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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의 바램 - 낯설게하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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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주관적인 기준에서 보는 게임에 관한 잡설입니다.


 

이 글은 수기다. 게임을 알지 못했던 사람이 우연히 게임을 접하게 되는 이야기다. 물론 그 이전에 게임을 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니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게임을 진지하게 보게된 계기를 쓴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유행은 한참 지났지만 <브레이드>라는 인디 게임이 있었다. 어드벤쳐 방식에 퍼즐의 요소가 결합된 이 게임은 독특함과 참신한 스토리 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 내가 처음 게임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게임을 통해서 였다. 단순히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게임이라는 매체를 진지하게 바라본 것은 그 게임이 가지고 있었던 참신한 스토리도, 퍼즐 속의 두뇌 유희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 게임이 유저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에 있었다.

 

잠시 헛소리를 몇 마디 더해볼까 한다. 조금 지루할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본인이 느낀 감정을 기탄없이 풀어내는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큰 실례가 되지는 않을거라 생각한다. 장 뤽 고다르라는 60년대 한참 잘나가던 감독이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가 막 블록버스터라는 금덩이를 낳기 시작했던 바로 그 시기 프랑스의 이 기세등등한 감독은 <네 멋대로 해라>(1959)라는 작품을 내놓으며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무엇이 그토록 센세이션이었나? 그 비밀은 다름 아닌 카메라 앵글에 있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관객과의 동화를 필수로 전제한다. 요컨데 국제시장의 어느 부분에서 자신도 모르게 괜시리 눈물이 난다면 그것은 영화의 내용이 우리의 정서를 잘 건드린 것도 있겠으나, 극단적인 클로즈업 화면으로 관객과 배우의 감정을 최대한 동일하게 엮어보려는 감독의 의도가 먹혀들어갔다는 생각 또한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다르는 그러한 방식을 배격했다. 그는 심지어 주인공이 비참하게 죽는 과정 속에서도 멀찌감치 카메라 앵글을 땡겨 주인공의 표정조차 식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른바 '차가운 앵글'의 탄생이었다. 그 마지막 장면, 주인공이 죽는 장면에 이르러 관객들은 영화가 주는 동일성의 최면에서 벗어나 스크린을 영사기가 쏘아낸 무엇으로 인지하게 만들었다. 고다르의 대에 들어와 영화는 비로소 영화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매체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움직이는 카메라 앵글을 통해서 말이다. 30년전 미술에서 모더니즘이라는 추상 운동의 혁명이 일어난 이후 미술 그 자체를 인지했듯이 영화는 50년대의 마지막 자락에 들어와 드디어 영화 본연의 통찰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영화가 만들어진지 근 60년이 지나 나는 그 당황스런 감정을 전혀 다른 매체인 게임에서 똑같이 느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브레이드가 나에게 주었던 그 당황스러움의 근원은 게임을 플레이 하는 방식 자체에 있었다. 시프트 버튼을 누르면 말 그대로 시간이 거꾸로 가는 그 방식이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쩌면 게임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면 이 방식이 너무 익숙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고백하건데 난 소위 말하는 겜알못 중에 하나다. 하던 게임들도 유행 따라 몇 게임을 해본게 전부이며 RPG하면 바람의 나라, 메이플이라는 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야말도 "겜치"였다. 그렇다면 이런 낯섬의 감정이 단지 게임의 경험이 부족한 한 게이머의 단순한 착각인 것일까?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브레이드에서 느꼈던 이러한 감정을 동시대에 발매된 여러 비슷한 장르의 게임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다. 나의 관점에서, 브레이드 이후에 플레이 했던 몇몇 퍼즐이 가미된 게임들은 게임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그래픽의 정교함 유무, 스토리의 탄탄함, 게임의 재미로 판단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말 그대로 게임이 가상 세계가 아닌 게임 그 자체로 보이지가 않았다. 달리 말해 그 게임들은 어떤 세계를 드러내는데는 성공했지만 게임다워 보이지는 않았다. 과장 섞어 말하면 3d영화와 별반 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브레이드는 달랐다. 브레이드 예찬론자의 글 같지만 다른 게임과는 다른 그 낯선 감정이 나에겐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낯섬의 감정이 몰입을 방해 한다는 것은 아니다. 되려 이런 낯섬이 게임을 더욱 더 몰입하게 만든다. 또한 이것은 친절하지 않다라는 뜻도 아니다. 되려 이 게임은 겜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는 내가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다가갈수 있었고 그래픽도 직관적이었다. 그렇다면 이 낯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지만 사실 그것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 뒤로 정말로 진지하게, 게임을 즐겼고 술자리에서 게임 하면 으레 따라 붙던 수식어인 "야 나이 먹었는데 그거 왜하냐"말도 더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뒤에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찾지 못했다. 다만 낯섬이라는 것이 게임을 이해하는데 꽤나 재밌는 수식어라는 것은 깨달았다.

 

어떤 게임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게임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대답은 여러가지지만 일반적으로 내용과 형식이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문화컨텐츠라 불리는 모든 것들이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항이다.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가 모두 이 틀 속에서 만들어진다. 다만 게임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상호 작용의 매체다. 이것은 이전의 다른 매체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매우 독특한 특성이다 그리고 이 특성을 가능케 하는것은 당연히 프로그래밍이며 그것을 일반적으로 인터페이스의 요소로 구현된다. 즉 게임은 다른 매체와는 다르게 참여자가 직접 작품에 개입함으로서 완성되는 시스템이기에 기존의 내용과 형식이라는 요소 이외에 참여자가 작품에 개입할 수 있는 어떠한 장치가 제 3의 요소로 추가된다는 뜻이다. 이 제 3의 요소가 게임이 다른 여타 매체와는 다르게 게임답게 만드는 가장 주요한 요소다. 물론 이전의 전통적인 매체에서 이러한 경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전통 매체가 더이상 환영적인 3차원 공간을 만들지 않게 되면서 여러가지 매체적인 해방이 일어났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관객의 해방이었다. 즉, 수동적으로 보기만 하는 관객이 아닌 관객이 직접 참여함으로서 작품이 완성되도록 하는 방식이 생겨난 것이다. 존 케이지가 음악에서 4분 33초 동안 멍하니 서있기만 하고 에드 라인하르트가 캔버스에 선 하나를 그어 놓고 작품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의 연장선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제 3의 요소로서, 다시 말해 급진적인 무엇이 아닌 당연한 무엇으로 여겨지는 것은 순전히 게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러나 종종 게임들은 이러한 본인의 특권을 무시한다. 혹은 그 특권을 전혀 엉뚱한 다른 무엇으로 치환하여 표현한다. 일례로 근 10년간 발전한 장족의 그래픽 발전은 되려 이 모순적인 자기 포기를 조장하는데 일조한 것 처럼 보인다. 갈수록 시네마틱 영상으로 보는 게임들은 늘어났고 플레이어는 단지 특정 상황에 특정 버튼을 누르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멋들어진 액션을 보여주는 것을 구경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윤추구가 걸린 문제라손 치더라도 이런 상황이 게임을 "낯선 그 무엇"으로 받아들였던 나에겐 달갑지만은 않다. 물론 눈은 즐겁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보기 좋은 떡이 재미도 있다. 브레이드 이후 내가 해봤던 소위 거대 게임 회사들의 게임은 그런 재미면에서는 당연히 만점이었고 몰입도도 최고였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게임을 게임으로 보았던 것은 게임이 주었던 그 특유의 낯선 감정, 좀 더 길게 말하면 내가 독특한 종류의 체험을 하고 있구나라는 바로 그 감정이었다. 이 독특한 종류의 체험. 이것이 비단 우리가 게임성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그것으로만 연유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탱크를 몰아보거나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 속에서 고철 쓰레기에 일희일비하는 그런 경험도 분명 독특한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게임의 진정한 모습인가? 그런 경험은 분명 게임이 수 많은 매체들 속에서 입지를 차지하는데 좋은 공헌을 할 것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건 단지 이전 매체의 재맥락화에 불과하다. 초창기 사진이 회화를 닮겠다고 회화적 구도를 사용하고 초창기 영화가 사진을 닮겠다고 미쟝센을 배치하는 것과 똑같은 답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편협한 경험 세계로서 말하면 그런건 이미 영화, 미술, 음악에서 질릴만큼 간접 체험 해봤다. 그리고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그런 방식의 독특한 표현은 내용과 형식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다시 말해 천편일률적인 표현 방식이다. 그 내용이 어떤 신비롭고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자체는 이미 저 옛날 예술이란 것이 처음으로 생겼던 그 시절부터 했던 거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낯섬이 어느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개인적인 소망이다. 어찌보면 쓸데 없으며 보기에 따라서는 아집으로 보이는 그러한 소망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난 게임을 게임으로서 인식하기를 원하지 무엇을 대리체험하고 나의 자아를 캐릭터에 투영해 그것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싶지 않다. 감상적인 할리우드 영화처럼 주인공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같이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고다르의 주인공을 보듯이 게임을 하고 싶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2014년에는 이런 나의 기괴한 욕구를 충족시켜줄만한 게임들을 꽤 많이 만났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욕구가 불쾌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난생 처음 보는 조작 방식이나 게임의 체계에 허당짓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하루만에 언인스톨 했다 다시 까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레고를 보는 듯한 그래픽에 해보지도 않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불쾌함은 적어도 게임에서는 아름다운 미덕이다. 그리고 이런 미덕은 짐짓 화려한 그래픽으로 사람을 끄는 것이 아닌 담백한 게임성으로 사람을 잡아끈다. 궁극적으로 이런 불쾌함은 개발자와 소통하게 해준다. 게임을 단순히 즐길거리로서 끝내주는게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해준다. 되려 이 불쾌함은 제작자와 소통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일방적 창구다. 때문에 나는 이 낯섬을 도저히 포기할 생각이 없다.

 

 2015년에는 또 어떤 게임이 나를 낯설게 할까? 솔직히 알 수는 없다. 나의 취향을 충족시켜주는 사람이 단 한 게임도 안나올지도 모른다. 얼마 전 그런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차에 우연히 다큐 영화를 하나를 보았다. 2011년 다큐멘터리 영화제에도 출품된적 있는 인디게임 : 더 무비라는 영화다. 거기서 브레이드의 개발자 조나단 블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게임은 표현입니다. 그것도 개인적인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반응을 보고 소통하는 과정입니다"

 

만약 모든 개발자가 아직까지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난 올해도 만족할만한 게임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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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러 BEST 11.12.19 10:39 삭제 공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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