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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64KB에 게임을 담아야했던 그들의 처절한 이야기

안정빈(한낮) 2016-04-25 18:50:08

30년 전, RPG의 콘솔게임기 진입을 가로막은 가장 큰 장벽은 다름아닌 '용량'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에닉스에 근무하던 호리이 유지는 콘솔 RPG를 만들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64KB의 장벽에 도전합니다. 그의 도전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요?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한 무리의 상처 입은 용사들이 왕궁에 도착합니다.

 

축복을 받고 체력을 회복하고,

휴식을 취하며 오늘의 모험을 마무리 지을 때쯤

 

국왕님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ZXCDAD!#asd"

 

네? 뭐라고요? 국왕폐하?

 

"야! 다 받아 적었어?"

"어? 아직인데, 벌써 화면 껐어?"

"야! 그걸 아직도 적고 있으면 어째!"

 

네? 저기요? 플레이어님?

대체 이게 뭔 도그사운ㄷ...

 

 

64KB

(512kb)

 

지금은

바탕화면의 이미지 파일 하나도 저장할 수 없는 용량

 

예쁘게 찍은 셀카 한 장을 

휴대폰에서 옮기기에도 부족한 그런 용량

 

하지만 30년 전만해도

플레이시간 10시간이 넘는 어느 롤플레잉게임의 전체용량

 

1985년

에닉스의 호리이 유지는 고민에 빠졌다.

 

"당시 PC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롤플레잉게임을

가정용게임기로 가져올 수는 없을까?"

 

슈퍼마리오와 동키콩 등을 통해 확보된

패미콤(국내명 패밀리) 판매량에 RPG를 얹는다면

성공은 보장된 길이었다.

 

문제는 용량

 

용량이 비교적 넉넉한 PC와 달리 패미콤의 카트리지는 고작 64KB

 

여기에 방대한 지역과 아이템, 몬스터를 가진 RPG를 넣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모든 수단이 동원됐다.

 

캐릭터는 정면만 바라볼 수 있었고,

아예 사용하지 않을 글자를 정해 게임에서 빼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넘을 수 없었던 최대의 적

'세이브'

 

부족한 공간은 어떻게 해결하더라도

지금까지 플레이한 데이터를 저장할 공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발상을 바꿨다.

유저의 데이터를 일일이 저장하는 대신 

유저의 마지막 상태에 맞춰 미리 약속된 패스워드를 주기로

 

게임을 종료할 때

화면에 패스워드를 띄워주고

 

다음부터는 패스워드를 입력하면

전에 했던 시점부터 게임을 이어할 수 있다.

 

몇 일, 몇 달, 아니 몇 년을 기다려도

정해진 암호만 입력하면 다시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그가 만든 이 시스템의 이름은

"부활의 주문"

 

부활의 주문으로 그는 64KB 안에 세상을 담는데 성공했고

그의 첫 RPG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1985년 <드래곤퀘스트>가 세상에 출시된다.

 

부활의 주문은 이내 다른 게임들로 퍼져나갔고

 

게임 좀 했다는 사람들의 수첩은

패스워드를 적어 둔 메모로 가득 차 버린다.

 

"에닉스와 스퀘어 합병해 진짜야"

(약 20년 후 현실로 이뤄짐)

개발팀은 패스워드 시스템에 여러 장난과 예언을 넣어뒀고

 

"소련이 망하고 러시아가 부활한다"

글자를 랜덤으로 조합하던 시스템 덕분에

우연의 일치로 각종 패스워드가 쏟아지며

부활의 주문은 '8비트 예언서'라는 별명도 얻는다.

 

물론 적어 놓은 패스워드를 잃어버리거나

잘못 적은 패스워드 덕분에 게임을 다시 하는 일도 비일비재

 

세이브와 로드가 일상화된 지금 돌이켜 보면

답답할 정도로 불편했던 시스템이지만

 

그가 만든 부활의 주문은

용량의 한계 속에서 

지금의 <드래곤퀘스트>시리즈를 

그리고 콘솔 RPG를 일궈낸 승리의 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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