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NDC

[NDC 19] '포켓몬 고'에서 태어난 증강현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뒷이야기

"게이머들에게는 상투적인 것도, 드라마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할 수 있다."

이준호(마루노래) 2019-04-26 11:05:30

지난해 케이블TV를 통해 방영되어 화제를 끌었던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하 알함브라)는 증강현실 게임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차용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게임이 아무리 대중적인 취미가 되었다 한들 30~40대 여성이 주가 되는 드라마 시청자층에게는 난해한 소재일 수밖에 없는 법. <알함브라> 제작진은 어쩌다 이런 참신하면서도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됐을까? 드라마를 집필한 송재정 작가가 NDC 2019에서 그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작가 송재정.

 

#지금까지 게임 드라마 못 만든 이유? 문제는 역시 '돈'

 

송재정 작가는 이 드라마가 방송된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게임 좋아하세요?"였다고 한다. 작가는 실제로 어릴 적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20대, 30대까지도 많이 했고, <프린세스 메이커>를 비롯해 <문명>, <대항해시대> 같은 게임들을 두루 즐겼다. 30대가 넘어간 이후로는 대본 집필 작업에 영향을 줄 정도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게임을 줄이게 됐고, 요즘은 <프렌즈 팝콘> 같은 게임을 짬짬이 즐기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동안 드라마 작가로 집필을 하면서도 게임을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문제는 제작비였다.  게임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바타>나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화려한 CG가 동반되는 작품들을 상상했다.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에서는 만들기 어렵고, 만들더라도 예상 시청자가 많지 않지 않기 때문에, "게임을 소재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게임'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모두가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이 만들 수는 없다. 우리는 돈이 없으니까.

 

#<포켓몬 Go>에서 탄생한 증강현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그래서 늘 그렇듯 다른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액션물을 구상하던 중, 송재정 작가는 어느 신문 기사를 보게 됐다. <포켓몬 Go>의 흥행을 다룬 기사였다. 그 당시는 증강현실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던 송재정 작가는 게임을 설치해 직접 해봤는데, 그때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바타>처럼 전체를 CG로 하지 않고, 일부만 CG를 써도 '증강현실'을 소재로 한다면 제작비 절감을 하면서 게임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처음으로 현실적인 제작비로 만들 수 있는 게임 소재를 찾은 것이다.

 

<포켓몬 Go>를 통해 화제가 된 '증강현실'이라는 콘셉트는 꽤나 괜찮은 예산 절약 방법이 됐다.

 

그렇게 국내 최초 증강현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시작됐다. 문제는 모두가 증강현실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촬영감독도, 배우들도 게임을 해본 적이 없었다. 5~6개월간의 난관 끝에 제작진은 대본대로 하면 재밌겠다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한편 모두가 게임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출연 배우 중 한 명, 엑소의 찬열이었다. 찬열은 평소 <배틀그라운드>를 즐겨했고, 게임 소재 드라마로 출연하는 것이 너무 좋고 자랑스럽다고 하기도 했다.

 

 

#엇갈리는 반응: 게임이 뭐에요? VS 이게 게임이냐?

 

이렇게 증강현실이라는 소재로 제작된 <알함브라>의 초기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작가는 이에 대해 "게임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게임은 엄청 나쁜 것이고, 특히 드라마의 주 시청자층인 30~40대 여성분들은 인식이 좋지 않다. 이런 분들이 게임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엄청난 우려가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1회차 방송이 나간 이후 시청자 반응을 보기 위해 '맘카페'에 들어갔을 때, 작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게임이라는 소재를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70% 가까이 됐기 때문이었다. 반면 본격적인 게임을 기대했는데 실망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증강현실 게임이라는 소재는 참신했지만, 그래서 또 어려웠다.

 

시청자의 성별과 연령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청표의 결과도 흥미로웠다. 배우인 현빈이 드라마 안에서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시청률이 훅 떨어지기 시작했다. 2회 방송이 나갔을 때는 30~40대 여성들이 다수 떨어져 나간 상태였는데, 대신 남성들이 우르르 들어오면서 시청률이 유지됐다.

 

결국 혼란기를 거쳐 <알함브라>는 남성과 10대가 많이 보는 드라마로 시청층을 교체했고,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게임을 기대한 사람들도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도 있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입장, 즉 주인공이 "레벨업"하는 것을 보며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 화려한 칼과 더 대단한 적이 나오길 기대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사랑 이야기의 비중이 커진 것에 당황하는 피드백도 있었다.

 

이러한 시청층, 시청률의 변화를 작가는 특이한 피드백이었다고 말했다. "게임은 호불호가 매우 강렬한 영역"이었다고 말했다. 게임 이야기가 나온 것만으로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 내에서 게임적인 이야기 진전, 예를 들어 레벨업이나 장비의 교체 같은 것들을 "이야기가 진전되는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부정적 피드백이 많았다. 게임은 가짜고, 가짜니까 스토리가 아니다 라고 생각했단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일반적인 드라마 시청자의 시선이었던 것 같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게임이라는 소재는 아직까지도 보편적 대중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운 소재였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서 게임에 익숙해진 분들도 많았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게임속 용어들을 일상어에서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NPC 같은 말은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어려울 수 있는 말이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시청자들도 자연스럽게 NPC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됐다. 다만 드라마의 특성상, 게임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청자들도 게임에 익숙해졌을 즈음 끝낼 수 밖에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Q&A: 드라마 작가에게 있어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게임의 모습은?

 

송재정 작가는 강연을 다소 빠르게 마치고 나머지 시간을 청중의 질문에 답변하는 Q&A 시간에 할애했다. 사실은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입장에서, 게임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하다고도 말했다. 그 중에서 몇 개의 질문만을 골라봤다.

 

Q: 실제 <알함브라>가 게임으로 만들어진다면 스토리를 쓸 수 있게 해줄 건가?

 

물론이다. 끼워주신다면 더욱 좋다. 게임 스토리 창작에 저도 참여해보고 싶다. 방송작가가, 혹은 게임 작가가 서로 자리를 바꿔서 작업을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궁금하다. 앞으로 더 많이 교류하고 싶다.

 

Q: 게임에 거부감을 가진 시청자층을 포섭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알함브라>는 많은 거부반응을 겪었지만 그래도 후반에는 무난히 안착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시청자 여러분을 놓치기 않기 위해 미남 미녀 배우들도 섭외하면서(웃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놓치지 않도록, 그래서 주 시청자분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한편으로 주인공과 친구 사이의 애증관계를 비롯해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더 많이 넣어서, 이게 게임이야기라는 것처럼 안보이게 만드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제 입장에서는 사실 다른 드라마의 몇 배의 공이 들어가는 작품이었고, 특히 게임과 게임이 아닌 부분을 엮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Q: ​작가의 입장에서,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게임의 모습이나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나? 또 일반적인 드라마 시청자의 관점에서는 게임의 어떤 부분이 매력적인가?

 

게임을 내가 직접할 때에는, "이게 왜 재미있지?"라고 질문하면서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가로서 게임을 하다보니 느낀 것은, 게임의 '레벨업' 과정이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와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드라마 <대장금>을 예를 들면, 이 드라마 역시 주인공인 장금이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조금씩 레벨업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공통점이, 게임과 드라마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사람들이 모두 사랑할 수 있는 원인이 아닐까. 즉 일종의 공통된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반적인 드라마에서는 보여주기 어려운 판타지적인 요소를 <알함브라>에서는 게임이라는 소재를 경유해서 마음껏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시청자들에게 인상적이었다며 긍정적인 평을 들었던 부분은, 매가 날아와서 현빈 씨의 팔에 앉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황당해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이런 장면은 사실 일반 드라마에선 불가능하다. 이처럼 일반 드라마에서는 보여드리지 못했던 많은 장면들을 게임 소재 드라마를 통해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다. 게임을 하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상투적인 것들이, 드라마 시청자들에게는 굉장히 신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Q: ​시즌 2 계획은?


원래는 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고, 많은 분들이 참여가 필요하다. 일단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다.

 

 

#마무리하며

 

청중과 꽤 길게 소통하는 시간을 가진 이후, 송재정 작가는 "게임 하시는 분들이 드라마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또 같이 손잡고 갈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많은 팬을 보유한 작가 답게 여러 사람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며 소통하는 시간을 가진 송재정 작가.

최신목록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