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NDC

[NDC 19] "이 이상한 것도 게임입니다." 실험 게임 페스티벌 '아웃 오브 인덱스'

장르의 인덱스를 넘어 실험하는 게임들

이준호(마루노래) 2019-04-26 20:24:03

'실험게임'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거칠게 말해 기존의 장르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임들을 뜻합니다. 이러한 실험 게임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제적인 페스티벌이 국내에서 열리고 있고, 올해로 6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바로 실험 게임 페스티벌, 아웃 오브 인덱스(이하 OOI)입니다. 오늘 NDC 강연에서는 OOI의 운영에 참가하고 있는 박선용, 유재원 개발자가 아웃 오브 인덱스에서 실험게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실험게임은 어떤 것이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연자인 박선용(좌), 유재원(우) 개발자.



 

# 아웃 오브 인덱스는?

 

OOI는 2014년 시작된 실험 게임 페스티벌입니다. 매년 전세계에서 실험적인 게임을 접수받아서 심사, 10개 내외로 선정하여 전시하고, 플레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단순히 전시에서 그치지 않고, 개발자들을 직접 초대해 개발 의도를 들을 수 있는 발표도 진행하고, 부스를 마련해 유저들과 대화하는 자리를 만드는 등 참가자, 개발자간 소통을 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합니다.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기 때문에 당연하지만 시장성이나 대중성보다는 창작자의 생각과 실험에 초점을 뒀습니다. 그래서 OOI는 사실 플레이어를 위한 페스티벌은 아닙니다. 플레이어들보다는 개발자들이 많이 와서, 전시된 작품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각자가 일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하는 일이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4월 24일 열린 '나크' 김동건 본부장의 기조강연에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한국 게임들은 다 똑같고 발전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그리고 여기에는 개발자들 탓도 있다고 말입니다. 강연자는 이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 게임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너무 똑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관련기사

[NDC 19] 함께한 시간 모두가 눈부셨다, 김동건이 기록한 ‘마비노기’의 순간들 링크

 

똑같은 것들을 좋아하면서, 또 플레이하면서 비슷하게 자라왔기 때문에 똑같은 것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개발자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한편으로는 플레이어이기도 한 개발자들의 취향이 공교롭게도 서로 비슷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떤 세대의 개발자들은 모두 <울티마> 같은 것을 만들고 싶어 하고, 어떤 세대의 개발자들은 모두 AAA급 RPG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강연자는 개발자들이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게임들을 OOI를 통해 소개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매년 다른 게임들을 분류하면서 다른 영감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 인덱스를 벗어난 실험이 게임을 바꿀 수 있기를

 

사람들은 흔히 실험적이라고 하면 예술적인 것을 생각하는데, OOI의 실험은 딱히 예술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의 경우 때때로 게임이 아니라 미디어아트에 가깝다는 의견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게임플레이가 느껴지는 작품을 뽑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고 강연자는 밝혔습니다. 실험 게임이라는 분야 자체도 이미 생소한데, 실험 '아트' 게임이 되어버리면 실제 개발로부터 너무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그냥 전시가 아닌 페스티벌인 이유는 참가자들이 서로 소통을 하길 바라는 의도가 담겼다고 강연자는 설명했습니다. 참가자들이 각자 게임을 해보고 그냥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해본 사람들 끼리 서로 이야기도 하고, 만약 개발자가 현장에 있다면 참가자가 직접 개발자에게 "이 부분은 왜 이렇게 만들었나요?"라고 물어보는 등 소통도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전시(Exhibition)가 아니라 페스티벌.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았다.

 

시장이 원하는 작품보다 자기 자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그런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발견하고, 또 대중들에게 발견되고 응원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물론 모두가 실험을 하면 먹고 살 수 없겠지만, OOI에서 하는 '미친' 실험들에 각각의 개발자들이 영향을 받아서, 각자의 회사와 스튜디오, 프로젝트 팀으로 돌아가 적당한 수위의 실험에 도전하고, 그래서 지금보다 더 신선한 게임이 나오는 것. 이것이 OOI의 기획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장르라는 인덱스를 넘어선 게임들

 

강연자는 이어서 실제로 OOI에서 전시됐던 게임들을 몇 가지로 분류해 소개했습니다. 첫 번째 분류는, "작고 가벼워 보이지만 의미있는 실험 결과물로서의 게임들"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 인디 개발자 지핑크(ZPink)의 <스크롤매니악>, <컨트롤 마이셀프> 등이 소개됐습니다.

 


 

 <스크롤매니악>은 마우스의 스크롤을 사용하는 게임입니다. 스크롤을 돌려서 적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게임이죠. 언뜻 들으면 쉬울 것 같지만, 제약이 하나 있습니다. 스크롤을 단 한 번, 한 방향으로만 돌릴 수 있다는 것이죠. 끊기지 않고 한 방향으로 최대한 많이 스크롤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손가락이 아니라 다른 신체부위를 쓰기도 하고, 마우스를 거꾸로 돌려서 벽에 굴리기도 하는 등 창의적(?)인 플레이 방법이 요구됩니다.

 


 

<컨트롤 마이셀프>는 일반적인 모바일 게임의 컨트롤 방식에 대해 실험을 해본 작품입니다. 모바일 게임은 조작 방식은 우리가 흔히 십자키라고 부르는 D-PAD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컨트롤 마이셀프>는 이러한 편견을 부수고, D-PAD에 해당하는 버튼들을 화면 여기저기에 흩뿌려 놓거나, 심지어 혼자 움직이게 만들어 독특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두 게임은 모두 비디오게임의 인풋 방식에 대한 실험이었습니다. 보기에는 쉽고 간단해보이지만, 처음 이런 발상을 하는 것이 쉽지 않죠. 게임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PC게임을 만든다고 하면 당연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떠올리고, 이동은 WASD로 하는 등, 이미 고착화되어 있는 조작 방식들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여기죠. 그런 지점에 의문을 가졌다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강연자는 설명했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한 분류는 Alt Ctrl Games, 한국말로 하면 대안 컨트롤 게임들이었습니다. 대체로 직접 인풋 장치를 만드는 게임들이었는데요. 대표적인 사례로 <라인 워블러>를 소개했습니다.

 

 

 

Out of Index라는 이름은 사실 Index out of range라는 프로그래밍 용어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인 장르로 분류하는 게임플레이의 바깥(out of range)에서 새로운 게임플레이를 찾아내고 발견하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라인 워블러>는 여기에 매우 잘 어울리는 게임이었습니다.

 

<라인 워블러>는 굳이 분류하자면 플랫포머 게임입니다. 하지만 물리적인 디스플레이가 LED로 대체되어 있죠. 긴 봉에서 불빛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를 위치하는 불빛이 있고, 쇠철로 만든 컨트롤러를 통해 앞뒤로 움직입니다. 다른 색깔로 표시되는 '적'도 존재합니다. 쇠철을뒤로 당겼다 튕기면 적을 물리칠 수 있죠. 개발자는 이 부분에서 "고양이가 도어 스탑을 가지고 노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혀 청중의 미소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물리 디스플레이가 LED라는 특성 상 전시(설치) 방식에 따라 플레이가 달라진다는 점도 의미있게 봤습니다. 연못 밑으로 LED가 지나가게 한다거나, U자형, 혹은 회오리형으로 설치하면 게임플레이가 변환되는 것이죠.

 


 

<센턴테이블>도 흥미로운 게임이었습니다. 무려 100개의 버튼을 사용하는 격투 게임이었는데요. 각각의 플레이어가 50개씩 버튼을 사용하는데, 어떤 버튼이 무슨 동작을 하는지는 매 세션마다 임의로 바뀝니다. 매번 게임을 할 때마다 어떤 키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마구 눌러가며 플레이하게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그냥 버튼만 많은 병맛 게임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강연자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개발자는 명확하게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격투게임의 고질적인 문제, 더 경험이 많고 더 '피지컬이 좋은' 플레이어가 유리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본 것입니다. 이 게임은 누구도 커맨드를 미리 알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누가 해도 그떄 그때 최선을 다해 버튼을 눌러가며 게임을 플레이해야 합니다.

 

 

이런 식의 대안 컨트롤 게임을 제작하는 문화가 해외에서는 이미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4~5년 전부터 미국의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에서 대안 컨트롤 게임을 위한 전시를 따로 진행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대안 컨트롤 게임을 통해 새로운 조작법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연자는 밝혔습니다.

 

그 다음으로 강연자가 소개한 분류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게임들"이었습니다. <eCheese Zone>이라는 게임을 그 예시로 들었습니다. 이 게임은 일종의 '파티 게임', 즉 파티 장소에서 한 쪽에 켜놓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플레이하곤 하는 장르의 게임입니다.

 


 

<eCheese Zone>의 특징은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간단해 보이는 미니게임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게임은, 특이하게도 꽤나 복잡한 여러 규칙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규칙은 튜토리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장문의 텍스트로 되어 있는 설명서로 제공됩니다. 하나하나 읽어보더라도 다 이해하기 어려운 형식이죠.

 

여기에 적혀있는 규칙을 어기면 게임 오버인데, 특이하게도 새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1시간을 기다려야합니다. '로딩'이라는 형식으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타이머죠. 타이머 화면은 하늘에서 무수한 치즈들이 떨어지고 있는 장면으로 되어 있고, 플레이어가 마우스로 치즈를 하나 클릭할 때마다 시간이 "1초"씩 줄어듭니다.

 

도대체 어떤 게임이 벌칙으로 플레이어를 기다리게 만들고, 튜토리얼 대신 장문의 설명서를 제공할까요? <eCheese Zone>은 전형적인 '나쁜' 디자인을 가진 게임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게임을 특별하게 해줍니다. 파티 현장에서 사람들이 이 로딩 시간을 넘기기 위해 협동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치즈를 클릭해 시간을 줄이는 걸 도와주기도 하고, "이 미니 게임에서는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하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거꾸로 잘못된 팁을 적어서 '낚시'를 하는 플레이어들도 있었죠.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치즈가 하늘에서 떨어질 뿐인 이 게임을 선정작으로 뽑을 때 강연자는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파티 문화에 익숙치 않은 한국 게이머들이 게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하기도 했고, 설명문이 영어로만 되어 있는 것도 문제였죠. 하지만 다행히도 참가자들의 반응은 꽤 좋았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 소개된 <Cerulian Moon>은 모바일 플랫포머 게임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캐릭터 대신 배경을 스크롤해서 움직입니다. 이 자체로도 재미있고 독특한 조작감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죠. 일반적인 플랫포머에서는 불가능한 '역방향 곡선 하강'도 가능합니다.

 

마지막 분류로서 강연자는 "창작자의 개인적 현실이 잘 투영된 게임"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일종의 개인적 실험이라고도 할 수 있고, 해외에서는 퍼스널 게임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창작자의 실제 경험이나 현실 인식이 많이 투영된 게임들입니다. <Everything is Going to be OK가 대표적입니다.

 


 

이 작품의 개발자는 사실 순수한 개발자라기 보다는 일종의 아티스트였습니다. 스스로 디지털 아티스트로서 활동하며 게임과 유사한 여러가지 디지털 아트 작품을 발표해왔는데, 어느 매체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게임'으로 소개하면서 상당한 괴롭힘에 시달렸습니다. "이게 무슨 게임이냐"라며 말이죠.

 

개발자는 당시의 가지게 된 부정적인 감정, 그리고 그것들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Everything is Going to be OK>에 녹여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처음 OOI에 제출되었을 때 심사에서 선택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처럼, "이게 게임인가?"라는 질문에 걸렸던 것이죠. 하지만 두 번째로 다시 접수됐을 때는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OOI 주최측이 게임 외적인 이야기와 동기에 있어서도 남들과 다른 시도를 했다면 '실험적인' 것으로 인정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유명한 소미의 <레플리카>, <리갈 던전>도 이 분류에 뽑혔습니다. 창작자의 현실 인식이 잘 투영되어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레플리카>는 테러방지법이 이슈가 되던 시기, 핸드폰을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게임플레이를 통해 녹여내 감시사회에 대한 창작자의 인식을 드러낸 작품입니다.

 

한편 <리갈 던전>은 쉽게 말해 경찰 시뮬레이터인데요. 일반적으로 경찰들이 쓰는 시스템을 이용, 범죄자들의 조서와 신상 기록을 읽고 검찰에 기소 의견을 낼 지 여부를 결정하는 게임입니다. 한 사회가 어떻게 범죄를 규정하고, 또 경찰은 어떻게 규정된 범죄를 다루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게임으로 재현했습니다. 

 


 

 

# 마무리하며

 

시간 관계상 모든 게임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고, 또 계획된 강연의 목차에 있던 내용을 모두 발표하지는 못했습니다. 강연자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OOI 역시 질문과 대답이 풍성한 페스티벌이 될 수 있길 바란다며, 올해는 10월에서 11월 사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진행할 계획이라는 짧은 홍보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정말 쩌는 인터렉션 메커닉이 될 거 같아서 적용해봤어요."

 

최신목록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