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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A5 - 21세기 매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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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일이든 편견을 가친채 판단한다. 설령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할지라도 아주 작고 미세한 부분에서조차 우리는 주관의 힘에 이끌려버린다. 그런 점에서 무엇을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 신의 위치에서 대상을 심판하는 것이 아닌 자기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행위일 따름이다. 우리가 게임성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이 점이 크게 작용한다. 수 없이 많은 게임이 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 큰 판이라는 것은 선배 기획자, 프로그래머들이 모두 이룩해 놓았다. 하지만 그것을 충실하게 풀어내느냐는 오롯이 게임을 만드는 사람의 역량에 달렸다. 따라서 좋은 게임과 나쁜 게임이라는 도식적인 구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해당 장르를 흥미있게 풀어내느냐 아니냐의 문제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어떤 장르를 접한다고 할 때 필시 그 장르에 대한 이미지를 머리 속에 가지고 바라본다. sf라면 우주 속에서 항해하는 우주선의 모습과 첨단 과학의 향연을 볼 것이고 공포 영화라면 폐쇄적인 상황에서 극한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영적 존재 내지 생명체를 상상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어떤 장르에 대해 기대치가 있기 마련이다. SF 영화를 보러 가서 사랑 싸움만 보다 오면 그 어떤 관객이 영화에 찬사를 표하겠는가?

 

우리가 게임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이 점은 똑같다. 발매 당시부터 엄청난 파란을 몰고온 작품이 있다. 이미 콘솔로 발매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현재까지도 그 인기가 식지 않은 게임이다. 이 게임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단순히 범죄를 조장하는 게임, 자유도가 높은 게임으로 인식하기 쉽상이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또한 이 게임에 대해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GTA 시리즈는 그 게임의 제목 그대로 차 훔치고, 심심하면 민간인을 학살해서 별 5개를 만드는 그런 게임이었다.  FPS 장르라면 그것에 대한 기대치가 있고 RPG라면 그것에 대한 기대치가 있기 마련이다. GTA도 마찬가치다. 비록 나에게는 이런 편협한 이미지만이 있을 뿐이지만 일반 유저들에게는 이미 5번째 시리즈까지 나온 이 게임에 대한 장르 기대치가 형성된 상태였다.

 

만약 이 관점을 고수하게 된다면 GTA5는 엄청난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다양한 컨텐츠들이 추가되었고 큰 틀에서 보았을 때 게임의 스케일은 무지막지하게 커졌다. 온라인 부문에서의 성공 또한 GTA를 장기적으로 플레이하는데 일조했다.(심지어 그 인기 없다는 휴메인 연구소를 아직까지 하는 사람이 있다!) 이 게임의 컨셉을 감히 '도시에서 노는 활극'으로 정의해본다면 GTA시리즈는 성공수표를 보장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내내 이 게임이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래픽적인 혁신이 있었고 좀 더 사실적인 도시 생활을 구현했으며 멀티플레이는 애초에 다른 게임처럼 인식될 정도로 훌륭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그것이 무엇이었을지 콕 집어 말하기에 필자는 아직 게임에 대한 깜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 게임은 초창기에 누렸었던 그 특유의 긴장감을 잃어버렸다. 살인청부와 이권다툼이 난무하는 게임 속 세계관에 긴장감이 부족하다니?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때 긴장이라는 것은 게임 속 세계관의 긴장감이 아닌 게임이 게임으로 평가받기 위한 긴장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초창기 GTA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특유의 자유도와 독특한 컨셉은 이 게임이 가진 큰 장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익숙해져버린 지금에와서 GTA의 독특함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물론 오픈월드를 지향하는 게임 중에서 GTA의 입지는 정말로 확고하다. 게임의 재미 또한 다른 것에 비할바가 못되서 핵커들이 아니었다면 다른 게임 하기가 힘들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또한 시리즈를 거쳐갈수록 도시를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부분에서 엄청난 진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게이머가 단순히 재밌다고 느끼는 것과 그 게임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은 서로 결이 다른 이야기다. 요컨대 평가의 관점에서 GTA의 성공은 질주하는 열차 위에 올라타 흥행 가도를 달리는 것이지 기차를 새로 제작하고 기술 혁신을 이루어내 스스로 열차를 가동시킨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GTA는 기존의 장르의 판(이 판은 물론 스스로가 만든 판이기는 하다)을 재밌게 풀어냈을뿐 새 판을 짠 게임은 아니다. 만약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단순히 게임성이 좋다는 말로 이 게임을 마무리 한다면 이 업계의 비평적 가치는 더이상 없다. 게임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필자에게 이러한 안일함은 매우 위험하게 비춰진다. 왜냐하면 이런 것을 게임성으로 퉁쳐버리면 게임성과 상업성의 구분은 모호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잘 팔리는 게임이라는 것은 실상 엄청난 혁신보다는 이전의 것을 답습해 창조적으로 계승한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GTA가 누린 성공 한켠의 어두운 그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GTA를 보면서 쉽사리 양산형 모바일 게임들을 떠올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GTA를 게임성으로 호평하는 사람들과 양산형 모바일 게임을 망작으로 취급하는 사람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같다. 실상 이 두 상반된 평가는 게임을 바라보는 동전의 양면이자 한 몸통에서 나고 자란 키메라다. 즉, 두 평가는 매너리즘의 소산이 낳은 동일한 비평적인 태도일 뿐이다.

 

게임의 장점으로 꼽는 상호작용성은 단지 세계 속의 상호작용성만이 아니다. 그런 식의 상호작용성은 이미 수 없이 많은 미디어 매체들이 모더니즘을 거치며 해왔던 것이다. 게임의 상호작용성이 주목 받는 것은 바로 게임속 세계와 외부 세계의 상호작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장르에 대한 편견을 이것에 비추어 보면 개념은 좀 더 명확해 진다. 분명한 예가 문학 작품에 하나 있다. 오스트리아 출생의 프란츠 카프카는 문장 자체도 뛰어나지만 이러한 상호작용을 누구보다도 잘 인식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일찍 태어난 까닭에 이러한 상호작용성을 일방향 매체인 문학으로 밖에 할수가 없었다. 그는 고민끝에 그의 역작 <이방인>에서 내러티브를 통해 상호작용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일반적인 전형성에서 벗어난 그의 문학 작품은 이러한 사고 방식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는 주인공을 살인자로 묘사하며 살인의 동기를 단지 "그냥 눈이 부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뜬금 없는 문장 하나로 독자는 순간적으로 문학을 대리 체험의 세계가 아닌 글자와 종이로 이루어진 무엇으로 보게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 글을 쓴 사람, <이방인> 속 세계를 창조하고 보여주던 카프카를 인식한다. 이것이 문학으로 치면 '부조리'이고 영화로 치면 작가적인 긴장이며 미술로 치면 해프닝이다.

 

그렇다면 게임에는? 아쉽게도 게임에는 이러한 요소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게임은 21세기적인 매너리즘 사조가 현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르네상스가 지나고 매너리즘 화가들이 전 시대 기라성 같은 화가들의 규범에 따랐듯이 게임은 이전의 성공을 끊임없이 답습한다. 매너리즘 화가들이 후원자의 맘에 들기 위해 그러한 전략을 택했다면 오늘날의 게임 개발자들은 경제적 성공을 위해 이러한 전략을 택한다. 게임의 '성공요소'를 방해하는 무엇을 유저들은 단지 개발의 미숙함으로 치부할 것이다. 물론 진짜로 개발이 미숙해 이런 점이 나온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있어서는 안될 무엇으로 함부로 단정할수는 없다. 되려 이러한 실수가 뜻밖의 방향 전환을 이루어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것이 비단 게임 자체의 문제만으로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다양한 생각의 흐름이 한국을 강타했다. 이제 거대한 가치라는 것이 사라졌고 한 가지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행위가 어리석은 짓이 되어 버렸다. 문화계에서 이것은 기준의 충돌로 나타났다. 미술에서 죽어버린 상어를 박제해 수십억에 팔던, 영화에서 동일한 장면을 1시간 넘게 보여주고 예술영화라 하던 다양성의 범주 내에서는 모두 포괄이 가능했던 영역이었다. 하지만 2010년이 넘어가며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치는 적어도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많은 학자, 이론가, 예술가들은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를 논한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너무 많은 것을 펼쳐 놓았기에 이제 무엇을 하더라도 과거의 것과 비슷한 무엇이 되어버릴 공산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문화 사조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더 이전의 경향, 모더니즘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21세기화된 모더니즘은 문화사조 곳곳에 나타난다. 미술에서의 추상화의 부활, 영화에서의 헐리우드 장르의 득세, 연극에서의 부조리극의 쇠퇴가 모두 이러한 경향의 연장선이다.

 

게임의 입장에서 이러한 경향의 변화는 사실 불행이다. 다시 기차에 비유하자면 게임은 포스트모더니즘행의 막차에 등장한 새로운 미디어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이 게임이라는 녀석이 그 기차를 타려고 하자 기차는 떠나버렸다. 이것은 다시 말해 다양성이라는 열차가 게임업계를 떠나버렸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다양성이란 실상 틀 속의 다양함이다. 그 틀을 깨버리는 행위는 게임이 아닌 것으로 규정되고 그럴수록 게임에 대한 창조적 인식은 약화된다. 개성을 잃어버린 한국 게임들을 보며 외국의 사례를 보라고 비판하는 행위는 사실 이 틀 속의 다양함을 추구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에는 왜 GTA같은 게임은 없는가? 위처 같은 게임은? 모두 같은 질문일뿐이다. 그 옛날 20세기 아카데미 미술계가 혁신을 추구하겠다고 아방가르드를 들여온 것과 똑같은 행위다. 이런 상황에서, 뒤샹 같은 사람은 나올수가 없다.

 

게임은 이제 하나의 방향성으로 향하는 열차를 탈 수 밖에 없다. 그 방향이 돈이던, 말초적인 재미던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이로인해 다양성을 표출할 기회 자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의미심장한 대목은 뉴욕현대미술관의 작품 소장 목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게임을 예술의 연장선으로 보고 이를 여타 작품처럼 수집해온 뉴욕현대미술관(이하 모마)은 게임 컬렉션의 대부분이 90년대 중반~ 2000년대 중반 10년 동안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적으로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이에 따라 여러 양상의 서브컬처들이 탄생된 시기였다. 또한 이 시기는 기라성 같은 게임 개발자들이 혁신적인 장르를 개발하고 오늘날 올드 게이머들이 고전이라 불리는 게임들이 만들어진 시기였다. 오직 이러한 혁신을 이룩한 게임만이 파블로 피카소와 앤디 워홀의 옆자리에 설 수 있다. 하지만 2000년 후반대를 들어서 모마가 수집하는 게임 컬렉션의 범위는 협소해졌다. 게임의 위상이 예술의 위상으로까지 올라간 미국에서도 이러할진데 한국의 상황을 논하는 것은 입만 아플뿐이다. 

 

그런점에서 GTA5의 성공은 적어도 나같은 게이머에게는 큰 불행이다. 그것은 틀 속의 다양성이란 모토가 우리 시대의 게임을 지배하고 있을거라는 또 다른 신호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생각 또한 편견의 일부라고 한다면 사실 할말은 없다. 그러나 게임을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고자 하는 입장에서 현 세태는 우려스럽다. 양산형 게임의 천박함이 우려스럽고 GTA의 폭력성이 우려스럽다는 것이 아니다. 양산형 게임과 GTA를 보는 그 일관된 관점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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