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하자 잇힝~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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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9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8월 24일(신해) 1번째기사
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중국군의 출병, 각도의 전투 상황을 논의하다
과거 영락(永樂) 1717) 연간에 안남의 적신(賊臣)이었던 여계리(黎季犛)1718) 등은 자기들끼리 난리를 일으켰는데도 성조 황제(成祖皇帝)가 장수들에게 명하여 세 차례나 정벌하게 해서 군현(郡縣)을 설치하기까지 하였는데 하물며 무도한 왜적들에 있어서이겠는가.
1718) 안남의 적신(賊臣)이었던 여계리(黎季犛) : 안남은 인도차이나 동쪽의 한 지방. 옛날에는 왕국이었고 1884년에 프랑스 영(領)이 되었다가 1946년 베트남의 일부가 되었음. 여계리는 명나라 때의 안남 국왕으로 자(字)는 이원(理元). 처음에는 재상이었는데, 홍무(洪武) 21년(1388)에 국왕인 진위(陳煒)를 시해하고 대권을 장악한 다음 진씨 종족을 멸망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성명을 호일원(胡一元)이라 고치고 국호를 대우(大虞)라 했음. 얼마 후 아들 창(蒼)에게 전위(傳位)하고 태산왕(太山王)이라 칭했음. 영락(永樂) 4년(1406) 명 성조(明成祖)가 보낸 한관(韓觀)·장보(張輔) 등의 토벌군에 의하여 다음해에 토벌되었음
선조 37권, 26년(1593 계사 / 명 만력(萬曆) 21년) 4월 24일(무신) 5번째기사
성영이 보고한 선릉 등을 봉심한 결과. 경략에게 적의 토벌을 청하는 자문을 올리다
드라마 징비록에서 선조가 명나라로 도망간다면서 안남국의 사례라는 것을 언급합니다. 이 때 선조 말만 들어보면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주고 선조도 쉽게 조선으로 돌아 올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물론 선조의 말은 틀린게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 입장에서만 보자면 그랬으니깐요.
이 일은 실제 있었던 일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조선에서 선조가 말하는 것과 같은 내막의 사건이라고만 알았는데 실상은 이렇습니다.
송나라때부터 건국되어 원나라와도 싸우고 명나라 때까지 나라가 유지되었던 베트남의 독립국 쩐 왕조는 원나라와의 전쟁으로 세력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왕권이 무너져 신하와 왕간의 내분으로 왕조가 붕괴되고 호씨가 왕위를 빼앗고 호왕조를 열게 됩니다. 이 때 쩐왕조의 후계자를 주장하는 이가 영락제에게 와서 도움을 요청하는데 영락제는 20만 명이나 동원해 베트남을 침공, 후 쩐 왕조가 다시 열리는데 사실 영락제의 의도는 베트남을 속국화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허수아비 왕조를 세우고는 직접 통치에 나섭니다. 이후 베트남 사람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결국 20년 간의 속국 작업은 실패하고 베트남 사람들은 레 왕조를 세우고 근대까지 국가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안남국의 사례는 류성룡이 말하는 것처럼 '운이 좋은 사례'도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라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지도자가 나라를 벗어날 생각부터 한다면 이미 나라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다행히 선조는 신하들이 "필부"라는 말까지 써가며 반발할만큼 신하들이 뜯어 말려 겨우 국경을 넘지는 않았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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