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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5월 6일 - 서울 시내 최초의 편의점 등장

임상훈(시몬) 2014-05-07 00:22:08
1989년 5월 6일,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물건을 파는 편리한 가게가 서울에 생겼다.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언론은 '구미식 구멍가게', '심야 만물 슈퍼'란 별칭을 붙여 이 가게를 소개했다. 편의점(CVS, Convience Store)이었다.

송파구 올림픽선수촌 부근에 생긴 이 편의점의 이름은 '세븐일레븐'이었다. 세븐일레븐은 1927년 미국 텍사스 달라스에 생겼던 세계 최초의 편의점 이름이다. 62년 뒤 이 녀석은 한국까지 건너왔다. 미국에서 생길 때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영업한다는 뜻으로 '세븐일레븐'이라고 상호를 정했지만, 이후 거짓말이 됐다. 24시간 내내 영업을 했다.

 

한국에 생긴 편의점은 선망의 공간이었다. 1992년 MBC 미니시리즈 <질투>를 기억한다. 56.1%의 시청률을 기록한 트렌디 드라마의 시초였다. 주인공 최수종과 최진실은 편의점에서 김밥과 라면을 사 먹으며 데이트를 즐겼다. 최수종은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일했다. 

 

​전 국민의 선망의 대상이 된 도시 남녀의 모습이었다. 밤에도 라면을 사먹을 수 있는 '편의점'은 세련된 신세계였다. ​구멍가게와 달리, 조명이 환하고, 종업원은 유니폼을 입었고, 깔끔하게 물건이 배치된 곳이었다. 전국에 편의점이 500개 내외로 있던 시절이었다.


내가 편의점에 본격적으로 출입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1학년 후배들과 밤늦도록 진탕 술을 마시곤 하던 시절이었다. 뜨뜻한 라면 국물이 땡겼다. 기숙사에서 가장 가까운 낙성대역 근처의 '훼밀리마트'(지금의 CU)로 걸어 내려갔다. 그 곳에서 후배들과 컵라면과 봉지김치를 자주 먹었다. 아침에는 참치죽으로 속을 달랬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편의점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89년 말 7개였는데, 93년 7월, 4년 2개월 만에 1,000호 점을 돌파했다. 일본보다 1년 빠른 속도였다. 그 후 4년 뒤, 다시 2,000호 점이 생겼고, 2000년 이후 점포 수는 엄청나게 불어났다. 기업의 상시 구조조정이 일반화하면서 창업수요가 크게 늘어난 탓이었다. 2002년 한 해에만 1,988개 편의점이 생겨났다.

대한민국은 결국 편의점 제국이 됐다. 2012년 말 현재 편의점 수는 2만 4,559개다. 인구 2,075명당 1곳으로 편의점 종주국 미국(2,100명)은 물론, 일본(2,719명), 대만(2,308명)보다 훨씬 조밀하다. 세계에서 인구 대비 편의점 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평균 22.1평의 편의점에 하루 359명이 들어오고, 145만 원 정도 사간다. 전국 편의점을 합치면 하루 880만 명이 출입해서, 356억 원을 소비한다.

편의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편의점 3강인 CU(7,940개), GS25(7,700개), 세븐일레븐(7,230개)은 적극적으로 점포 수를 늘리고 있다. 괄호 안은 2013년 말 가맹점 수다. 편의점 대기업들은 가맹점 매출의 20~50%를 수수료로 받는다. 점포를 늘릴수록 매출이 늘어난다. 이러니, 이마트와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도 이 판에 눈독을 들였다. 위드미(이마트), 365플러스(홈플러스) 등이 생겨났다.

이런 화려한 성장 뒤에는 짙은 어둠도 있다. 2013년 봄, 4명의 편의점 주인이 잇따라 자살했다. 생존하기 힘들어서였다. 편의점 대기업들이 공격적으로 가맹점을 늘리면서, 2011년 이후 점포당 인구수가 줄어들었다. 코 닿을 거리에 편의점들이 생겨났다. 가게는 밝고 깔끔했지만, 점주의 사정은 정반대였다. 그렇게 장사가 안 되지만 24시간 내내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 주인은 그만 두고 싶었다. 하지만, 중도해지 시, 최대 10~12개월 치 로열티(매출총이익의 35%)의 위약금을 본사에 내야 했다. 생활의 기반을 전부 뺐겼다.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7월 진보정의당 김제남 의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 매출 100만 원 이하의 점포가 조사대상인 283개 편의점 중에 52%를 차지했다. 조사를 진행한 전국편의점가맹점주협의회에 따르면 이런 가게의 월 순이익은 30만 원 수준이다. 임의발주(밀어내기)로 인한 피해가 54%나 됐다. 지난해 국내를 뜨겁게 달궜던 '갑을논란'의 중심에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 본사와 편의점 주인이 갑과 을이라면, 편의점 '알바'는 병이다. 2012년 편의점 파트타이머의 시간당 보수는 주간 근무자가 4,320원으로, 법정 시급 4,580원에도 못 미쳤다.

편의점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참 많다. ▲24시간 내내 소비를 조장하는 소비 자본주의의 첨병 1~2인 가구의 지속적인 증가, 소득 양극화에 따른 소비상품의 변화 24시간 잠들지 않는 '호모나이트쿠스'와 그에 따른 피로사회 현상 사회적 네트워크망으로서 편의점의 긍정적 가능성 등. 언젠가 하기로 하고, 이 글의 마지막은 가볍게 게임을 언급하며 마치겠다.


1999년 우리보다 편의점의 확산이 빨랐던 대만에서 <편의점>이라는 게임이 나왔다. 감마니아가 만든 이 게임은 아시아에서 120만 장이 판매되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비슷한 장르의 <패스트푸드>라는 게임도 만들었는데, 핑클이 게임 속 캐릭터로 등장했다.

 

지난 2월에는 모바일게임으로 <와라편의점>이 출시했다. 네이버 소셜 게임에서 서비스되는 같은 이름의 게임을 모바일로 컨버전한 타이틀이었다. 2월 25일 출시 후 초반 2주 동안 구글 플레이스토어 인기 1위에 올랐다. 최근 3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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