살짝 걱정이 되긴 했어. 저 하늘 위에 무인비행기가 떠있다면...

시내로 내려와 팥빙수를 먹고, 복순도가를 마셨지. 금정산성과 대강도 곁들이면서. 막걸리를 싫어했던 젊은 친구들이 '전국지'라는 곳을 좋아하더군. 전국 각지의 여러 막걸리를 파는 대구의 체인점. 역시 다양성은 좋은 거야.

대구는 호텔보다 모텔이 나은 것 같아. 관광도시가 아니어서 호텔이 흥하긴 어렵지. 대신 경쟁이 치열한 모텔들. 리뉴얼한 모텔에서 두번째 밤을 보냈어.


일요일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류현진 때문에 못 잤어. 8시부터 경기가 시작했는데, 6시에 깨서 말똥말똥했으니까. 그래도 좋았어. 류현진이 이겼으니까. 승리가 확정되는 것을 보고, 대구 시내의 향교에 갔지.

전통혼례를 구경시켜준 쉬라즈가 고마웠지. 근데 무척 덥겠더라. 30도가 훌쩍 넘는 날씨에 신부와 신랑이 겹겹이 옷을 껴있고 있으니. 임신 중인 신부는 좀 힘들어하는 표정이었는데, 신랑은 뭐가 그리 좋은지 헤벌쭉. 귀에 입이 걸렸지.

향교에서 결혼식을 대행해주는 것 참 좋더군. 향교를 구경온 사람들에게도 좋은 행사고, 전통혼례 비용도 터무니없이 저렴한 듯하고.

서울로 올라갈 시간, 택시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향했지. 택시 기사들은 으레 경기가 안 좋다고 이야기하기는 하지. 그런데, 이 아저씨 이야기는 좀더 그럴 듯했어. 일자리가 없어서 젊은이들이 서울이나 근처 도시로 빠져나간다는 거야. 노년층만 많은 도시기 됐대. 대기업도 없고, 관광지도 없으니.

그건 그래. 대구에 왔으니 팔공산을 간 거지. 팔공산에 가려고 대구에 오지는 않을 거니까. 대기업 본사는 서울에 있고, 공장은 광역도시에 두지는 않지. 땅이 넓은 인근 도시나, 항구가 가까운 곳에 두겠지.   

대구만 그런 게 아닐 거야. 광주에 갔을 때도 비슷했고, 대전도 그렇고. 내륙에 있는 도시들은 소비형 도시로 급속히 변해가는 모양새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나더군. 반대가 많았던 지방분권과 행정수도 이전. 정치권력이 삼성이나 현대한테 어디로 공장 옮기라고 할 수 없는 시절이니, 국가 기관이나 공기업을 지방에 분산 배치하려고 했었겠지. 많은 반대를 받았지. 그가 너무 앞서간 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 뒤쳐진 거였어. 미안.


KTX 안에서


대구에서 봤던 두 가지 이미지가 기억이 났어.


 

잘 모르겠어. 링컨평화재단의 세계평화대상&훈장이 뭔지. 일본문화진흥회 세계문화예술 대상도 잘 모르겠고. I.A.E 대학도 감이 안 오고. 이 곳은 확실히 2000년대 분위기는 아니야. 

 

 

 

이해는 돼. 그렇지만 너무 경직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어. 다른 생각에 대한 장벽이 무척 높다는 생각이 들었지. 다양성이 인정받기 어려겠다는 우려.

 


문득 진짜 창조경제의 핵심인 '3T'가 생각났어. Tolerance(관용)가 있어야 Talent(재능있는 인재)가 모이고, Technology(첨단기술산업)이 발전한다는 이론. 나는 현재 서울에 머물지만, 지방 곳곳의 도시들이 발전했으면 좋겠다. Tolerance가 우리 사회 곳곳에 퍼졌으면 좋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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