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칼럼

[허접칼럼] 소프트뱅크의 진격과 후퇴, 텐센트의 준비와 한 방

임상훈(시몬) 2016-06-22 12:07:22

# 소프트뱅크의 진격


대담했다. 무모했다. 미쳤다, 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손정의였다. 2012년 10월 15일, 도쿄. 글로벌 투자자들은  또다시 이 한국계 일본인의 대담한 행보에 놀랐다. 그는 이날 도쿄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국 3대 이동통신사 스프린트 인수가 발표됐다. 규모가 ‘후덜덜’했다. 스프린트의 지분 70%에 201억 달러(약 22조 원). 일본 역대 최대 규모의 미국 기업 M&A였다. 손정의는 역시 ‘승부사’였다.


승부를 건 이유는 명확했다. 일본 통신시장의 추가 성장 여력은 크지 않았다. 규모 있는 글로벌 시장 공략이 필요했다. 미국 시장은 아직 기회가 보였다. 손정의는 자신감이 있었다. 미국 통신 시장의 후진성과 일본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다.


손정의는 2006년 일본 3위 이동통신사 보다폰 일본법인을 인수한 뒤 소프트뱅크 모바일로 이름을 바꾸고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8년 ‘아이폰 독점공급’이라는 신의 한 수를 통해 NTT도코모와  KDD 가입자를 대거 흡수하며 급성장했다. 2013년 매출과 순이익에서 NTT도코모를 추월해 일본 1위 사업자가 됐다.


스프린트는 미국에서 점유율 16%의 3위 사업자였다. 이른바 ‘손정의의 타임머신 전략’에 들어맞는 업체였다. 소프트뱅크는 일본 이동통신 시장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미국에 적용해 버라이즌(32%)과 AT&T(30%)를 추월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미국 이동통신 속도는 일본의 50%에 불과했다. 설비 투자 등을 통해 속도를 개선하고, 아이폰 판매를 잘 연계하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재팬텔레콤, 보다폰 재팬, 윌컴 인수 이후 발휘했던 ‘V자 회복’ 그래프의 재현을 자신했다.


투자 전문가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기존 성공 퍼레이드가 있어 대놓고 비판하지는 못했지만, 상당수는 “지나쳤다”는 반응이었다. 인수를 위해 너무 큰 부채를 안았다. 미국 시장은 일본과 다르다. ‘아이폰 독점공급’ 같은 묘수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같은 비판은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손정의였다. 그런 비관적인 전망을 뚫고 성공해 온 사나이였다.



# 슈퍼셀의 중국 진출


난감했다. 낭패였다.


2013년 11월 슈퍼셀의 <클래시오브클랜>은 중국에 진출했다. 메이저 안드로이드 앱마켓 중 하나인 '완도우지아'에서도 론칭했다.

 

 

별다른 마케팅은 없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한 달이 되기 전 그 마켓에서만 20만 이상 다운로드가 발생했다. 신규 게임 중 최고 성적이었다.


하지만,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결제가 안 됐다. 매출이 안 나왔다. <클래시오브클랜>은 구글 결제를 지원했지만, 중국 유저들은 구글 결제를 이용할 수 없었다. 중국 안드로이드 <클래시오브클랜> 유저들은 젬을 살 수 없었다. 젬 없는 게임은 잼 없었다.


슈퍼셀의 다음 게임은 달랐다. 2014년 7월 <붐비치>는 중국 퍼블리셔 쿤룬과 계약했다. 중국 퍼블리셔를 통해 <클래시오브클랜>이 겪었던 문제를 해결했다.


2014~2015년 중국 게임계는 돈이 넘쳤다. 세계 1위 업체 슈퍼셀은 군침 도는 타깃이었다. 2015년 4~5월 소문이 들려왔다. 쿤룬이 슈퍼셀 지분 인수에 나선다는 내용이었다.

 


슈퍼셀의 최대 주주 소프트뱅크는 가만 있지 않았다. 2015년 6월 1일, 슈퍼셀의 외부 투자자들이 들고 있던 22.7%의 지분을 추가로 인수해버렸다. 소프트뱅크는 2013년 10월 슈퍼셀의 지분 51%를 15억 달러(약 1조 7,350억 원)를 주고 샀었다. 이번에는 정확한 액수가 공개되지 않았다. 회사 가치가 55억 달러(약 6조 3,600억 원) 정도로 인정됐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소프트뱅크의 추가 투자는 적절했다. 슈퍼셀의 매출은 2015년 전년에 비해 36% 성장했다. 2016년에는 <클래시로얄>이 나왔다.



# 텐센트의 준비


‘도대체 어딜까?’


2015년 4월 24일, 명민한 투자 전문가들은 홍콩 증시를 주목했다. 특별한 공시가 있었다.

 

 

텐센트는 이날 국제 중기 채권(Global Medium Term Note)을 100억 달러(약 11조 6,000만원)까지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50억 달러의 회사채를 발행하겠다던 1년 전(2014년 4월 10일) 공시를 수정했다.

 

쉬운 말로 텐센트가 100억 달러만큼 빚을 꾸겠다는 것이었다. 텐센트는 돈을 무척 잘 버는 회사였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빚을 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투자자 관점에서 돈을 꾸는 이유는 뻔했다. 큰 규모의 인수합병을 위한 실탄 확보.


텐센트의 이날 발표는 투자 전문가들의 시선을 잡았다. 회사채 발행은 이사회 결의사항이다. 회사 최고 의사결정 단위의 전략과 의지를 드러내는 액션이다. ‘텐센트가 대규모 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라는 시그널은 확인됐다.


울림이 큰 시그널었다. 텐센트는 굵직한 M&A에서 실패 경험이 거의 없는 ‘슈퍼 투자자’였다. 라이엇게임즈, 액티비전블리자드, CJ게임즈(현 넷마블게임즈) 등은 투자 후 계속 성장했다. 텐센트가 사면 시장에서 가치가 올라갔다.


관심은 그 100억 달러가 향할 방향이었다. 두 가지 추측이 나왔다. 중국 내의 인터넷 회사 쇼핑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간 텐센트는 TAB 또는 BAT으로 불리는 중국 3대 인터넷 거인(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 중 인수합병에 소극적인 편이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많았다.

 

 

다른 추측도 있었다. 포브스가 지목한 대상은 액티비전블리자드였다. 2013년 텐센트는 액티비전블리자드가 비방디 유니버설로부터 독립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액티비전블리자드 경영진이 주도한 사모펀드 ASAC ॥ LC의 일원으로 지분 인수에 참여했다. 약 6%의 지분을 가진 소극적 투자자에 머물렀지만, 경영진과 친분은 충분했다. 100억 달러의 실탄이라면 추가적인 행보에 나서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 소프트뱅크의 후퇴


‘꼭 재건하겠다.’


2015년 11월 2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손정의가 미국 캔자스주 캔자스시티에 새 집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캔자스시티는 스프린트 본사가 있는 곳이다.

 


 

시중에 나돌던 스프린트 매각 루머를 일소하는 행동이었다. 스프린트 재건에 대한 손정의의 의지는 확고했다.


매각 소문이 날 정도로 스프린트의 사정은 안 좋았다. 인수 후 뚜렷한 성장이 안 보이자, 손정의는 4위 사업자 T-모바일과 합병을 추진했다. 하지만,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와 미국 법무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2015년 2분기에는 가입자 수에서 T-모바일에 밀렸다. 4위 사업자로 전락했다.


부채와 적자도 문제였다. 인수 당시 스프린트의 부채는 이미 약 30억 달러(약 3조 4,700억 원)였다. 실적 회복도 더뎠다. 2015년 4분기까지 6분기 연속 계속 적자를 기록했다. 2015년 4분기에는 8억 3,600만 달러(약 9,670억 원)의 손실을 봤다.


소프트뱅크는 버틸 힘이 충분했다. 알리바바 덕분이었다. 2014년 9월 알리바바는 뉴욕거래소에 상장했다. 소프트뱅크는 17년 전부터 약 8,000만 달러(약 920억 원)를 투자해 온 최대 주주(32.2%)였다. 시장 가치로 약 652억 달러(약 75조 2,000억 원) 정도를 갖게 됐다.

 

 

하지만, 스프린트 인수 후유증이 컸다.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계속 떨어졌다. 소프트뱅크는 스프린트를 인수하며 일본 3개 은행로부터 돈을 빌렸다. 부채 규모는 2013년 하반기 약 2조 엔(약 22조 1,000만원)에서 2016년 4월 11조 9,000억 엔(약 131조 5,000억 원)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승부사 손정의에게 위기가 왔다. 다시 승부를 걸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2016년 5월 14일, 블룸버그통신에는 소프트뱅크가 슈퍼셀 지분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가, 처음 등장했다.



# 텐센트의 한 방


슈퍼셀이었다.


텐센트가 100억 달러의 회사채를 발행하며 현금을 모아왔던 이유가 밝혀졌다. 조용했지만 어마어마한 한 방이었다.


2016년 6월, 텐센트 마틴 라우 대표와 제임스 미첼 최고전략책임자(CSO)가 슈퍼셀을 설득하러 핀란드에 갔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슈퍼셀 지분을 팔려는 소프트뱅크의 의지는 확고했다. 다만, 슈퍼셀에는 거부권이 있었다. 텐센트 고위층은 슈퍼셀 의사결정권자들을 설득해야 했다.


소문이 무성했다. 그리고,


결론이 났다. 슈퍼셀 창업자이자 CEO 일카 파나넨이었다. 2016년 6월 21일, 그는 마틴 라우와 찍은 사진과 함께 소문에 답하는 글을 회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텐센트가 소프트뱅크의 지분을 샀고, 슈퍼셀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회사 가치는 102억 달러(11조 7,000억 원)로 매겨졌다. 약 1년 전 소프트뱅크가 슈퍼셀의 지분 22.7%를 샀을 때보다 2배 가까이 높아졌다. 소프트뱅크는 단기간에 멋지게 퇴장(Exit)했다. 텐센트는 86억 달러(약 9조 9,500억 원)를 썼다. 소프트뱅크의 지분(72.2%)과 함께 슈퍼셀 전현직 임직원의 지분(12.1%)을 추가로 인수해 84.3%를 쥐게 됐다.


슈퍼셀에게는 이런 금액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자율성이었다. 슈퍼셀은 핀란드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기로 했다. 주주에 의한 재무적 압박을 안 받는 비상장회사로 계속 남을 수 있게 됐다. 텐센트가 100% 자회사 라이엇게임즈를 관리하는 방식이 슈퍼셀에게 신뢰를 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인수를 통해 슈퍼셀은 중국 시장에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텐센트 마케팅 버프는 강력하다. 기존 슈퍼셀의 중국 퍼블리셔였던 쿤룬의 사정이 딱하게 됐다.

 

텐센트는 아시아 바깥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도 거인이 됐다. 지난해 텐센트의 아시아 외부 매출은 13억 달러였다. <리그오브레전드>를 통해 얻었다. 슈퍼셀의 아시아 외부 매출액은 20억 달러가 넘었다.  


이번 인수는 텐센트의 역대 계약 중 가장 큰 규모다. 아니다. 이는 중국 IT 업체 중 가장 큰 규모의 계약이다. 이 거대한 계약이 글로벌 게임생태계에 미치는 의미와 전망에 대해서는 허접한 다음 글에서 다루겠다.

 

손정의는 지난달 알리바바 지분 4% 매각에 이어 슈퍼셀 지분도 팔았다. 겅호온라인엔터테인먼트 지분도 팔기로 했다. 이를 통해 현재 2조 엔(약 22조 원)이라는 현금을 확보했다. 스프린트나 소프트뱅크 부채를 해소할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전기차나 로봇 등에서 또 한 번 승부를 걸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최신목록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