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역사에 대한 관심은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게임 학술지 또는 논문지 등 게임계뿐만 아니라 기타 다양한 부문에서도 관심을 가져왔다. 게임의 역사는 게임 소프트 개발 측면에서 관찰되기도 하고, 게임 디바이스 측면에서 관찰되기도 한다. 다양한 논문에서 다양한 관점의 풍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게임 소프트웨어 또는 게임 하드웨어의 역사로는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의식의 변화를 알기 힘들다. 동의대 디지털문화콘텐츠학 전경란 전공교수는 게임이 탄생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게임에 대한 사회의식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대략적으로 추측해보고자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의 역사를 조사했다. / 디스이즈게임 이영록 기자

■ 게임을 보는 관점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사회가 게임을 보는 관점은 지금까지 20년을 주기로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1970년대에는 전자오락이라는 이름으로 대중화됐고, 1990년대 중반에는 문화콘텐츠로 떠올랐다. 그리고 2010년도에 이르러서는 예술의 한 영역, 종합 예술로서 게임이 논의되고 있다. 또 콘텐츠 산업으로의 위상도,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도 사회의 인식은 계속해서 변화를 겪었다.
사회는 게임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 놀이는 인간의 본능이자 인류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불변하는 가치다. 상품이나 산업적 가치를 떠나서 인정받아야 할 문화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이야기에서 늘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게임의 ’유해성’이다. 미디어가 폭력성을 강화하거나 유발한다는 주장이나, 미디어가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어느 한쪽에 동의하기 힘들 정도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게임에 대한 여러 주장에 대해 생각하던 중 문득 ‘처음부터 게임을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게임의 본격적인 도입 전인 1960년도부터 1980년도까지를 중심으로 자료를 조사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알아둬야 할 것은 게임 문화가 사회에 소개되고 도입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그 사회에 기존부터 있던 오락 문화, 그리고 사회 문화적 맥락과 서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임은 어디에 등장했던지 그 문화 안에서 여러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이해됐을 것이다.

■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의 관점, 그 관점의 역사를 조사하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는 전(前) 게임기는 유흥 및 오락의 소비를 막 경험하고 새로운 근대적인 정체성이 형성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성장을 위해 근로자들에게 근검절약, 저축, 근면, 성실 등 일을 심어 넣는 시기기도 했다.
그래서 놀이나 여가 활동도 생산성 강화를 위한 것이라면 긍정적으로 인식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정적으로 인식됐다. 이런 인식 속에서도 급속도로 유기장(오락실)과 영화관의 수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하며 기계 오락의 문화가 증가했다.
전근대적 시기에서 급속도로 서구화,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미니스커트, 단발, TV가 등장하며 젊은세대와 기성세대의 의식이 충돌하게 됐다.

■ 대중문화끼리의 경쟁
1970년대 이후 급속도로 서구화, 근대화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적극적으로 서구문물을 수용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놀이문화가 바뀌게 됐다. 이 시기에 게임은 TV나 영화와 같은 다른 대중문화들과 경쟁하며 성장했다.
그 당시 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약 7만 원이었고 가정용 콘솔 게임기의 가격은 약 2만 원이었다. 높은 가격으로 인해 가정용 오락기가 대중화되기에는 많이 어려웠다.
또한 가정용 오락기는 TV를 통해서 화면을 봐야 했다. 그런데 TV를 보려는 사람과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 사이에서 좀 더 여럿이 즐길 수 있는 TV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시 가부장적 시대상을 생각했을 때 TV를 제치고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쉽게 조성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 결과 가정용 오락기는 완패하게 되고 TV가 일방적 승리를 거두게 됐다. 그리고 TV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 TV에서부터 미디어의 유해성 논란이 시작되다.
1970년대 말에는 TV 보급률이 80%에 이르게 됐다. 전기절약 문제로 일일 실질 방송 시간은 지금과 달리 5시간 정도였지만, 이중 2시간이 어린이들이 TV를 보는 시간일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됐다. 코미디 장르의 프로그램이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비상했다.
그 당시에는 방송 콘텐츠가 부족했기에 외화를 수입했고, 이때 논의됐던 TV에 대한 규제는 지금 게임에 대해 논의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 당시 기사를 찾아보면 TV는 학업부진, 정서장애, 일탈 행동 그리고 사건 사고를 유발한다고 기록돼있다.
TV에서 방영됐던 ‘15소년 표류기’를 따라 한 15명의 학생들이 인천 부근의 섬에서 발견됐다는 이야기, ‘6백만불의사나이’를 따라 하다가 교각에서 추락사한 초등학생 이야기 등이 전해지며 사람들은 TV가 일상에 유익한 정보를 주는 매체이면서도 비문화적으로 위협이 되는 것이라고 의식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TV를 못 보게 하면 반항심이 생기거나 짜증이 난다는 등, 지금의 게임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들이 당시의 TV에 적용됐었다.
■ 게임은 꾸준히 성장하다.
TV가 각종 유해성 논란에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게임도 천천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비록 비싼 가격으로 인해 가정용 오락기가 인기를 얻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지만, 그 때문에 문방구 앞 오락기나 전자오락실이 부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게임은 산업적, 기술적 측면에서 기계오락과 전자오락으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존재했다. 그런 맥락 속에서 게임이 발전돼 왔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게임을 TV의 사례에서처럼 쉽게 낙인찍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시기에도 오락기구가 청소년 지능개발에 도움을 주고 문제 있는 사람을 선도할 수 있으며, 별다른 청소년 오락시설이 없는 국내에서의 긴장해소 요인이 된다는 등 게임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게임 문화에 대한 순기능을 찾기도 했다.


■ 게임의 다양한 가능성을 봐야한다.
우리는 그동안 게임을 유해하거나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을까?
게임이 무조건 좋거나 나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런 역사적 관점에서 게임이라는 큰 그림을 보지 않고 우리 편의에 따라 부분부분을 이해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는 여러 가지 풍부한 상상력이 다양한 사회영역에 제시되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미디어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하지만 어떤 한가지 모습이 국가적, 산업적으로 확립되면 그러한 다양한 가능성이 잊혀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게임을 여러 맥락에서 다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고 우리는 앞으로 게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