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력이 정당하다면, 이 세상에 사랑이 있을 자리는 없을 겁니다.”
싸우기 위해나가는 로드리고가 가브리엘 신부에게 축복을 부탁하자 “당신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없습니다”라며 했던 말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컸던 의문은 ‘만약 가브리엘 신부가 처음부터 이 원주민들을 찾아가 이들을 선교하지 않았다면,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였다. 애초에 이들이 토벌된 원인도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 지금의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국경이 겹치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지배하고 있던 포르투갈은 원주민들에게 숲으로 돌아가라고 강요하면서 결국 교황청의 묵인 하에 살육까지 가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 원주민들이 처음부터 숲속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가브리엘 신부의 인도에 의해 정글에서 나와 버렸기 때문에 어떻게 보자면 가브리엘 신부의 선교가 옳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브리엘 신부가 없었다면 이들은 로드리고를 비롯한 노예 사냥꾼들에게 잡혀 노예로서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비록 실제 역사에서 원주민들을 지배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예수회는 이들을 인간으로서 대해 주며 노예 사냥꾼들을 저지했고, 이는 영화 속에서 가브리엘 신부가 노예 사냥꾼인 로드리고를 막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원주민들이 숲 속에서 살았다면 전멸은 피할 수 있었겠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노예가 되어 끌려 다녀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당시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당시 예수회의 활동이 좀 미화된 점은 있지만 원주민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시장에 파는 노예 사냥꾼이라던가, 이를 저지하려던 예수회 사람들과의 충돌, 실제 1750년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국경 조약, 그리고 그로 인해 노예 사냥꾼을 인정하던 포르투갈령으로 들어간 예수회와 원주민인 과라니 족의 저항 등의 실제 역사가 2시간 동안 그대로 드러나 있다.(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심지어 그냥 선교 영화쯤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마냥 서구중심적 영화이자 종교 영화로만 볼 수 없다. 당시의 인권에 대한 인식과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던 교황청의 모습, 그 교황청을 계속 순종하고 따라야 할지(가브리엘 신부), 아니면 거부하고 끝까지 싸워야 할지(로드리고), 사랑과 평화를 실천해야 할 선교사들의 고민 속에서 어떤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 영화는 해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의 목적은 가장 원시적인 교리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함이었고, 결국 방법은 달랐지만 결국 종교, 정치, 가치관 등을 초월한 정신의 승리를 보여준다.
80년대 영화인만큼 화면은 투박하고 생각보다 대사는 많지 않다. 또 지금 영화들처럼 극적인 영상도 없고, 반전도 없다. 그러나 한 장면 한 장면을 살펴보면 오히려 요즘 영화들보다 인상에 많이 남고, 대사들은 적지만 의미심장하며, 심지어 그 적은 대사들의 공백을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들이 부족함 없이 채워준다. 초반의 거칠고 미지의 세계같이 보였던 정글도 뒤로 갈수록 점점 남미 정글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특히 맨 마지막 장면에서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불타버린 마을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악기를 들고 강을 따라 흘러가는 장면에서 추기경이 교황청에 보내는 편지 마지막 구절인 “그래서 신부들은 죽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죽은 것은 저이고, 산 것은 저들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죽은 자의 정신은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 남기 때문입니다.”은 깊은 여운을 남기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의 백미로 남는 것은 최고의 연기파 배우 삼인방 -제레미 아이언스, 로버트 드 니로, 그리고 리암 니슨(젊은 신부)- 의 연기이다. 이 당시 리암 니슨의 역할은 큰 비중이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야 이 사람이 리암 니슨이라는 걸 알게 된 사람이 많지만 제레미 아이언스와 로버트 드 니로의 절제된 연기는 인상 깊을 수밖에 없다. 특히 로버트 드 니로가 노예 사냥꾼으로서의 삶을 회개하고 자신의 갑옷을 지고 계곡을 오를 때 원주민들이 그를 죽일 듯이 위협하다가 결국 용서해 주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 깊다.
그리고 이 영화로 알려지게 된 또 하나는 지금은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내 환상 속으로)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가브리엘의 오보에’(엔니오 모리코네 작곡)이다. 사실 엔니오 모리코네가 이곡을 작곡했을 당시 어떤 가사도 붙어 있지 않았고, 악기도 오보에 하나 뿐이었다. 그러다가 1998년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앨범을 발표하면서 이 곡에 가사를 붙이고 몇가지 음을 추가해 ‘Nella Fantasia’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곡에 대한 소개를 다음과 같이 했다.
“다음 곡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영화 미션을 위해 작곡한 기악곡입니다. 약 3년 전에 제가 모리코네 씨에게 저 곡에 노래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는 완강히 거절했습니다만, 저의 간절한 마음을 알 때까지 2개월마다 부탁의 편지를 썼고, 결국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해주었을 때, 정말로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이 곡은 아름다운 노래이니까요.”
개인적으로 가브리엘의 오보에에서는 좋지만, 넬라 판타지아는 싫어한다(...) 특히 남자의 자격 이후로 더 싫어하게 되었다. 이유는 이거 찍은 이후로 방송에서 감동을 위해서 여기저기서 이 노래 가져다 붙이는게 꼴보기 싫어서라나 뭐라나... 특히 오보에 단독으로는 깔끔했던 음색이 여러 악기에 사람 목소리까지 더해져서 오히려 소음처럼 들리게 되어 버렸다.
여담으로 이 영화를 감독한 롤랜드 조페 감독은 이 영화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이 감독이 전에 찍었던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킬링 필드. 이 두 작품으로 감독은 엄청난 유명세를 타게되었는데, 그는 어느 한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찍었다. 그게 바로 슈퍼마리오 영화판이었다(...) 2007년에는 4.4.4라는 망작까지 들고 나온 걸 이후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