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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두일의 정글만리] 1장 - 만리길을 떠나다

모험왕 2015-04-17 18:05:00

디스이즈게임의 새 연재물 '김두일의 정글만리'를 시작합니다. 10년 이상 중국 게임시장을 좌충우돌하며, 필자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디스이즈게임



2006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중국 쓰촨(四川, 사천)행 비행기를 타고 있던 내 상황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90년대의 게임개발자에 입문한 세대는 불행과 행복이 공존했다. 그 당시는 게임제작에 관한 어떤 서적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면서 스스로 배워야 하던 시절이었다는 점에서는 불행했다. 나 뿐만 아니라 아무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기회를 쟁취할 수도 있던 행운의 시기이기도 했다.

 

미리내소프트, 마리텔레콤, 손노리 같은 유명 회사들이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는지도 몰랐다. 별다른 것 없는 평범한 스펙에 그냥 하이텔 ‘게임제작동우회’ 같은 곳에서 게임개발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주워 들은 게 전부인 나 같은 깜냥으로는 어디 메이저급에 지원하기도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사실 나는 20대 청춘의 상당 시간을 할애한 PC통신 하이텔에서 게임제작동우회만큼이나 ‘무림동’이라는 무협 커뮤니티에 푹 빠져 있었다. 습작 무협작가의 꿈을 키울 정도로 무협과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게임을 만들면 무조건 세계관은 무협’이라는 나의 기본 전제를 받아줄 회사가 당시에는 없었다는 것이 내가 직접 회사를 만들게 된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당시의 무협이란 싸구려 만화 대본소를 연상시키는 3류 쌈마이 장르였다. 면접 때 무협게임을 만들겠다고 하면 면접관들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당시 그가 만든 회사의 회의실 한쪽 벽을 꽉 채웠던 무협지(편집자 주)

 

그래서 결국 몇 군데 중소규모 회사를 전전한 끝에 직접 회사를 만들었다. 그 당시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이) 가장 좋아하는 무협작가 좌백이 자신이 작가가 된 이유에 대해 ‘어느날 더 이상 읽을 무협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직접 쓰기로 했다’는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프로젝트를 받아주는 회사가 없으니 직접 회사를 만들 수 밖에 없다’는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발상이 모든 시작의 이유였다.

 

이후에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다가 세드엔딩으로 끝나는 스토리다. 야심 넘치게 만들다가 돈이 떨어지니 투자를 받고, 투자를 받고 한숨 돌리고 개발을 하다가 완성이 지연되니 또 돈이 떨어져 투자를 받고, 그 와중에 회사주인은 여러 차례 바뀌고, 처음 시작하고 고생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뒷전으로 밀리고 결국에는 회사를 나가게 되고……

 

부자가 되기 위해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니나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가난해졌다. 종국에는 ‘내용증명’, ‘채권추심’ 같은 것들까지 받아보게 되는 그야말로 불행의 절정을 맞이한다. 돌이켜 보면 대체로 스펙부족, 경험부족, 능력부족의 삼박자가 척척 맞아 떨어진 결과인 듯 싶어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그다지 없다.

 

하지만 정작 불행하다고 느낀 것은 온전히 프로젝트를 나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가 꿈꾸던 무협게임의 세계를 여러가지 이유로 완전하게 펼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그것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회사를 나가야 했다는 분노가 나의 정신을 지배했다. 

 

분노란 아나킨 같은 순둥이를 독한 다스베이더로 만들만큼 뜨거운 원동력이 되는 것이고 내 경우는 ‘한국에서 못 만든 무협게임, 본 고장 중국에 가서 제대로 만들리라!’는 무모한 도전 시즌2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분노는 아나킨을 다스베이더로 만든 원동력이다.

  

한편 이 당시 중국대륙의 게임 정세는 풍운이 불기 시작했다.

 

중국의 온라인게임 시장을 분류하기를 흔히 상해방과 북경방으로 나누는데, 상해방은 한국게임의 퍼블리싱을 통해 성장한 회사들 이를테면 샨다(미르의전설), 더나인(뮤), 나인유(오디션) 등이 대표했다. 북경방은 자체개발을 통해 성장한 넷이즈(대화서유, 몽환서유), 완미시공(완미세계) 등이 이름을 알렸다.

 

북방사람과 남방사람이 정서적으로 차이가 나듯 북경방과 상해방 사이에는 묘한 라이벌 기류가 형성하면서 별로 사이가 안 좋았다. 기업 문화도 다르고,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고, 추구하는 비전도 다르고, 사업을 하는 방식도 많은 차이가 났다. 

 

이 지역적인 기반의 분류는 묘하게도 개발회사는 주로 베이징에서 창업하고, 운영회사는 주로 상하이에서 생겨나는 기이한 전통마저 생겨났을 정도로 한동안 시장의 질서를 지배했다. 이런 남북의 시장 구분과 라이벌 관계를 파괴하는 두 가지 변수가 생겼는데 하나는 텐센트가 게임사업의 본격적인 진출을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쓰촨지역에 게임회사 창업과 정부지원이 활성화되었다는 점이다.

 

 

 

텐센트는 QQ 메신저 사업을 통해 일찌감치 중국의 PC 인스턴트 메신저 시장을 통일했다. 하지만 메신저 자체로는 큰 돈을 벌 수가 없다. 포탈 서비스에 비해 메신저의 광고매출은 미약했고, 서버나 ISP 서비스, 보안 등 유지비용은 많이 든다.

 

그러다보니 텐센트는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도모해야 했고, 그 대상이 온라인게임 운영사업이었으며, 하필 한국 개발사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 텐센트의 게임운영사업 진출은 한국의 게임업계의 판도를 갈아 엎었을 뿐 아니라 세계 게임산업의 지도를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다.

 

쓰촨은 중국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인근에 바다가 없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 지역이다보니 중국 역사에서 볼 때는 부국강병을 위한 최적의 지역으로 꼽힌다. 장량이 초왕 항우의 패도로부터 유방을 피신 곳도 쓰촨이고, 제갈공명이 천하삼분지 대계를 펼친 곳도 촉, 다시 말해 쓰촨 땅이었다. 토지는 비옥하고 인구는 많으며 쓰촨 지역 자체가 요새라고 해도 무방한 촉도에 막혀 있어 안정된 지역이다.

 


가운데 붉은색 지역이 쓰촨
 

근대사로 넘어오자면 마오쩌뚱의 항일전쟁과 장제스의 국민당과의 내전 당시에도 불리할 때는 숨어있기 딱 좋은 지역이었다. 실제 국민당은 대도시를 지배했고 공산당은 농촌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쓰촨은 중국 공산화 과정에도 큰 영향을 끼친 지역 중에 하나다.

 

이런 쓰촨이 막상 현대에 와서는 찬밥이 되었다. 덩샤오핑의 경제 개혁개방정책은 운송과 교통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쓰촨 지역은 숨어서 무엇을 하기에는 적합하나 경제공업도시로 키우기에는 너무 고립된 지형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중앙정부가 위치한 베이징을 제외하고는 상하이(상해), 티엔진(천진), 광조우(광주) 등의 해안선을 따라 중국의 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나마 쓰촨성 내에 위치한 대도시인 충칭(중경)이 직할시로 중앙정부의 승격을 받아 공업도시로 발전할 계기는 마련했으나 청두(성도) 등 나머지 지역에서는 반발이 심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우리 지역도 발전하게 무언가를 해 달라’는 지역민들의 요구였고, 역사적으로나 항일시대의 가치로 볼 때나 의미가 있는 지역의 불평인지라 중앙정부에서도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중앙정부가 해안의 경제공업도시가 아닌 낙후된 내륙지역을 어떻게 키울지를 고민할 때 <미르의전설>, <뮤> 등의 한국산 초기 온라인게임들이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중국의 온라인게임 산업이 갑자기 미친 성장을 하게 되자 중앙정부에서는 비로소 고민의 해법을 찾게 되었다.

 

 

쓰촨은 역사적인 가치가 높고 문화적인 수준이 높으니 그 지역에서는 문화컨텐츠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덕분에 게임, 애니메이션, 방송, 음악에 관련한 회사들이 막 생겨났고 중앙정부의 권유(중국정부의 스타일상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협박으로 이해할수도 있다.)에 따라 대기업(MS, 샨다 등)들은 쓰촨 청두에 연구소나 지사 등을 설립했고, 각 대학 등에서는 관련한 학과들이 새롭게 개설되었다.

 

이런 가운데 나는 쓰촨 지역에 있는 모 대학과 인연이 닿았다. 정확하게는 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재단측과 상호간에 이해관계가 맞았다. 그쪽에서는 새롭게 설립된 학교이자 개설된 게임학과에서 한국에서 온라인게임을 개발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교수로 초빙했다는 대외적인 홍보의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고, 나는 중국에서 제대로 된 무협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할 발판이 필요했다.

 

그 결과로 나는 2006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쓰촨행 비행기에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몸을 싣고 있었다. 

 


 

 

필자: 김두일

- 한국 온라인게임 1세대 개발자, 한.중 게임 전문가, 테르소프트 CSO

 

주요 경력: 

- 인디21 대표, 아이지에이웍스 중국법인 대표, 네오윈게임즈 대표, 킹넷 고문 역임

 

주요 프로젝트: 

- <구룡쟁패>, <파이터시티>, <에어라인월드> 등 개발

- <모두의게임>, <오투잼>, <클랜워즈> 등 중국 서비스 

- <전민기적>(MU) IP 계약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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